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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Aug 08. 2024

(단편소설) 고리대금업자 박씨


 소주잔을 드는 태수의 손이 바들거리며 떨린다. 앞의 영수도 착잡하게 태수를 바라보며, 자신의 잔에 소주를 따랐다. 태수가 한숨을 쉬며, 영수에게 이야기했다.      


 “박씨 말이야 너무 한 거 아니야? 갑자기 이자를 20%나 올리는 게 말이 돼?”

 “그러니까.. 우리 동네사람들 중에 박씨 돈 안 쓰는 사람이 어딨다고... 영철이네는 소 팔고 있데”     

 

 태수가 박씨를 들먹이며, 목청을 높이자 영수가 거들었다. 태수는 영수의 위로에도 연거푸 소주를 입에 털어 넣으며,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 옆 평상의 미진은 박씨를 욕하며 울면서 하소연을 하자, 태수도 그녀를 따라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외지인 박씨가 작은 마을에 나타난 건 3년 전 어느 더운 여름날이었다. 백구두와 흰색 정장 차림에 고급 차량에서 내린 그를 모두 신기하게 쳐다봤다. 그도 그런 것이 태수가 있는 동네는 시골 중에서도 더 들어가는 시골이라 21세기 임에도 불구하고, 펌프로 물을 올리는 집도 있을 정도로 낙후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별달리 관광화 될 수 있는 자원도 없었기에 거의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으로 마을 사람들의 생활을 운영했다. 그러다보니 박씨가 타고 온 고급 차량과 빼입은 수트를 실제로 본 사람들은 박씨에게 눈길이 갈 수 밖에 없었다. 동네 이장은 처음에는 박씨를 경계했다. 별 볼일 없는 이 곳에 굳이 살기위해 온 그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절을 거듭할수록 싹싹하게 동네 일손을 돕는 그를 보고 이내 경계를 풀었다.      


 박씨가 마을에 온 지 딱 1년이 지났을 때, 박씨는 동네 이장을 설득해서, 자신이 연 1%의 이자만 받고, 마을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고 싶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안 그래도, 다른 동네에 비해 교통망이 좋지 않아 발전이 더딘 것이 마을 주민들의 항상 걱정거리였는데, 박씨가 나서서 저금리로 돈을 빌려준다고 하니,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박씨는 이장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도시에 있는 자신의 변호사를 불러, 마을 주민 20명 정도에게 돈을 빌려주었다. 주민들은 박씨에게 돈을 받아, 땅도 사고, 소도사고, 영업점도 늘리고, 무력했던 도시는 생기를 찾고 있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나갈 무렵의 어느 봄날 박씨는 사람들을 모두 모아놓고, ‘자신이 이자를 너무 낮게 줬다며, 갑자기 20%를 올려야겠다‘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했다. 이에 박씨에게 돈을 가장 많이 빌린 태수는 그에게 따지듯 물었다. ‘아니 어떻게 갑자기 이자를 20%나 올려요?’라고 대꾸했지만, 하지만 박씨는 그의 질문에 어떠한 대답도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박씨의 집은 서울에서 온 우락부락한 덩치들이 지키고 있었다. 동네 주민들은 그 덩치들이 무서워서 박씨네 집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하고, 결국 마을의 작은 평상에서 술을 마시며 박씨욕을 하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야 했다.  

    

