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법은 있었지만 법은 없었다

15살, 김지영의 어머니가 눈물 삼키며 일한 방직공장… 지금은 나아졌을까

by 장유미 변호사
어머니는 국민학교를 마치고 집안일과 농사일을 돕다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서울로 올라왔다. 두 살 많은 이모는 이 미 상경해 청계천 방직 공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어머니도 같은 공장에 취직해 언니와 공장 언니 둘과 함께 두 평 남짓 벌 집방에서 살게 됐다. 공장 동료들은 거의 또래의 여자아이들이었다 나이도, 배움도, 집안 사정도 비슷비슷했다. 어린 여공들은 직장 생활이 원래 그런 건 줄 알고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며 일만 했다. 방직기계가 내뿜는 열기 때문에 덥다 못해 미칠 지경이었고, 안 그래도 짧은 스커트를 최대한 걷어 올리고 일을 해도 팔꿈치와 허벅지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시야를 가릴 정도로 뿌옇게 먼지가 날려 폐병을 얻는 이들도 많았다. 터무니없이 적은 돈은 대부분 오빠나 남동생들의 학비로 쓰였다.

⟪출처⟫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지음, 민음사, 2016. 34~35p




소설 속에서 김지영 씨 어머니가 몇 년 생인지에 대하여 정확한 언급은 없지만, 첫 아이를 1980년에 낳았으니, 1980년에 초산인 여성의 평균 연령을 추정*해보겠습니다. 가까운 가족의 예를 보면, 저희 엄마는 1983년에 초산이었고 그 당시 24살이었습니다. 큰 이모는 1980년에 초산이었고 그 당시 23살이었고, 작은 이모는 1984년에 초산이었고 그 당시 22살이었습니다. 통계치로 활용하기에는 너무나도 미약하지만 이를 근거로 활용하면 1980년대 초산인 여성의 연령을 대략 20대 중반 이전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럼, 김지영 씨 어머니의 출생연도를 1956년으로로 가정하고, 방직공장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이 15살이니까 노동현장에 뛰어든 시기를 1970년도라고 생각해 보기로 하죠.

* 국가통계포털에는 모의 연령별 출산율 통계자료를 1993년부터 제공하고 있습니다.


1970년에 아동의 노동은 어떠한 법적 보호를 받았을까요?

그 당시「헌법」은 ‘여자와 소년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 고만 규정할 뿐 소년의 나이나 특별한 보호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어떠한 언급도 없습니다. 이는 세월이 흐른다고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국가운영의 기틀을 잡으려는 헌법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럼 ‘특별한 보호’의 내용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는「근로기준법」이라는 아주 ‘훌륭한’ 법이 있습니다. 13세 미만자의 고용은 금지되었고, 18세 미만자는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위험한 업무는 할 수 없었죠. 그뿐만 아니라, 13세 이상 16세 미만자의 근로시간은 성인보다 짧게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사장님이 이러한 금지사항을 지키지 않는다면 감옥에서 2년을 살거나 20 만환(화폐단위 ‘환’에 대하여는 제2화 참고)을 내야 했기 때문에, 법에서 보호하고자 하는 제도가 과연 효과가 있는 것이냐는 측면에서는 제3화에서 말씀드린「양성평등기본법」이나「차별금지법안」보다는 훨씬 잘 갖추어진 법률이라고 할 수 있지요. 어떤가요? 제가 부러 ‘훌륭한’에 강조 표시를 한 것이 아닙니다. 55년이 지난 지금과 비교해 본다고 하더라도 손색이 없을 만큼 놀라울 만한 권리보호 조항들입니다. 게다가 이 모든 규정들이 현실에서 그대로 잘 지켜졌으니까요,라고 쓰고 싶은데, 글을 쓰는 마음이 착잡하고 손이 무거워집니다. 현실에서 잘 지켜졌다고 하면 전태일 열사가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앞에서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는 외마디 외침을 남기고 분신자살하지 않았겠지요(전태일 열사는 만 17세부터 공장에서 노동을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 아동노동에 대한 국가 차원의 통계가 없어서 그 규모나 환경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 당시 산업화 정책은 노동력 확보가 최우선이었기에 근무환경이 매우 열악했을 겁니다. 김지영 씨의 어머니가 말한,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며 일만 했다’가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그 시절의 처참함을 표현하는 것이겠지요. 게다가 그 대가도 일한 만큼에 상응하는 것이 아니라 ‘터무니없이 적은’ 것이었고요. ‘훌륭한’ 법은 분명히 있었지만 그 활자는 종이 밖을 걸어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법과 제도가 가치관(여기에서는 ‘법을 준수하여야 한다’는 것)을 견인하는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였지요.


오늘 우리는 김지영 씨의 어머니보다 훨씬 나은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청소년들은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주유소 등 노동의 현장에 있습니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청소년 통계에 의하면, 2023년 13세~18세 청소년의 아르바이트 경험은 11.1%이고, 15세~19세의 고용비율은 7.2%입니다. 고용노동부에 의하면,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만 20세 이하 청소년을 고용한 업체 4만 7530개 중 78.2%에 해당하는 3만 7049개에서 노동법 위반 사례가 있었습니다. 어른들의 보호를 받아야 할 청소년들이지만,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시작하거나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며, 심지어는 최저임금에도 미치는 못하는 적은 금액을 받는 등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이 아직은 현실입니다(아웃소싱타임스, 2023. 10). 1970년의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 모두가 ‘법의 감시자’이자 ‘수호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주위를 둘러보시고,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 근로자가 있다면 손을 내밀어 주십시오. 청소년들 또한 자신의 권리를 정확하게 알고 부당한 대우에 정당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김지영 씨의 어머니처럼, “직장생활이 원래 그런 줄 알았다”라고 읊조리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그 문장이 내게 말을 걸었다, 조용히.

그래서 써 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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