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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돌 Feb 26. 2024

엄마라고! 진짜 우리 엄마?

'누가 너거 엄마 죽었다더나?왠 호들갑이고! 참나!'

평소와 다름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오늘도 남편과 자녀들의 출근 준비를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정신없이 설쳤더니 기운이 쭉 빠진다.

'휴... 나도 이제 몸이 예전 같지는 않네...'

잠깐 소파에 지친 몸을 기댔다.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룰 황...."

'어? 이건 무슨 소리지? 웬 천자문 소리가 들리는 거지? 옆 집에 애기들이 연습하고 있나?'

옆 집이라고 하기엔 그 소리가 들리는 거리가 너무 가까운 것 같았다. 마치 옆 방에 누군가 있는 것처럼...


"영애야! 영애야!"

'이건 또 뭐지? 영애라면... 나 아닌가? 누가 나를 부르는 거지?'

'오늘 약속이 있었나? 그렇다고 내 이름을 이렇게 부를 만한 친구들은 근처에 없는데...'

다시 또 들려온다!

"영애야! 거기 없느냐! 애가 어디갔노?"

"그럼 순애야!"


'뭐지? 순애도 찾는 거야? 순애는 내 사촌동생 이름이랑 똑같은데... 잠깐만....'

나와 사촌 동생을 찾는 남자의 목소리를 가만히 집중해서 들어보기로 했다.

'어! 이 목소리는... 큰 아버지 목소리 같은데... 말도 안 돼. 큰 아버지 돌아가신 지가 언젠데....'

갑자기 뭔가 싸한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어머나!"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거기 영애냐? 거기 있으면서 왜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는 거냐!"

"빨리 여기 와보거라. 큰 애비 물 한 잔만 떠다오."

"아... 네.."

엉겁결에 대답을 하고 말았다. 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도 하지 못했으면서...

좀 전에 소리를 지르며 놀랬던 이유는 놋그릇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내가 알고 있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입고 있는 옷도 좀 전에 주방일을 하면서 입었던 낡은 헌 옷이 아니라 검은색과 하얀색이 어우러진

교복 같은 옷이 입혀져 있었다. 머리는 옛날 중고등학교 여학생들이 주로 했었던 단발머리로 바뀌어있고...

피부도 땡글땡글(?) 한 것 마냥 다시 젊어진 기분이 들었다.

손등을 봐도... 손으로 얼굴을 만져봐도 주름이 잡히질 않는 것 같아다.

나도 모르게 기운이 샘솟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왜 교복을 입고 있는 거지... 갑자기 웬 단발머리까지?'

혼란스러웠다.


"영애야! 거 물 한잔 떠오는데 뭐가 이리 올래걸리더냐? 에헴!"

"아! 네. 지금 가고 있어요."

직감했다. 나를 애타게 부르시며 물 심부름을 시키시는 분은 분명 큰아버지시라는 걸...

이 상황이 혼돈스럽긴 하지만, 더 이상 큰아버지를 기다리게 해 드릴 순 없었다. 내 기억의 큰아버지는

자상하시기도 하지만, 화가 나시면 호랑이 같이 무서운 분이셨기에... 일단은 얼른 가져다 드리는 게

급선무라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큰아버지! 늦어서 죄송해요. 여기 가져왔어요."

"그래! 왜 이리 늦었느냐! 여기 와서 앉아 보거라."

물을 떠 오면서 혹시나 했는데... 상상했던 예전 그 모습 그대로이셨다.

한복 차림에 머리에는 상투를 트시고, 긴 곰방대를 길게 늘어뜨리며 방 문을 열고 앉아 계시던 그 모습.

큰아버지의 모습을 마주하며 솔직히 뒤로 넘어갈 듯이 놀랐었지만, 내색을 할 수 없었다.


그때, 갑자기 내 이름이 또 한 번 불려졌다.

"영애 언니! 어디 있었는데?"

나보다 더 조그마한 아이가 옆에서 웬 아저씨들이랑 같이 뛰어 오는 것이 아닌가?