 태수는 박씨에게 약 3억 원 정도 돈을 빌려, 축사를 개보수하고, 소와 돼지를 몇 마리 샀는데 가축시장이 좋지 않아 지금은 월간 내는 이자도 빠듯할 지경이었다. 미진의 경우 태수보다는 좀 더 머리를 써서, 박씨에게 저리로 돈을 빌려, 5% 정기예금으로 묶어 두었다가, 작년부터는 아는 언니의 추천으로 주식을 구매했다가 지금은 쪽박 찬 수준이었다. 몇몇 동네사람들은 미진의 말을 듣고 박씨에게 돈을 빌려 주식 투자를 했다가 같이 손해를 보고 있어서 미진의 집에는 미진에게 항의하는 사람이 끊이질 않았다. 다행히 영수는 박씨의 돈을 쓰지는 않았지만, 태수의 축사에서 일을 봐주면서 월급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태수가 망하면, 자신도 직업이 없어지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마을 이장은 박씨를 찾아가 몇 번이나 사정했다. 애초에 박씨가 대출을 할 수 있게 한 것도, 마을 사람들을 선동해서 박씨의 돈을 쓰게 한 것도 자신이다 보니까 이번 박씨의 일탈에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장은 자신이 아끼는 인삼주와 수육 한 접시를 들고 매일 같이 박씨를 보기위해 집 앞으로 가지만 덩치들이 그를 막고 집으로 들여보내지 않았다. 어쩐 날은 비를 맞아가며 그러니 누군가가 본다면 애처롭기 까지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박씨는 집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가 인상되고 첫 이자를 지급하는 날이 되었다. 대다수는 폭리를 감당하지 못해서 이자를 못 냈지만, 딱히 박씨는 어떠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날 무렵,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박씨에게 딱히 이자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이자를 내지 않았다.      


 그런데 박씨가 이자를 올린 지 딱 1년이 지난날에는 이제까지와 사정이 달랐다. 박씨와 덩치들은 마을사람들 집에 찾아가 계약서를 드리밀며, 원금과 이자를 내놓으라고 겁박했다. 당연히 당장 줄 돈이 없던 마을 주민들은 박씨에게 사정사정했으나, 그 말은 먹히지 않았고, 오히려 박씨가 마을사람들에게 ‘줄 돈이 없으면 땅과 집으로 상환’하라며. 부동산계약서를 앞에 내던졌다. 마을사람 대부분이 집과 땅을 빼앗겨, 박씨에게 세들어 사는 꼴이 되어버렸다. 박씨는 마을사람들의 터전을 빼앗으며 매달 300만 원을 요구했고, 마을사람들은 변호사와 건달까지 동원한 박씨에게 두 손, 두 발을 들며 알겠노라 답했다.      


 박씨가 마을사람들의 재산을 모두 뺏기 까지는 채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박씨가 오기 전, 많이는 아니지만 근근이 먹고 살던 사람들은 이제부터는 지옥 속에서 살날들만 남았다. 박씨가 마을의 모든 것을 빼앗은 그날, 이장이 사는 곳으로 직접 찾아갔다.     


 “이장님, 안에 계신가요?”


 박씨의 행태에 망연자실한 이장이 매일 같이 술로 달고 살았다. 박씨가 찾아온 그날도 마찬 가지었다. 멸치 몇 쪼가리를 안주삼아 술을 연거푸 마시고 있던 이장은 갑작스런 박씨의 등장에 놀랐다. 사실은 그의 뒤에 서있는 건달들이 꼭 저승사자 마냥 보여 놀랐었다. 박씨를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이장이 답답했는지, 박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      


 “왜 일전에 저희 집 찾아오셔서 인삼주 주신다고 하셨다면서요. 그거 얻어 먹으러 왔습니다”    


 이장은 떨떠름한 표정을 하고는 박씨에게 인삼주를 내어주었다. 박씨는 인삼주를 한입에 털어넣고는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은채로 이장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장님, 지금 마을 돌아가는 꼴은 대충 아실 테고요. 저는 오늘 여기를 떠날 생각입니다. 다른 마을로 가려고요. 아! 그리고 여기 동내사람들 밖에서 이상한 소리하면 이 마을 쑥대밭으로 만들 겁니다. 그리니 이장님이 나서서 잘 단도리 좀 부탁드립니다”     


 박씨는 주머니에서 현금 500만 원을 꺼내 이장에게 건내며 다시 능글맞게 이야기하며 웃었다.      


 “이건, 잘 단도리 쳐달라는 뇌물입니다”     


 박씨는 협박아닌 협박을 이장에게 하고는 그날 이후로 마을에서 본 이는 없었다. 일설에는 박씨가 은행에가서 자신이 소유한 모든 땅과 건물을 담보로 거액의 대출을 했다는 소문만 무성히 들렸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평상에 앉아 술이나 마시며, 박씨를 욕하는 것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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