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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Feb 16. 2022

14. 한강 / 소년이 온다

<나는 말을 걸었다>

 


어둠과 폭력의 세계 속에 5.18 민주화 운동으로 상처 입은 모든 영혼들의 존재들을 위로하듯,  그  존재들을 섬세하고 애절하게 그렸다.

한강은 위대하다.

하나의 소설을 넘어 아픔으로 읽게 하고 공감하게 하는 그의 언어들... 깊이 사유하며 문장 하나하나를 가장 알맞은 언어로 가장 있는 섬세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한 결과리라.


한강의 소설이 5월 광주의 시공간에서 벌어진 잔혹한 학살의 참상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증언하는 자의 소명의식과 듣는자의 상상력이 치열하게 어우러지는 간절한 고백의 서사.  잊을 수 없는 그 도시의 열흘을 고통스럽게 되살린다.  물방울이 내쏘는 햇빛의 파편에도 눈이 시린 순결한 어린 새의 흔적을 좇는 이 소설은 우리가 붙들어야 할 역사적 기억이 무엇인지를 절실하게 환기하고 있다.(백지연)

어떤 소재는 그것을 택하는 일 자체가 작가 자신의 표현 역량을 시험대에 올리는 일일 수 있다.  한국 문학사에서 80년 5월 광주는 여전히 그러할 뿐 아니라 가장 그러한 소재다  이제 더 절실한 것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응징과 복권의 서사이기보다는 상처의 구조에 대한 투시와 전착의 서사일 것인데, 이를 통해 한국문학의 인간학적 깊이가 심화될 여지는 아직 많다.  한강이 쓴 광주 이야기라면 읽는 쪽에서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겠다고 각오한 사람조차 휘청거리게 만든다.

이 소설은 그날 파괴된 영혼들이 못다 한 말들을 대신 전하고, 그 속에서 한 사람이 자기 파괴를 각오할 때만 도달할 수 있는 인간 존엄의 위대한 증거를 찾아내는데, 시적 초혼과 산문적 증언을 동시에 감행하는 파울 첼란과 쁘리모 레비가 함께 쓴 것 같은 문장들은 거의 원망스러울 만큼 정확한 표현으로 읽는 이를 고통스럽게 한다.  이것은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이다. (신형철)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계엄군에 맞서 싸우던 중학생 동호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과 그 후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받는 내면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당시의 처절한 장면들을 핍진하게 묘사하며 지금 우리가 붙어 있어야할 역사적 기억이 무엇인지를 절실하게 환기하고 있다. (백지연)  이 소설을 피해 갈 수 없었고 이 소설을 통과하지 않고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고 느꼈다는 작가 스스로의 고백처럼 이 소설은 한강의 지금까지의 작품세계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작품이다.

혼은 자기 몸 곁에 얼마나 오래 머물러 있을까.

그게 무슨 날개같이 파닥 이기도 할까.  촛불의 가장 자릴 흔들리게 할까.   용서하지 않을 거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45)

5.18 당시 인구 40만의 광주 시민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은 80만 발이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엄혹한 분위기 속에서 국가의 부조리에 맞서도록 어린 그들까지 시위 현장으로 이끌었던 강렬한 힘은 다만 깨끗하고도 무서운 양심 하나였다.

그렇게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자의 맥박을 느끼며 수십만 시민들이 모여 만든 위대한 양심의 혈관을 함께 이루었던 것이다.

당시 수피아여고 3학년 시절에 5.18 겪은 김은숙. 전도환 타도를 외치는 데모로 점철된 대학생활을 포기하고 작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면서 담당 원고의 검열 문제로 서대문경찰서에 끌려가 일곱 대의 뺨을 맞기도 한다.   봉제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고귀한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노조활동을 하다 쫓겨난 임선주는 이후 양장점에서 일하다가 상문관에 합류하게 되고 경찰에 연행된 후 하혈이 멈추지 않는 끔찍한 고문을 당한다.  상무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대학생 김진수 역시 연행된 이후 모나미 볼펜, 고문 성기 고문 등을 받으며 끔찍한 수감생활을 했고, 출소 후 트라우마로 고통받다 결국 자살하고 만다.  이러한 국가의 무자비함을 핍하게 그려내면서 유전자에 새겨진 듯 동일한 잔인성으로 과거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는 인간의 잔혹함과 악행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다음 문단은 검열 때문에 온전히 책에 실리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어서 먹선으로 지워진 넉줄의 문장들을 그녀는 기억했다.  그녀는 인간을 믿지 않았다.   어떤 표정, 어떤 진실, 어떤 유려한 문장도 완전하게 신뢰하지 않았다.  오리지 끈질긴 의심과 차가운 질문들 속에서 살아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95-95)

살아남았다는 것이 오히려 치욕이 되는 사람들이 혼자서 힘겹게 견뎌내야 하는 매일을 되새기며 그들이 아물지 않는 기억들을 함께 나눈다.   한강 작가는 무덥고 습했던 여름 끝에 가로수 아래를 걷다가 잘 마른 깨끗한 홑청 같은 바람이 얼굴과 팔에 감기는 감각에 놀라며 동호를 생각한다.   따뜻했던 봄날의 오월을 지나 그 여름을 건너가지 못한 동호, 이런 아침을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동호를 떠올리며 작가는 우리가 날마다 만나는 모든 이들이 인간이란 것을 되새기고, 인간으로서의 우리가 이들에게 어떠한 대답을 해줄 수 있는가를 간절한 목소리로 묻는다.  그리하여 이제는 더 이상 억울한 영혼들이 없기를, 상처 입은 영혼들이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나아가 평온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5.18 희생자들의 눈 덮인 무덤들 사이에서 못다 핀 소년 동호를 추모하기 위해 작가 한강이 마음을 다해 밝힌 작은 촛불들이 안타까운 세상에 온기를 더해줄 것이다.

당신들을 잃은 뒤 우리들의 시간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집과 거리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어두워지지도 다시 밝아지지도 않는 저녁 속에서 우리들은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잠을 잡니다.(79)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99)



도청 분수대의 물줄기 앞에 나는 서있다.

눈부신 물줄기가 어느 소년의 눈물이 되고

관통한 머리에 구멍이 나

이마 옆으로 흘러내리는 선홍빛 피가 되어

가느다란 목을 타고 배꼽 위로 흘러

바위처럼 서버린 내 허벅지와 무릎과 발가락 사이에 머물러

이제는  강이 되었다.

숨이 턱턱 막혀도 누구도 구원해 줄 수 없는 영혼


이미 늦어버린 범람하는 강

그 건너 엄마는 손짓하며 목 놓아 내 이름을 불러댄다.


이제 나는 걸을 수가 없다.

나를 용서해줘 엄마

이 순간의 나를 잊어줘


그리고  반짝거리는 햇볕 양지바른 곳에

엄마 손목 힘 시게 끌어당긴 내 손목을 기억하고

한이 서린 울음 울지 말고 나를 보듬아줘

햇볕 찬란히 빛나는 양지바른 곳에

꽃 많이 피는 꽃핀 쪽으로 데려가 줘.


암만암만 암만암만.


눈물 흘리며 목메인

엄마 대답에 나는 피뭍은 이로 활짝 웃어주었어


친구와 손 잡고 뛰놀

나비가 날고 꽃이 펴진 뒷동산에 올라

함박 웃던 즐거움으로 나를 구원시켜줘


암만암만 암만암만


숨결은 평온해지고

온기가 퍼져 피는  따뜻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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