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차이가 공간의 차이를 만듭니다.

<뮤지엄 산> Museum SAN(Space Art Nature) -2-

by 세미한 소리

사람마다 공간을 경험하는 내용과 방식이 다릅니다. 가족들과 함께 <뮤지엄 산>의 <그라운드> 전시 공간을 방문했었는데, 저는 공간을 통해서 자연과 건물, 건물과 작품, 작품과 관람객이 서로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직선과 곡선, 정적인 면과 동적인 면이 조화를 이루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경험했고, 딸은 공간을 경험하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일이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이 글의 주제이기도 한 소리를 통해서 공간을 경험했습니다.


뮤지엄 정원에 있는 <그라운드> 건물로 들어가서 계단을 통해 내려갔더니, 지하 동굴처럼 생긴 전시 공간이 나왔습니다. 전시 공간으로 들어가면 입구 반대편이 실제 동굴처럼 크게 뚫려 있는데, 그 밖으로 단풍이 물들어 있는 가을 산이 보였습니다. 안에서 보는 가을 산도 이미 아름다웠지만, 밖으로 나가서 보는 풍경에는 비할 수 없었습니다. 뚫려 있는 곳을 통해 밖으로 나가는 순간 시선이 확장되면서 안에서는 볼 수 없었던 깊은 산속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습니다. 공간 안에서 밖으로 나오면서 극적인 시각효과를 경험한 것이죠. 그러나 아들은 전시 공간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순간에 시각적인 경험이 아니라 청각적인 경험이 특별했다고 말했습니다.


전시 공간이 동굴과 유사했기 때문에 안에서는 모든 소리가 울렸습니다. 조용히 대화하고 걸어 다녔어도 울리는 소리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밖으로 나가는 순간, 울리는 소리가 바로 사라졌습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옆에서 말하고 걸어 다녔지만, 그 소리들은 산으로 흙으로 바람으로 날아가버렸습니다. 크게 뚫려 있고 연결되어 있는 바로 눈앞의 공간으로 이동했지만, 소리의 변화 덕분에 전혀 다른 공간으로 옮겨진 것만 같은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들의 말을 듣고 보니 안에서 밖으로 나오면서 느낀 시원한 해방감은 시각적 효과만이 아니라 청각적 효과에도 도움을 받았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공간과 소리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분위기 좋은 카페를 갔는데, 너무 어울리지 않는 노래가 흘러나오면 좋은 느낌이 반감됩니다. 반대로 특별하지 않은 공간이라도 적절하고 어울리는 노래가 흘러나오면 멋진 공간으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애플 스토어>에서는 단순, 혁신, 창의적인 브랜드 이미지에 맞는 분위기를 내기 위한 플레이스트를 만들어서 재생한다고 합니다. 애플 뮤직에서 제공하는 <오늘의 애플 스토어>라는 플레이리스트가 그것인데, 지금 저는 그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플레이리스트 덕분에 제 사무실이 창의적인 공간이 될 수 있다면, 제 글도 조금이나마 좋은 글이 될까 싶어서 말이죠.


이러한 바람을 담아서 한 가지 질문을 해봅니다. 소리가 공간을 만든다면, 소리가 환경을 만든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느 한 아파트 ㄱ동 ㄴ호에서는 잔소리와 한숨 소리, 비난과 원망의 단어가 가득합니다. 그런데 같은 아파트 같은 구조의 ㄷ동 ㄹ호에서는 웃음소리와 대화 소리, 격려와 희망의 단어가 가득합니다. 그리고 ㅁ동 ㅂ호에서는 핸드폰 소리와 티브이 소리만 가득하고 사람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완벽하게 같은 구조의 세 공간은 실제로 같은 공간일까요? 소리가 울리는 정도와 청각적인 효과를 만드는 구조는 같을지 몰라도, 소리가 만들어내는 환경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2025년 대한민국이라는 삶의 공간은 같습니다. 그러나 각자 마음과 생각 안에서 재생되는 소리와 플레이리스트는 다릅니다. 걱정, 불안, 원망, 남 탓, 혐오의 단어와 소리가 가득한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면서 사는 사람과 자신감, 희망, 기쁨, 만족, 사랑, 이해의 단어와 소리가 가득한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면서 사는 사람은 동시대의 대한민국을 살아도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계신 공간에는 어떤 배경 음악이 나오고 있습니까? 그 음악이 계신 공간과 어울립니까? 가정에서는 어떤 대화와 어떤 말이 오고 갑니까? 그 말들은 가정을 행복하게 만듭니까? 불행하게 만듭니까? 여러분 마음과 생각 안에는 어떤 플레이리스트가 재생되고 있습니까? 우리가 지금 당장 더 비싼 아파트를 구입하기는 힘들지만, 가족 모두 더 건강한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말은 지금 당장 말할 수 있습니다. 2025년 대한민국의 현실은 우리가 직접 바꿀 수 없지만, 우리 삶의 배경 음악은 우리가 직접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시간과 공간을 더 멋지게 만들어줄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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