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씨의 초등학교 1학년 짝꿍의 짓궂은 행동, 어떻게 대해야 할까?
학교생활 첫 번째 난관은, 많은 여학생들이 경험한 바 있는 남자 짝꿍의 장난이었다. 김지영 씨에게는 그저 장난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장난보다는 괴롭힘이나 폭력으로 느껴졌고 너무 괴로웠는데 언니와 어머니에게 울면서 하소연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짝꿍은 어느 날부턴가 김지영 씨를 툭툭 건드렸다. 자리에 앉다가, 줄을 서다가, 가방을 메다가 실수인 듯 어깨를 스쳤다. 김지영 씨와 마주치면 일부러 가까이 오며 제법 아프게 팔을 툭, 치고 지나갔다. 지우개, 연필, 자 같은 학용품을 빌려 가서는 곧바로 돌려주지 않았고, 달라고 하면 멀리 바닥에 던지거나 엉덩이에 깔고 앉거나 가끔은 빌려 간 적이 없다고 막무가내로 우기기도 했다. 김지영 씨가 더 이상 학용품을 빌려주지 않자 옷차림이나 말실수를 꼬투리 잡아 놀리고, 가방과 실내화 주머니를 엉뚱한 자리에 갖다 놓아서 한참을 찾아 헤매게 했다.
이른 여름 어느 날, 김지영 씨는 발에 자꾸 땀이 차서 실내화를 벗어 놓고 발을 책상 발걸이에 올린 자세로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짝꿍이 다리를 쭉 뻗어 김지영 씨 책상 아래에 놓여 있는 실내화를 힘껏 걷어찼다. 실내화는 줄 맞춰 놓인 책상 사잇길로 쭉 미끄러져 교탁 앞까지 나갔다. 교실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됐고, 선생님은 얼굴이 벌게져서는 교탁을 내리치며 물었다.
“이 실내화 누구 거야?"
김지영 씨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일단 무서웠고, 자신의 실내화가 맞긴 하지만 실내화를 걷어찬 짝이 먼저 자기가 했다고 말해 주길 기다렸다. 하지만 짝꿍도 접을 먹었는지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얼른 대답 안 해? 실내화 검사할까?"
김지영 씨는 짝꿍을 팔꿈치로 치며 낮게 네가 했잖아, 했고, 짝꿍은 고개를 더 숙이며 내 실내 아니잖아, 했다. 선생님이 교탁을 한 번 더 내리쳤고, 어쩔 수 없이 김지영 씨가 손을 들었다. 교탁 앞으로 불려 나간 김지영 씨는 반 아이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혼났다. 처음 실내화 주인이 누군지 물었을 때 대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순식간에 비겁한 거짓말쟁이에, 친구들의 귀중한 수업 시간을 빼앗은 시간 도둑이 되었다. 김지영 씨는 이미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변명도, 해명도 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출처⟫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지음, 민음사, 2016. 38-40p
소설 속에서 초등학교 1학년인 김지영 씨는 짝꿍의 행동으로 인해 학교생활이 힘들었다고 합니다. 조금 귀찮거나 신경 쓰이는 정도를 넘어서 눈물을 펑펑 쏟을 만큼 괴로워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지영 씨가 1982년생이니 초등학교 1학년은 1989년입니다. 그때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없었지만(이 법은 2004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학교폭력이라는 단어가 자꾸 떠올랐습니다. 만약, 이 상황이 1989년이 아니라 2025년이라면, 우리는 그 법을 불러올 수 있을까요?
초등학교 1학년은 만 6세 또는 만 7세입니다. 자녀를 키우시거나 주변을 둘러보시면 잘 아시겠지만 이성적인 언행을 기대하기에는 턱없이 어리죠. 잘못된 행동을 해도 형법의 처벌받지 않는 만 14세 미만일 뿐만 아니라, 소년법상 보호처분 대상이 되는 만 10세보다도 어린 나이입니다. 그렇기에 법원도 초등학교 1학년의 행위가 학교폭력인지는 엄격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하며(대구지방법원 2024. 5. 8. 선고 2023구합24106 판결), 실제 2022학년도 전국 초등학교 1학년 학교폭력 신고 중 26%는 학교폭력이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나기도 하였습니다(교육부 2023년 국정감사 자료).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소설에서 짝꿍의 언행이 학교폭력에 해당하는지도 세심하게 들여다보겠습니다.
