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용서받을 수 없는 비뚤어진 호감

남학생의 집요한 뒤따라감, 법은 이를 스토킹으로 봅니다.

by 장유미 변호사
학원 특강이 있던 날이었다. 정규 수업에 특강까지 듣고 나니 시간이 꽤 늦었다. 하품을 하며 정류장 팻말 아래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남학생 하나가 김지영 씨에게 눈을 맞추며 안녕하세요, 했다. 얼굴이 익숙하기는 했지만 잘 모르는 사람이었고, 김지영 씨는 그냥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인가 보다 싶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너 걸음 정도 떨어져 서 있던 남학생은 조금씩 조금씩 김지영 씨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남학생과 김지영 씨 사이에 있던 사람들이 제각각 버스를 타고 떠나자 어느새 남학생은 김지영 씨 바로 곁에 서게 되었다.

"몇 번 타세요?"
"네? 왜요.? "
"데려다줬으면 하시는 거 같아서."
"제가요?"
"네."
"아닌데요. 아니에요. 가세요."

누구냐고, 저를 아시느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왠지 대화를 더 이어 가기가 두려워 김지영 씨는 눈을 피하며 멀리 자동차의 불빛들만 보고 서 있었다. 기다리던 버스가 오자 김지영 씨는 못 본 척 제자리에 서 있다가 마지막에 달려가 탔는데, 남학생도 김지영 씨를 뒤따라 재빨리 버스에 올랐다. 버스창에 비친 남학생의 뒷모습을 계속 흘끔거리며, 그도 창에 비친 김지영 씨를 흘끔거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무서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학생, 괜찮아요? 어디 아파요? 여기 앉아요."
새하얗게 질려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김지영 씨에게 퇴근길인 듯 피곤한 얼굴의 여자가 자리를 양보했다. 김지영 씨는 여자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손가락 끝을 잡고 눈빛을 보냈다. 여자는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몸이, 많이 안 좋아요? 병원에 데려다줄까요?"
김지영 씨는 고개를 저으며 남학생이 못 보게 손을 아래로 내려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펼쳐 전화기 모양을 해 보였다. 여자는 김지영 씨의 손과 표정을 번갈아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잠시 생각하다가 가방에서 커다란 휴대폰을 꺼내 김지영 씨에게 슬그머니 건넸다. 김지영 씨는 고개를 푹 숙여 가리고 아버지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나 지영이 정류장으로 나와 빨리 제발

버스가 집 앞 정류장에 거의 도착했을 즈음 김지영 씨는 간절한 마음으로 창 너머를 내다보았다.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남학생은 김지영 씨의 한 걸음 뒤에 서 있었고 버스의 하차 문이 열렸다. 버스에서 내리기가 무서웠지만 그렇다고 늦은 시간에 하염없이 낯선 동네로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제발 따라오지 마라, 따라오지 마라, 따라오지 마라. 김지영 씨는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아무도 없는 정류장에 발을 내디뎠는데, 남학생도 뒤따라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은 둘 뿐이었다. 외진 정류장에는 행인 한 명 지나가지 않았고, 가로등마저 고장 나 주위가 유독 깜깜했다.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은 김지영 씨에게 남학생이 다가오며 낮게 읊조렸다.

"너 항상 내 앞자리에 앉잖아. 프린트도 존나 웃으면서 주잖아. 맨날 갈게요, 그러면서 존나 흘리다가 왜 치한 취급하냐?"
몰랐다. 뒷자리에 누가 앉는지, 프린트를 전달할 때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통로를 막고 선 사람에게 뭐라고 말하며 비켜 달라고 하는지. 그때 출발했던 버스가 멈추더니 아까 그 여자가 내리면서 소리쳤다.

"학생! 학생! 이거 두고 내렸어요!"
여자는 자신의 목에 두르고 있던, 얼핏 보기에도 고등학생 김지영 씨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스카프를 흔들며 달려왔고 남학생은 썅년들, 이라고 욕하고는 성큼성큼 걸어가 버렸다. 여자가 정류장에 도착하고, 김지영 씨가 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을 때, 아버지가 헐레벌떡 골목에서 뛰어나왔다.

