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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돌 Mar 11. 2024

눈 떠보니... 할머니가 되어있었다.

첨 보는 꼬맹이들이 할머니라 부른다. 그리고 어떤 남자는 장모님이라고..

'아... 잠들고 말았구나! 그렇게 안 자려고 애쓴 것 같은데...'

'여긴 어디지?'

그런데 배 위에 뭔가 묵직한 느낌이 들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뭐지?' TV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고,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몸을 돌리려고 하자...

"어! 할무니! 일어나셨어요?"

"우리 할무니 너무 깊게 주무시고 계시길래 내가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지!"

"할무니! 배 안고파요?"

'이건 또 왠 뜬금없는 소린가? 할머니라니...'

주위를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눈앞에는 국민학생쯤 되어 보이는 이쁘장한 여자아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뭔가 대답을 기다리는 듯했다.

방에는 큰 TV 한 대가 놓여있고, 등 뒤로는 침대와 거울... 옆 쪽에는 화장실...

'여긴 어디지? 내가 있었던 장소가 아닌데? 이 꼬맹이는 누구지? 왜 나를 할머니라고 부르는 거지?'

'우리 애들 중에 아직 결혼한 아이는 없는데... 내가 잘못 들어왔나?'


아이가 참을성이 부족한 건지, 아님 내 대답이 너무 늦었는지 다시 한번...

"할무이! 배 안고파요? 엄마가 저녁 준비하고 있어요!"

'엄마? 저녁준비? 누가 엄마라는 거지? 저녁 준비는 누가 한다는 거야?'

그 순간 조금 열려있는 방문 틈새로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일어났어요? 내 지금 등갈비 준비하고 있는데... 괜찮나? 오랜만에 실력 발휘 좀 해보려고"

첫째 딸이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쟤가 왜 앞치마를 입고 뭘 준비한다고?'

'회사는 안 갔나? 가만... 그럼 아까 이 꼬맹이가 엄마가 저녁준비를 한다고 했었는데... 그럼 얘 엄마가?'


"어머니! 괜찮나? 뭐 다른 거 드시고 싶은 거예요?"

"어디 아파요?"

딸이 재차 물었다. 멍하게 생각하고 있는 그 시간이 딸이나 그 꼬맹이가 봤을 때는 꽤 긴 시간이었던 것 같다.

"어... 아니 아프긴... 그래 그거 먹자. 근데 니 회사는 안 갔나?"

궁금했다. 내가 알고 있는 우리 딸은 아직 사회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회사를 다니고 있어야 되는데...

"아! 오늘 토요일이잖아. 아까 나갔다 들어오니깐 애들이 어머니 주무신다길래, 내가 저녁 준비했지머."

"등갈비 괜찮제? 어디 아픈 거 아니제? 우리 딸내미가 외할머니 옆에 찰싹 달라붙어가 얼마나 걱정하던지..."

"쫌만 기다려래이! 금방 준비해서 다 되면 얘기할게요."

'그나마 다행이었다. 결혼은 둘째치고 아직 회사는 다닌다고 하니... 나처럼 집에서 가정주부로 시간을 보낸 건 아니니 말이다. 그런데 언제 결혼을 했길래 이렇게 큰 아이가 있는 거지?'


이렇게 혼자 고민하고 있던 중,

"할머니 다녀왔습니다!" 열린 문으로 또 한 명의 여자아이가 나에게 인사를 하며 들어왔다.

'잉? 얘는 또 뭐야?'

옆에서 TV를 보던 꼬맹이가, '언니 왔네! 난 아까 왔지롱!" 이러면서 놀리는 투로 얘기를 했다.

'언니? 이 아이도 그럼 우리 딸아이란 말인가? 도대체 몇 명을 낳았지?'

'쟤는 중학생 같은데... 진짜 언제 결혼을 했는 거야?'

'그럼 이것도 꿈인가? 하루에 꿈을 몇 번이나 꾸는 거야?'


저녁 식사 준비가 끝나서 부엌으로 이동했다.

