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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May 23. 2024

(단편소설) 카페, 기다리는 곳, 남자(完)


 오랜만에 찾은 카페는 예전과 같은 모습이었다. 듬성듬성 있는 손님들과 정돈되지 않은 책들 그리고 진한 커피향, 다만 달라진 점은 젊었던 여주인의 희끗거리는 흰 머리와 내가 즐겨마시던 비엔나커피를 팔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주문을 하며, 여주인에게 오랜만이라고 인사를 건냈다. 여주인은 무심하게 주문을 받던 중 예기치 못한 손님의 안부인사에 콧등에 걸쳐있던 안경을 고쳐 쓰고는 나를 유심히 쳐다봤다.      


 “어머, 5년만이네요. 정말 오랜만이에요.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오셨어요?”

 “제가 이사를 가는 바람에 도통 이 곳 근처로는 올 일이 없었네요.”     

 나는 콧잔등을 붉히며, 여주인에게 대답했다.      


 “늘 같이 오시던 그분은 안 오시나요?”

 “네, 그 때 함께했던 분이랑은 오래전에 헤어졌어요”


 내 뜻밖의 고백에 여주인은 괜한걸 물어본 것을 후회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아주 오래전이니까요. 다 잊었어요”     

 나는 멋쩍게 웃어보였다. 여주인은 내게 아직 미안한지, 커피를 내어주며 작은 쿠키도 건냈다.     


 “저는 커피만 시켰는데요?”

 “오랜만에 오신 단골손님 서비스입니다”  

   

 밝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여주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는 커피와 쿠키를 들고선, 자리를 잡아 앉았다. 이른 무더위에 카페 안은 더웠다. 아직 더위에 대한 준비를 마치지 못한 여주인은 창문과 문을 모두 열어 카페 안의 더운 공기를 식히려고 노력했다. 문이 열리자 더운 공기를 씻어내듯 산들바람에 머리가 살짝 날렸다. 기분 좋은 바람을 뒤로하고, 나는 카페의 창으로 밖을 바라봤다. 11시의 거리는 한산한 듯이 흰 고양이 한 무리만 하릴없이 거닐고 있었다. 고양이를 따라 시선을 이동하자, 꽃무늬 원피를 입은 여자가 보였다. 그 여자는 햇빛을 가리기 위해 흰 레이스가 달린 양산을 쓰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분홍 원피스를 입고, 굽이 낮은 검은 하이힐 위로 흰 양말을 신고 있었다. 그녀는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꼭 여배우와 같아보였다. 내가 바라보는 창 넘어 그녀는 나를 지나쳐 갔다. 한참을 그녀를 바라보다가 문득 여자 친구와 함께 여기서 웃고 떠들던 때가 생각났다. 


 가난한 학생시절 돈이 없어, 변변히 좋은 곳도 데려가지 못했지만, 작은 카페에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며 아무 불만 없이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좋았다고 말하던 그녀의 맑은 눈망울이 오늘 따라 슬퍼지려 했다. 꽃다운 나이에 나 같은 사람을 만나 고생하기 보다는 더 좋은 사람을 만나도록 모질게 헤어졌던 지난날의 나를 질책했다. 헤어지는 순간에도 그녀는 내게 ‘5년 뒤, 혹시라도 생각이 변한다면 우리가 늘 가던 작은 카페에서 보자’라고 했다. 나는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후회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래서 5년이 빨리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오늘 그녀를 이 작은 카페에서 기다렸다.     


 이제 해가 기울고, 거리에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아직 그녀는 오지 않았고, 나는 커피를 하나 더 주문했다. 그녀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헤집고 있었다. 그날 헤어지는 마당에 아무 말이나 내뱉은 약속을 그녀가 기억할리 없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헤어짐을 말한 것은 나였지만, 그녀는 충분히 지쳐있었다. 어쩌면 내가 헤어짐을 이야기해서 그녀의 짐을 좀 더 덜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차분해 질 수 있었다.      


 6시가 넘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고 싶은 그녀는 만나지 못했지만, 차라리 잘 됐다. 그녀는 그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기 때문에 나와의 약속은 까맣게 잊었던 것이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카페 문을 나섰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은 보내지 못했나보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그럼에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초라해 바닥을 보고 버스정류장까지 걷기 시작했다. 다행히 거리에 사람이 없어서 나의 초라함을 남들에게 들키지는 않았다. 그저 낮에 본 고양이들만 내 뒤를 쫓고 있었다.     

 

 “이태수!”     


 내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헐떡거리는 듯 거친 숨소리에 내 이름석자가 또렷이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5년 전의 그녀가 거기 서있었다.      


 “한참을 찾았네. 반갑다 이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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