⟪출처⟫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지음, 민음사, 2016. 65-68p




남학생이 집에 가는 김지영 씨를 따라나섰던 그 시작에는, ‘호감’이라는 이름의 감정이 있었습니다. 호감은 누군가를 좋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햇살에 반짝이는 윤슬처럼 빛나고, 봄바람처럼 따스한, 두근거림과 설렘이 어우러진 싱그러운 감정입니다. 그 감정이 본래의 빛깔 그대로 김지영 씨에게 닿을 수만 있었다면, 이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호감은 방향을 잃었습니다. 한 사람의 마음이 다른 한 사람의 동의 없이 그 세계를 넘보는 순간, 설렘은 집요함으로 바뀌고 풋풋함은 공포로 바스러졌습니다. 김지영 씨는 ‘호감’이라는 말로 포장된 불안의 실체와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녀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불편한 기색을 보이자, 남학생은 자신의 마음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사실 앞에서도 ‘멈추어야 할 순간’을 놓쳤습니다. 이렇게 사적인 감정이 도화선이 된 불안한 상황, 균형이 무너진 그 순간에 법은 어떤 말을 할까요?


김지영 씨가 고등학생이었던 소설 속 배경은 1998년에서 2000년으로 추정됩니다. 당시에는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존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경범죄처벌법」에 ‘지속적 괴롭힘’이 들어오기 훨씬 전이죠. 남학생의 행동이 일반인의 상식에서 보자면 석연치 않지만, 법전 어디에도 남학생의 행동을 금지하거나 처벌하는 규정은 없었습니다. 한 사람이 공포와 불안감으로 인해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상황 앞에서도 국가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그 시대의 법적 안전장치의 결핍을 반영해서인지 소설 속에서도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김지영 씨의 아버지는 김지영 씨의 평소 언행이 남학생을 따라오게 했다며 오히려 김지영 씨를 나무라죠.


이렇듯 법이 없다면, 개인의 안전은 오롯이 각자의 어깨 위에 놓일 수밖에 없습니다. 불안과 공포를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세상은 우리가 바라는 사회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법을 만듭니다. 법은 불안을 잠재우고, 불의 앞에서 개인이 홀로 무너지지 않도록 버팀목이 되어줍니다. 좋은 법을 세운다는 것은 우리 모두를 단단히 지키는 일입니다. 우리 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눈 돌리지 않고 직시하고, 귀 기울이며, 그 사건의 의미를 골똘히 생각해야 합니다. 사회는 수많은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려 돌아갑니다. 나와는 무관해 보이던 작은 움직임 하나가 어느새 내 일상 깊숙이 스며들기도 합니다. 불합리하고, 불편하고,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면 우리는 연대하여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누군가만 겪는 고통이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의 고통으로 번지기 전에, 그것을 끌어내어 말하고, 나누어야 합니다.