내가 알던 우리 딸은 요리 솜씨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눈에 보이는 식탁 위에는 생각지도 못한

음식들이 펼쳐져 있었다. 아까 얘기했던 등갈비를 비롯해 밑반찬들이 쫙 깔려 있었다.

그리고 처음 보는 남자도 한 명 앉아 있었다.

"장모님! 많이 피곤하셨나 보네요? 얼른 오셔서 저녁 같이 드세요."

순간 주저앉을 뻔했다.

'장모님... 이 사람이 내 사위... 아니 내 딸의 남편이란 말인가?'

'그럼 지금 여긴 딸이 사는 집? 내가 여기에서 뭐 하고 있는 거지? 그런데 딸을 비롯해 이 사람들이 나를 대하고

있는 걸 보면 꽤 여기서 살았던 것 같은데...'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아까 전에 상황은 어릴 때 고향이라서 눈대중으로 대충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지만...

지금 이곳은 전혀 예상하지, 아니 경험하지 못한 곳이었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영애 씨의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져만 갔다.

'그렇다면 여긴 미래란 말인가? 가만있어봐...'

"잠깐만. 내 화장실 좀 갔다 와서 먹을 테니깐 먼저 먹고 있어라."

화장실 문을 닫고 거울 앞에 비친 모습을 보았다. 아니 바로 볼 수 없었기에 눈을 질끈 감은 상태로 천천히

눈을 떴다. 분명 엄마를 만났을 때의 옷... 그 교복 차림은 아니었다.

양갈래로 아침에 땋은 그 머리도 아니었다.

'이게 뭐야!' 눈에는 안경을 쓰고 있었고, 얼굴에는 약간의 주름도 보였다.

영애 씨는 솔직히 현재 본인이 몇 살인지 가늠 조차 할 수도 없었다.

'일단 나가서 밥이나 먹으면서 얘기나 해봐야겠다. 너무 헷갈리네...'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 딸을 비롯해서 사위라는 남자와 두 여자 아이를 바라봤다.

딸은 분명한 것 같았다. 아니 두 꼬맹이가 우리 딸의 아이들은 분명한 것 같았다.

딸의 어릴 적 얼굴이 느껴졌기에... '다행이네. 그래도 손녀들 얼굴은 귀엽게 생겼네.'

'사위라는 이 남자... 뭐 하는 사람이지? 그런데 갑자기 언제 결혼했는지 뭐 하는 사람인지 물어보기엔

상황이 그런데... 답답하네.'

대뜸 그 남자가 나에게 술을 권했다.

'웬 술? 나 술 잘 못 마시는데... 술이라면 남편이 질리게 마셔서 지긋지긋한데...'

'이 남자는 자기 장모가 술 못 마시는 것도 아직 모르는가? 장인어른 술 좋아하는데 거기랑 마셔야지'

"장모님! 오늘은 한 잔 안 드세요? 안주도 좋고 오랜만에 같이 한 잔 드시죠!"

친근하게 술을 권한다. 그리고 '오늘은?....'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렇다면 평소에 내가 술을 마셨다는 얘긴데... 참나... 꿈이 식성도 바꿔버리네. 모르겠다. 일단 한 번

마셔나 보자.'

술이 생각보다 술술 들어가는 갔다. 취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어머니 지난주에 아빠 제사 준비하신다고 고생하셔서 많이 피곤하신 것 같네. 그래도 푹 주무시고

일어나니깐 좀 나은 것 같네."

'뭐라고? 아빠 제사? 이건 또 무슨 말이야?'

그랬다. 영애 씨의 남편은 이미 돌아가신 상황이었다. 충격이었다.

"아. 그래 내가 좀 피곤했나 보다. 그런데 갑자기 헷갈려서 그런데, 너네 아빠 돌아가신 지 얼마나 지났노?"

"응? 아빠? 아유... 한참 됐지. 얘네들도 외할아버지 못 봤으니깐... 26년쯤 된 것 같네."

'뭐? 26년 전이라고? 그럼 지금 내가 몇 살이라는 거야?"

이런저런 생각을 한 탓에 식사는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자리를 마쳤다.


