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지워진 이름, 남겨진 질문

뱃속 동생을 지운 김지영 씨의 엄마는 죄가 있을까?

by 장유미 변호사
할머니는 진심으로 며느리를 생각해 입버릇처럼 말했다. 아들이 있어야 한다, 아들이 꼭 있어야 한다, 아들이 둘은 있어야 한다…
김은영 씨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는 갓난아기를 품에 안은 채 어머님, 죄송해요, 하며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 할머니는 따뜻하게 며느리를 위로했다.
"괜찮다. 둘째는 아들 낳으면 되지.'
김지영 씨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는 갓난아기를 품에 안은 채 아가, 미안하다, 하며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 할머니는 이번에도 따뜻하게 며느리를 위로했다.
"괜찮다. 셋째는 아들 낳으면 되지.


"만약에, 만약에, 지금 배 속에 있는 애가 또 딸이라면, 은영 아빠는 어쩔 거야?" 아버지는 벽을 향해 돌아누우며 대답했다. "말이 씨가 된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얼른 자"


어머니는 혼자 병원에 가서 김지영 씨의 여동생을 지웠다. 아무것도 어머니의 선택이 아니었지만 모든 것은 어머니의 책임이었다. 맹수에게 새끼를 잃은 동물처럼 울부짖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으며 의사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출처⟫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지음, 민음사, 2016. 27~29p




소설 속에서는 이에 대하여 “의학적 이유의 임신중절수술이 합법화된 게 이미 10년 전이었고, ‘딸’이라는 게 의학적인 이유라도 되는 것처럼 성 감별과 여아 낙태가 공공연했다’고 합니다. 마치 김지영 씨 어머니의 낙태가 합법화된 행위로써 묘사가 되어 있죠. 하지만 소설 속 김지영 씨 어머니가 낙태를 한 것은 1983년이었고, 이 당시에는 아직 형법상 낙태죄가 유효했습니다. 의학적 이유의 임신중절수술의 합법화는 모자보건법을 지칭하는 것이나, 그 당시 모자보건법은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유전성 질환, 전염성 질환,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한 임신, 법률상 혼인 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 임신,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히 해하고 있거나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를 두고 있었고, 김지영 씨의 어머니의 경우는 이에 해당하는 사정이 전혀 없었지요. 따라서 김지영 씨 어머니의 행동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 만환(*)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낙태죄입니다. 소설 속에서는 임신중절수술을 해 준 할머니 의사가 김지영 씨 어머니에게 미안하다면서 이야기를 하였다면서 따뜻한 분으로 묘사가 되어 있지요 마음이 따뜻한 것과는 별개로 할머니 의사 역시 김지영 씨 어머니와 동일하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 만환 이하의 징역에 해당하게 됩니다. 할머니 의사의 경우, ‘‘혼자서’ 병원에 온 김지영 씨 어머니에게 임신중절수술을 하였기 때문에 김지영 씨의 아버지의 동의를 얻지 않은 것도 위법합니다.

(*) 화폐단위 ‘환’은 1962. 6. 10에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으나, 형법에는 남아있다가 1995. 12. 29. 전면 정비 과정에서 ‘원’으로 변경되었다. ‘환’ 폐지 당시 10 환 = 1원이었으므로, 지금으로 환산하면 1,000원의 벌금이다.


그럼, 지금도 처벌할 수 있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2019년에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것과는 상관없이 김지영 씨 어머니와 할머니 의사는 낙태를 한 날로부터 일정기간이 경과한 이후에는 더 이상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거든요. 그 일정기간이 이 경우에는 3년입니다. 즉 1986년 이후에는 마치 죄를 짓지 않았던 것과 같은 상태가 유지됩니다. 아무리 범죄자라고 하더라도 국가가 일정기간 동안 처벌하지 않았다면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질 기회를 주고 법적 안정성을 보장해 주는 제도(공소시효) 때문이지요.


그런데, 김지영 씨 어머니만 잘못일까요?

저는 ‘아무것도 어머니의 선택은 아니었지만’을 주목하였습니다. 형법은 기본적으로 고의로(자의적으로) 위법한 행위를 한 사람에게 사회적 형벌을 가합니다. 과실범의 경우는 형법에서 명백하게 ‘과실범도 처벌한다’는 규정이 필요하죠. 김지영 씨 어머니는 스스로 병원에 찾아갔으므로 고의로 낙태를 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자의였을까요? 본인의 그 결과를 원했을까요? 그랬다면 맹수에게 새끼를 잃은 동물처럼 울부짖었을까요? 형법은 직접 실행한 사람(정범) 뿐 아니라 타인에게 죄를 범하게 한 자(교사범)와 타인의 범죄를 도운 자(방조범)도 처벌합니다. 김지영 씨 어머니가 딸을 낳을 때마다 “다음에는 아들을 낳으면 되지”라고 말씀하신 할머니와 이번에도 딸이면 어쩔 거냐는 질문에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은, 김지영 씨 어머니에게 어떠한 부담으로 다가왔을까요? ‘셋째 딸은 이 집안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겠구나.’는 생각이 드는 건 자연스러웠을 것이라고 보입니다. 할머니와 아버지가 명시적이고 직접적으로 명백하게 낙태를 종용한 것은 아니지만, 형법은 간접적인 행동과 부작위(법적으로 해야 할 일을 일부러 하지 않은 것, 여기서는 낙태를 막지 않은 것)도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실제 사건이 되었을 경우, 유죄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문제 삼을 수 있었을 거라 보여서, 좀 더 말씀드려 보았습니다.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그 문장이 내게 말을 걸었다, 조용히.

그래서 써 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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