사촌동생 순애였다. 그 뒤를 따라오는 두 명의 아저씨들은 최 씨와 박 씨 아범인 듯했다.

'왜 이 사람들도 여기 있는 거지? 순애는 또 갑자기 왜 저렇게 어린아이로 나오는 거고...'

'내가 지금 뭔가에 홀렸나?'라는 생각에 빠져있던 찰나...

"영애야! 니 오늘 왜 그러노? 어디 아프냐?"

순간 정신을 차렸다. 큰아버지께서 계속 질문을 하시고 계셨는 걸 깜빡했다.


"아니요. 큰아버지... 그냥..."

"그래. 순애도 왔고, 같이 여기 와서 앉아봐라. 어제 큰애비가 시킨 건 다 외웠나?"

'잉?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어제 뭘 배웠다고?'

옆에서 눈치 없는 순애가 큰 소리로 대답한다!

"네! 아버지! 전 좀 전에도 다 외웠었잖아요.ㅎㅎㅎ"

해맑은 표정으로 함박웃음을 보이는 순애.

'아! 그럼 아까 들렸던 천자문 소리가 순애 목소리였구나.'

"영애 니는 공부 좀 했나?"

우물쭈물하다가 나도 모르게 그만..."네. 저도 다 했어요."

정확히 어떤 내용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나도 모르게 대답이 튀어나와 버렸다.

"그래! 역시 우리 첫째 영애는 큰애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한 번 외워봐라!"

"네!"

'에이! 모르겠다. 그냥 천자문은 원래 알고 있으니깐... 그게 아니면 혼나면 되고... 할 수 없지.'

국민학교 시절, 큰아버지께 숙제 검사를 맡는 것처럼 큰 소리로 천자문을 읊어 나갔다.

"하늘 천, 땅지, 검을 현, 누룰 황, 집우, 집주~~~~~~~"

"아이고! 역시 우리 영애가 최고네! 여기 떡이랑 엿있으니깐 와서 먹거라!"

'휴~ 다행이다.'

안도의 숨을 쉬면서 순애와 같이 큰아버지 옆에 앉아서 준비되어 있는 다과를 같이 먹었다.

"니 애비는 아직 공장에 있나?"


그렇다. 당시 아버지는 꽤 규모가 큰 두부공장을 운영하시고 계셨다.

아까 순애 뒤를 달려오던 최 씨, 박 씨 아범은 소위 말하는 우리 집안에서 일하시던 하인들이었다.

"네! 큰아버지. 아버지는 공장에 나가신 것 같아요."

"이제 우리 영애가 몇 살이고?"

'교복을 입은 걸 보니... 중학생인가? 아니다... 난 아직 중학생은 아닌 듯 했다. 그럼...'

순간 순애의 모습을 보니 현재 내 나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순애와 난 두 살 차이였는데, 4학년 3반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는 순애를 보고 나서 재빠르게...

"네! 이제 저 13살이에요. 내년에 중학교 올라갑니다."

"그래. 우리 영애 다 컸네. 그럼 이거 먹고 들어가서 쉬고. 내일은 늦지 말고 온내이!"

"네. 알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어린 시절 큰집과 우리 집은 거의 붙어 있어서 매일 큰아버지께 문안인사를 드리고, 사촌동생들과

함께 글공부를 배우기도 했었다. 아마 그때 배운 실력이 몸에 밴 탓인지 몰라도 나 역시 아직도

붓을 지니며 틈틈이 글을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여긴 내가 아는 그곳이 맞는 것 같았다.


넓은 마당과 기와집, 그리고 푸른 잔디와 정원이 잘 꾸며진... 나의 옛 고향집이 분명했다.

우리 집은 큰 집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는데, 몸이 기억하는 건지 몰라도 허둥지둥 대는 것 없이

집으로 가는 방향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 이리저리 둘러보니 옆에서 일하는 하인분들도 예전 그대로였다.

"영애 아가씨! 이제 집에 가나 보네요? 큰 어르신께서 맛있는 거 많이 주시던가요?"