그러한 노력의 끝에, 2013년, 스토킹은 「경범죄처벌법」의 ‘지속적 괴롭힘’이라는 항목으로 법제화되었습니다. ‘지속적 괴롭힘’이란, 상대방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여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하여 면회 또는 교제를 요구하거나 지켜보기, 따라다니기, 잠복하여 기다리기 등의 행위를 반복하여하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비록 스토킹 행위가 금지되는 행동에 이름을 올리기는 하였지만, 과연 ‘경범죄’라고 불리는 게 적절한가요? 스토킹 행위에 뒤따르는 무시무시한 강력범죄들을 생각하면, 병렬적으로 기재된 다른 경범죄인 무임승차나 장난전화에 비등한 것이 맞을까요? 처벌 수준은 또 어떤가요. 스토킹 행위를 한 자에 부과되는 벌금은 고작 10만 원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실무에서는 범칙금 8만 원으로 끝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처벌수위는 잘못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억제력이 있어야 하는데, 과연 범칙금 8만 원이 제 역할을 다 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요. 2016년 가락동 스토킹 살인사건이나 2021년 노원구 세 모녀 살인사건을 예방할 수 없었던 것에는 이렇게 조악스러운 법도 한몫하였습니다. 국가가 스토킹을 단속하겠다고 하면서도 「경범죄처벌법」에 편재한 것 자체가 얼마나 이 행위의 무서움을 경시하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국가가 제대로 된 방어선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가 계속되자 피해자는 속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상당히 늦었지만, 그래도 외양간을 고치는 작업이 있었습니다. 1999년에 처음 논의된 이후 22년 만에 드디어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현실이 된 것이죠. 이 법이 철옹성 같은 국회의 문턱을 넘은 것은 2021년 노원 세 모녀 살인사건이 발생한 다음날이었습니다. 법은 흉기를 소지하지 않은 단순 스토킹범죄에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꺼내 들었습니다. 그럼, 김지영 씨의 사건이 2025년 발생했다고 하면 이 법을 적용할 수 있을까요? 억울하게도 그렇지 못합니다. 바로, 스토킹 ‘행위’가 스토킹 ‘범죄’가 되기 위해서는 ‘지속성 또는 반복성’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스토킹 행위가 단 1회에 그친 경우에는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있습니다. 단 한 번으로도 견딜 수 없는 극한의 고통을 최소한 두 번은 감내하라고 하는 것은 부당한 강요가 아닐까요? 소설 속 김지영 씨도 단 1회의 스토킹 피해를 당했지만, 이는 김지영 씨의 평온한 일상을 완벽하게 무너뜨렸습니다. 소설에 묘사된 그날 이후 김지영 씨는 전혀 괜찮지 않았습니다.


결국 김지영 씨는 학원을 그만두었고, 이후로도 한동안 어두워진 후에는 정류장 근처에 가지 못했다. 얼굴에서 웃음을 지웠고, 모르는 사람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남자들이 다 무서웠고, 계단에서 동생과 마주치고는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출처⟫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지음, 민음사, 2016. 69p


대한민국은 다양한 사회적 요구와 정책 필요에 따라 많은 특별법을 제정해 왔으며, 이로 인해 ‘특별법의 나라’로 불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법을 만든다는 일은 항상 지난한 싸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스토킹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법이 마침내 별도의 이름으로 자리를 얻었다는 것은 우리 사회를 한 발짝 앞으로 걷게 한 작지 않은 성취이지만, 법의 제정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 듯 안도하기엔 아직은 이릅니다. 이제 우리는 그 법 안에 담긴 조항 하나하나가 정말로 피해자의 삶을 지켜줄 수 있는지를 냉철한 시선과 아픈 마음으로 더욱 깊이 들여다봐야 합니다.


2022년 신당역 역무원 살인 사건은 스토킹처벌법의 보호망이 얼마나 헐거운지를 보여주는 방증으로 남았습니다. 스토킹이 목숨까지 앗아가는 무자비한 현실 앞에서 법은 너무나도 무력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스토킹처벌법이 피해자 보호에 소홀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반의사불벌죄가 폐지되어, 이제는 피해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해자가 합의를 핑계 삼아 두려움에 떨고 있는 피해자를 강압적으로 압박하는 일, 더 이상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법은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멉니다. 스토킹 범죄의 예방과 피해자 보호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견고하게 쌓아야 할 방어선입니다. 그리고 그 시점은 바로 지금입니다. 경찰청의 데이터에 따르면, 112 신고시스템 내 스토킹코드 신설 이후, 스토킹 신고건수는 2019년 5468건, 2020년 4515건, 2021년 1만 4509건, 2022년 2만 9565건, 2023년 3만 1824건입니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총 신고건수는 무려 8만 5881건입니다. 신변보호를 요청할 수밖에 없는 그 절박한 사람을 우리는 지켜내야 합니다. 더 이상 또 다른 피해자가 법의 보호망 틈새에 떨어지도록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그 문장이 내게 말을 걸었다, 조용히.

그래서 써 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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