방으로 들어온 영애 씨는 머리가 터질 것 같이 아프고 복잡해졌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왜 남편은 없는 거고, 얘는 벌써 결혼을 하고 난리야!'

'그럼 나머지 둘은 어딨는건데?'

두 아들의 소식도 궁금했지만, 쉽게 물어볼 수는 없었다.

이제는 빨리 꿈이 깼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꿈은 도대체 언제 깨는거지? 엄마 만났을 때는 좋았는데, 지금은 너무 헷갈려서 힘드네.'

이런 생각을 하던 찰나에 딸이 들어왔다.

"어머니! 많이 피곤하제? 오늘은 애들 지 방에서 재우기로 했다. 외할머니랑 자고 싶다고 징징대길래

할머니 피곤하신 것 같다고 해서 그냥 지네들끼리 자라고 재웠다. 어디 아픈 거 아이제? 안색이 좀 안 좋아

보이셔가지고..."

"어.. 아니다. 걱정 안 해도 된다. 그런데 니 동생들은 요즘 잘 지내나? 연락이 없는 것 같아서..."

"아! 둘째도 지 가정 꾸린다고 바빠서 연락 잘 못하겠지머... 관돌이는 아까 연락 왔는데, 오늘 오려고 했는데

일이 생겨서 못 온다고 하던데? 다음 주에 어머니 보러 온다고 하더라."

"아... 알겠다. 내 좀 쉴 테니깐 니도 가서 좀 쉬고 해라."


영애 씨 둘째 아들도 결혼을 했다고 한다. 그럼 여기 지금... 이 시간은 도대체 얼마나 흘렀단 말인가?

말 그대로 미래인 셈이다.

과거와 미래를 숨 돌릴 틈도 없이 왔다 갔다 하고 있는 것이다.

영애 씨는 생각에 잠겼다.

'엄마한테도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제대로 얘기도 못해봤고...'

'남편은 출근한다고 나간 게 전부였는데... 벌써 돌아가셨다고 한데...'

'왜 지금 내가 이런 꿈들을 꾸고 있는 거지?'

'그런데 꿈이라고 하지만 앞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너무 생생하다고 생각이 드는 건 뭐지?'

이런 혼란스러운 생각들을 잠재우기 위해 영애 씨에게 지금 필요한 건 빨리 잠드는 것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꿈속의 현실들이 너무 힘들게 느껴졌다. 한시라도 빨리 이 꿈에서 깨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방 안에 불을 끄고 잠 잘 준비를 마쳤다.

'이제 현실로 돌아가자. 그동안 피곤한 게 많이 쌓였었나 보다.'

'그래도 꿈이지만 우리 애들 다 미래에도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것 보니깐 기분은 나쁘지 않네.'

'손녀들도 이쁘장하고 똘똘하게 보이고...'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얘들아 진짜 나중에는 꼭 현실에서 이 할미랑 만나자! 오늘 좋은 시간이었다.'

라며 헷갈리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좋은 모습들도 마주 할 수 었었기에 기분 좋게 마무리를 하며 잠을 청했다.

언제가 될지 알 수는 없지만, 나중에 현실에서 꼬맹이 손녀들과의 실제 만남을 기약하며...


딩동! 딩동!

영애 씨가 눈을 떴다. 이번에 초인종 벨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둘째 아들의 목소리였다.

'휴~ 이제야 현실로 돌아왔나 보다. 일어나 보자!'

그런데...


에필로그

영애 씨의 반복되는 꿈...

그러나 그 꿈은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 정도로 시간은 엄청나게 차이가 났다.

딸과 아들은 결혼을 해서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있고...

남편은 이미 돌아간 상태라고 했다.

평소 미래에 대한 동경이나 궁금증도 없었다.

영애 씨는 왜 자꾸 이런 꿈들을 꾸게 되는 걸까?

그래도 다행히 이번에는 익숙한 아들 목소리를 제일 먼저 들을 수 있었다.

영애 씨의 바람대로 현실로의 복귀... 가 맞겠지?


다음 회차에서 계속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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