먼저, 짝꿍이 김지영 씨에게 한 행동들을 보시지요. 어깨와 팔을 툭툭 건드리는 것을 시작으로, 빌려간 학용품을 제대로 돌려주지 않고 바닥에 던지거나 엉덩이에 깔고 앉았습니다. 심지어는 빌려간 적이 없다고 우기기까지 하죠. 또한, 옷차림이나 말실수를 꼬투리 잡아 놀리거나 가방과 실내화를 엉뚱한 곳에 숨겨놓기도 하였습니다. 수업시간에 김지영 씨의 실내화를 발로 차서 선생님께 혼나게 만들기도 했고요. 아무리 봐도 일회적이거나 우연히 나온 행동이라고 여겨지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계속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어깨와 팔을 툭툭 건드리는 행위로 인해 김지영 씨가 다친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스스로도 제법 아픈 정도였다고 하죠. 겉으로 보기에는 가벼운 접촉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는 명백한 ‘폭행’에 해당합니다. 법에서 말하는 폭행이란 상대방의 신체에 대하여 불법한 유형력의 행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로 인해 다쳤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만약, 다치는 결과까지 갔다면 더 강하게 처벌받는 ‘상해죄’가 됩니다). 짝꿍은 일부러 김지영 씨를 건드려서 시비를 걸었으므로 이는 단순한 장난을 넘어서서 폭행에 해당하며 김지영 씨의 신체적 불편과 심리적 불안까지 초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학용품을 바닥에 던지거나 깔고 앉은 것은 어떨까요? 만약 이로 인해 학용품이 망가졌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만으로는 학교폭력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행위가 학생에 대한 모욕과 괴롭힘의 방법이라면 이는 정신적 피해인 학교폭력으로 인정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을 함부로 대한다면 심리적인 위축을 느끼거나 마음속 상처가 될 수 있겠지요. 물건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결국 마음을 함부로 대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또한, 소설에서는 학용품을 빌린 적이 없다고 막무가내로 우겼다는 장면도 나오는데, 만약, 진짜로 돌려주지 않았다면 이는 금품 갈취 행위로 이 역시 학교폭력으로 판단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지요. 짝꿍은 위와 같은 행동으로도 모자라 김지영 씨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말을 반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옷차림이나 말실수를 놀리는 방법으로요. 이렇듯 상대방을 조롱하거나 비웃는 언어적 괴롭힘 역시 학교폭력에 포함됩니다. 언어폭력은 학교폭력 유형 중 가장 높은 비중(37.1%)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심각한 괴롭힘입니다(교육부, 2023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 언어는 누군가의 영혼을 찌르는 화살이 될 수 있습니다. 작은 말 한마디가 김지영 씨의 하루를 흔들었을 것이고, 작은 웃음거리 하나가 마음속 깊은 곳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을지도 모릅니다. 이로 인해 김지영 씨는 수치심을 느끼거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고, 하지 말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반복하였다면 충분히 학교폭력으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가방과 실내화를 숨겨놓는 행위는 어떨까요? 학교에서 가방과 실내화는 안정적인 학교생활을 위한 필수품입니다. 이를 숨기는 행위는 학생의 일상을 무너뜨릴 뿐 아니라 소외감과 불안감, 모멸감을 안겨주는 심각한 정신적 폭력이 됩니다. 사라진 가방을 찾아 헤매는 불안, 엉뚱한 곳에서 발견된 실내화를 마주하는 당혹감과 불편함은 쉽게 잊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행위로 인해 정신적 고통이나 재산상 피해를 유발하면 학교폭력으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 학교폭력예방 누리집 「늘품우리」).
끝으로, 실내화를 발로 차 선생님께 혼나게 만든 일은 명백히 고의적인 행동이며 김지영 씨에게 부당한 수치심을 안겨주었습니다. 잘못하지 않았음에도 죄인이 되어야 하는 자리, 억울함을 삼키며 서 있는 그 자리는 시간이 지나도 마음속에 선명히 남았을 것입니다(다른 학생이 나서서 진짜 범인이 밝혀지기는 하였지만 그로 인해 혼났던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죠).
사소하게 보였던 짝꿍의 행동은, 하나하나가 모두 학교폭력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위에서 소설 원문을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선생님은 짝꿍이 김지영 씨를 좋아해서 그런 거라고 하죠. 짝꿍에게는 김지영 씨의 관심을 끌기 위한 그저 작은 몸짓이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김지영 씨에게는 그 모든 순간이 가늘고 깊은 상처로 파였습니다. 어린 학생의 미성숙함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그 행동이 남긴 결과까지 가볍게 넘길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종종 문제를 일으킨 학생의 어린 나이만을 기억하고, 상처를 입은 학생의 어린 마음은 외면하곤 합니다. 어리다고 해서 아픔이 덜 한 것은 아닙니다. 여린 마음일수록 더 쉽게 흔들리기에, 작은 충격 하나에도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남을 수 있습니다.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아픔의 순간을 가볍게 지나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럼, 2025년이라면 이 사안을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요? 법이 있으니 법대로만 하면 되는 걸까요? 법은 종종 필요악이라고 표현됩니다. 없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사회 속에서는 어쩔 수 없이 요구되는 악이죠. 학교폭력예방법이 제정된 것은 의미 있는 변화였습니다. 학교폭력이 더 이상은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인식이 공론화된 것과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된 것은 분명한 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학교폭력 상황이 발생했을 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법으로만 해결하려는 부작용 역시 함께 따라왔습니다. 법원도 이러한 사회적 흐름을 의식하고 있어서, 특히 초등 저학년의 경우, 학교폭력으로 엄격히 의율 하기보다는 학교 내부에서 담임교사 등의 교육적 지도를 통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판시를 하기도 합니다(청주지방법원 2022구합50590 판결).
결국, 우리가 기대야 할 것은 법을 앞세우기 전에, 상처 입은 마음을 먼저 돌아보고 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입니다. 저는 세상에서 무서운 말 중에 하나가 ‘법대로 하자’입니다. 이 말에는 왠지 모든 대화의 문을 닫고, ‘피도 눈물도 없이’라는 무기를 들고 복병처럼 숨어 있는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오싹한 느낌이 있습니다. 학교폭력예방법은 무조건 최우선으로 적용할 도구가 아니라, 필요할 때 신중하게 꺼내야 할 마지막 수단이어야 합니다. 아프고 힘들더라도 법적 절차에 기대기 전에 먼저 상처받은 이의 마음을 듣고, 무너진 관계를 조심스럽게 회복하려는 노력이 앞서야 합니다. 그렇게 서로를 충분히 마주한 끝에 조심스럽게 건너야 할 마지막 다리, 그것이 법이어야 합니다.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그 문장이 내게 말을 걸었다, 조용히.
그래서 써 나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