"아가씨 준다고 떡이랑 식혜를 얼마나 준비해 놓으라고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딸 보다 더 좋아하시는 것

같다니깐... 누가 보면 영애아가씨가 친딸인 줄 알겠네요."


큰아버지는 나를 정말 예뻐해 주셨다. 어떨 때는 친딸 이상으로 챙겨주시기도 하셨다.

'가끔 그런 큰아버지가 그립기도 했었는데... 이렇게 눈앞에서 마주 할 수 있다니...'

스스로 볼을 꼬집어 보기도 했지만, 전혀 아프지 않았다. 이건 꿈이 아닌 것 같았다.


"영애야!"

또 한 번 누군가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하고 반가운 목소리다.

'설마... 엄마?'

'엄마 목소리 같은데... 진짜 우리 엄마라고?'


나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 난 뒤 후다닥 뛰기 시작했다.

'엄마라고? 돌아가신 지가 언젠데... 큰아버지도 지금 살아계시니 그럼 당연히 엄마도 맞겠지?'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몇 십 년 만인지도 모르겠지만 엄마 목소리를 다시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고,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그 품 안에 다시 한번 안겨 볼 수 있다는 기쁨에...

"엄마! 어딨 어요!"

"엄마! 영애 왔어요!"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마주한 엄마... 그 첫마디는...

"얘가 갑자기 왜 이러노?너거 엄마 죽었다카더나!  이리 호들갑이고? 참나..."

"아침에 그렇게 늦잠 자고 혼나서 나가더니만... 미안한 게 있었나 보지?"

'그런데...사실 아닌가요? 우리 엄마 돌아가셨는데...

왜 옛날 모습 그대로 이렇게 있는건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진짜! 이 놈의 딸아 오늘 와 이러노?"

"아니에요! 그냥 엄마 보니깐 좋아서 그런 거지..."


'오늘 아침 늦잠을 잤었나 보다. 그래서 야단도 맞았고...' 그래도 지금 이런 건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토록 그리웠던 엄마가 내 눈앞에 계신다.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

지금 이 순간이 꿈이라도 상관없을 것 같다. 엄마와 이렇게 다시 웃으며 대화를 해볼 수 있다는 이 자체만으로도 나에겐 너무나 크나큰 행복이기 때문에...


"빨리 씻고 저녁 준비나 같이 하자! 니 동생들도 지금 배고프다고 난리네."

"알겠어요! 내 금방 옷 갈아입고 나올게요!"


저녁 같이 준비한다는 게 이렇게 신이 날 정도로 기쁠 일은 아닐 텐데... 매일 아침, 저녁으로 현재 우리 집에

있는 네 명의 장수들을 위해 항상 준비하던 일인데... 그 일이 너무 고되고, 지쳐있었는데...

엄마가 또 저녁을 같이 준비하자고 하신다. 그런데 이 말은 너무나 반갑고 정겨움마저 느껴졌다.

오늘은 우리 집 안의 장수들의 저녁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들은 각자 알아서 챙겨 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됐으니... 잠시 그들에 대한 생각은 접어두기로 했다.


"엄마! 내 뭐 준비하면 되노?"

"야가 오늘따라 와 이리 신났노? 평소에는 지만 시킨다고 주디가 닭발만큼 튀어나오더니. 이상하네."

"니 뭐 좋은 일 있었드나?"

"당연히 좋은 일 있지요! 엄마는 잘 모르겠지만, 엄마를 만났잖아요!"


'솔직히 지금도 헷갈린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만약 꿈이라면 잠시동안이라도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와의 이 소중한 시간... 깨고 싶지 않다.'


에필로그...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상황.

주인공 '영애씨'는 생각지도 못하게 추억이 아련한 국민학교 시절의 시간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돌아가셨다고 생각한 분들이 생생하게 살아 계시는 모습으로

마치 어제 만났던 것 마냥 일상생활에서 보는 것처럼 '영애씨'를 대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경험한다.

꿈일까? 현실일까?

왜 하필 '영애씨'는 이런 꿈을 꾸게 된 것일까?


다음 회에 계속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매주 일요일... 3회는 시간 약속을 잘 지켜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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