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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한다는 것

by 하얀

2년간 양양에 머무르면서 생활을 기록하는 것이 목표였다. 2년 뒤에 다시 도시로 갔을 때, 온전히 다 2년간의 생활이 느껴질 테니까 말이다. 아이들의 학교 이야기도 담아보고, 내가 생각하는 시골 생활 이야기도 담아보고, 생각지 못한 소소한 시골 정보들까지 남겼다. 2년간의 생활이 아쉬워서 다시 연장에 들어갔다. 양양 생활 만족도와는 다르게 내 기록은 멈추게 되었다. 첫째는 바쁘다는 이유가 가장 컸다. 자격증도 따고, 새로운 동아리도 시작하고, 새로운 일자리도 도전해 보면서 나의 하루하루가 바쁘게 지나갔다. 잠들기 직전, 새벽기상을 다짐하며 잠이 들지만 바쁘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기록이 미뤄졌다.

3년 차 양양생활은 그렇게 흘러만가고 내 기록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나 다시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노트북 앞에 앉게 만든 그날이었다.



분주한 일요일 아침이다. 아침부터 학교에 갈 준비로 온 가족이 정신이 없다. 딸아이만 남일인 듯 한가해 보였다. 찰리는 일요일 학교 가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평일 학교 가는 날과 다르게 학교 갈 준비로 나와 신랑을 더 바쁘게 했다. 전날 잠들기 전에도 어떤 옷을 입고 학교 가야 하는지 정신없게 하더니 아침까지 연장선에 있다.


"엄마!~~ 나 샤워를 하고 가야겠어!"

"찰리야! 네가 언제부터 아침에 샤워하고 갔다고 그래?"

"엄마! 오늘은 평생 기록에 남는 날인데 샤워는 하고 가야지?"

"그렇긴 한데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니?"

"엄마! 나 샤워하고 나오면 머리에 오일도 발라줘~"

머리부터 발끝까지 준비과정이 이리 복잡하다니. 우리 집 아들이 아닌 것만 같다. 아이가 화장실 하나를 차지하고 모든 아침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신랑이 다른 화장실 사용에 대해 툴툴거리면서도 찰리 모습이 재미있어 보였는지 같이 신나 했다.

"찰리야~ 엄마가 선생님한테 물어봐서 엄마 아빠도 학교 가도 되는지 물어볼게! 먼저 가있어!!"

"알았어! 엄마 진짜 나 가야겠다. 나 먼저 갈게~ 이따 와~~~"

찰리를 보내두고 전교생 엄마들이 단톡방에서 수다가 시작됐다. 화두는 [우리도 학교 가도 될까요?]였다. 일요일인데 도대체 아이도 학부모들도 학교를 가고 싶어 안달인 걸까.


유명 연예인과 유명 선생님이 오셔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촬영일이었다. 연예인도 궁금하고 선생님도 궁금하고 시골 분교 학생들과 무슨 촬영을 할지 너무 궁금했다. 전교생이 4명인 이곳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 모든 것이 궁금했다. 결국 작가님을 통해 허락을 구하고 엄마들과 4시에 학교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촬영은 반드시 예상과는 다른 법인가보다. 아이들이 너무 잘하고 있다며 이번에 찍는 것까지 하고 올라오시라고 연락이 왔다. 30분 뒤, 아이들이 초 집중하는 관계로 조금만 더 있다 올라와달라는 말씀에 1시간가량 엄마들의 수다가 이루어졌다.

나 : 제가 그때 일이 있어서 작가님이랑 통화를 못해봤는데, 어떻게 우리 아이들이 촬영하게 된 거예요?

엄마 1: 몽쌤이 올리시는 블로그 보신 거 같아요~!

엄마 2: 선생님 블로그 보고 연결된 거예요?

엄마 3: 블로그 보고 이런 학교가 진짜 있는지 궁금했다고 들었어요.


블로그로 아이들의 작년 기록을 보고 전학을 결정했던 3월을 떠올랐다. 나도 블로그 보고 마음을 굳혔던 게 생각났다. 3월 나의 마음처럼 방송국 사람들도 놀랐을 것을 알았다. 찰리네 학교 같은 곳이 있구나! 싶은 마음에 바로 연락했을 방송국 사람들!! 그 마음을 십분 이해했다. 블로그 통해서 몇 명이나 학교생활을 보겠을까 했지만 생각지 못한 6학년 졸업선물이 됐다. 전교생 4명과 선생님의 생활을 전 국민이 보게 될 것이다. 상담 전화가 빗발치는 것은 아닐까? 아마도 전학이 어려움을 전해야 하는 선생님이 바쁘실 것 같다. 폐교가 결정 났음을 알려야 하는 아쉬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기록이 있지 않은가! 기록들로 구룡령의 마지막 아이들은 최고의 선물을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까지도 남긴 자국들로 아이들은 평생 기억할 것이다. 그것이 아이들의 살아가는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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