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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Sep 05. 2024

(단편소설) 창 밖의 소녀(完)

 태수가 투덜거리며 우산을 챙겼다. 그의 얼굴에는 심통이 가득했다. 그런 그럴 보며 영미는 미안한 마음에 태수에게 말했다.     


 “태수야, 미안해 오늘 엄마가 오전부터 회의가 잡혀가지고, 오늘은 학교에 못 데려다 줄 것 같아”

 “오늘 비도 많이 오는데...”     


 태수는 현관 앞에서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영미에게 한 번 더 툴툴거리고는 집을 나섰다. 태수가 다니고 있는 학교는 대중교통 이용 편이 없어서 걸어가야만 했다. 그나마 화창한 날에는 지름길로 가서 30분 정도 면 갈수 있지만, 오늘처럼 비 가오는 날에는 흙 길 로 된 지름길을 이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멀리 돌아가야만 했다. 태수가 얼마쯤 갔을 때,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태수는 가던 길을 멈추고는 우산을 어깨에 기대고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속으로 여름 장마도 아닌 것이 제법 하늘이 검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태수는 이내 고개는 내리고는 가던 길을 갔다. 또 한 참을 가던 중, 이번에는 감미로운 노랫소리가 그의 발을 묶었다.      


 태수가 감미로운 노랫소리에 고개를 들었을 때, 2층 단독주택의 창가에 하얀 잠옷을 입고, 상체를 앞으로 숙여 턱을 괸 채로 반쯤 눈을 감고서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여자가 있었다. 태수가 자세히 보니 소녀는 백옥같이 하얀 피부에 양 갈래로 머리를 곱게 땋았다. 태수가 자신을 보고 있는 지도 모르는 채, 비 오는 하늘 쪽으로 고개를 올리고선 계속 흥얼거렸다. 그 흥얼거림은 비를 타고 태수의 우산에 알알이 박혔다.    

  

 태수는 괜시리 소녀가 짜증이 났다. 자신은 이렇게 고생하며, 학교에 가는데, 자기와 나이도 비슷한 또래의 여자애는 집안에서 편하게 비 오는 밖을 보며 노래나 불렀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다시 심통이 도진 태수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녀에게 소리쳤다.  

   

 “얘, 너는 뭐가 그렇게 신나서 노래를 부르니?”


 그제서야 소녀는 태수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아차리곤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낮선 이방인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는 것이 싫지만은 안았는지, 태수가 서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태수의 말에 답했다.      


 “비가 오잖아, 비가 오는 날은 좋은 날이야”


 태수는 소녀의 말을 듣고는 더 기가 차서 날카롭게 받아 쳤다.   

  

 “비가 오는 게 신나니? 뭐가 좋다는 말이야?”


 소녀는 이번에는 눈웃음을 태수에게 보이며 말했다.    


 “응, 내가 태어난 날에도 비가 많이 왔다고 했거든, 그래서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내가 처음 태어난 날로 돌아가는 것 같아”


 태수는 이번에도 날 서게 소녀의 말을 받아 쳤다.   

   

 “네가 기분이 좋은 건, 집 안에 있기 때문이야. 비가 오면 신발도 젖고, 몸도 젖고, 책가방도 젖어”.

 “너는 좋겠구나, 이 좋은 비를 직접 맞을 수도 있어서......”     


 그 말을 마지막으로 소녀는 횡 하고 창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창문이 닫히는 ‘쿵’소리에 태수도 정신이 번쩍 들어, 왼손에 찬 손목시계를 들어 시간을 확인하자, 자신이 늦었음을 알고는 그 때부터 뛰기 시작했다.     

 태수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와서도 아침에 소녀와 나눈 대화에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또 그 소녀 때문에 자신이 지각을 해서 화장실 청소까지 해야 했던 일을 떠오르니 괜히 옆에 있는 테니스공을 들어 벽에 힘 것 던져 분을 풀었다. 하지만 테니스공은 벽을 막고 튀어올라 태수의 머리 정중앙에 꽂혔다. 태수는 괴성을 지르며 포효했다. 그 소리에 놀란 영미가 2층 태수의 방으로 들어왔다.     


 “태수야. 무슨 일 있어?”     


 자신을 걱정해 헐레벌떡 뛰어온 엄마를 바라보며 민망함에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야, 엄마 테니스공을 던졌는데 머리를 맞아서 아파서 소리질렀어”

 “조심 좀 하지, 그리고 방에서는 테니스공 던지지 말아라”

 “알겠어”     

 영미가 방에 나가자, 태수는 이번에 팔을 괴고 책상에 앉았다. 팔을 괴자 다시 소녀가 떠올랐다. 조금 침착해진 상태에서 소녀를 생각해보니 소녀에 대한 분노 보다는 호기심의 감정이 들었다. 태수는 불현 듯 소녀처럼 해보자는 마음에 자신의 방 창문을 열어 창틀에 턱을 괴고 하늘을 바라봤다. 비가 그친 초저녁의 하늘은 파란 배경에 붉은 유화물감을 군데군데 덧바른 것처럼 오묘하고, 뭉클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소녀가 바라 본 어두운 하늘이 아니어서 소녀가 무슨 생각으로 비 오는 하늘을 바라봤을지 감히 판단할 수 없었다.      


 다음날, 영미가 태수를 태워 학교에 가기 위해 태수를 불렀다.      


 “태수야, 학교가자, 오늘은 태워줄게‘

 “아니야, 엄마 오늘은 운동도 할 겸 걸어갈게”

 “걸어간다고?”

 “응. 오늘은 비도 안 오고 하니까 괜찮을 거 같아”     


 태수는 어제와는 다르게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그 소녀가 또 창 밖에 나와 있다면, ‘어제 창밖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꼭 물어보기로 다짐했다. 하지만 소녀는 창 밖에 나와 있지 않았다. 그 때부터 며칠 동안 태수는 소녀를 보기 위해 계속 소녀의 집을 경유하여 학교에 갔지만 하루도 만나지 못했다. 태수는 실망했다. 소녀에게 느낀 처음의 분노는 남아 있지 않고, 소녀를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마음만 남아있었다.     

 매일같이 소녀를 만나지 못하고 허탕만 치던 날, 학교 선생님이 주번을 불렀다. 하필 주번이었던 태수도 그의 짝 소영이와 함께 선생님의 부름에 달려갔다.      


 “태수랑 소영이가 오늘 학교를 마치고 도와줘야할 일이 있는데, 부탁 좀 해도 될까?”


 그 둘은 선생님을 바라보며 우렁차게 대답했다.   

  

 “네, 선생님”

 “다름이 아니라, 반 친구 중에 미진이라고 들어봤지?”     


 태수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는데, 소영이는 아는 눈치라 재빨리 대답했다.     


 “네, 학기 초부터 아파서 학교에 못나오고 있다고 알고 있어요”


 소영이 대답하자 그때서야 태수도 학기 초에 그런 아이가 있었다는 것을 상기했다. 하지만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라 까맣게 잊고 있었다. 태수가 우물쭈물 하고 있을 때, 소영이는 선생님이 미진에게 건 내 줘야하는 유인물과 작은 선물상자를 받았다. 그리고는 학교를 마치고 태수와 함께 다녀오겠다고 대답 뒤에 교무실을 나섰다. 태수는 궁금함에 소영이에게 물었다.     


 “소영아, 너는 미진이라는 아이를 만나본적 있니?”

 “응, 작년 까지 나랑 같은 반이 였어”

 “친했니?”

 “워낙 몸이 약한 아이라, 작년에도 절반은 학교를 못 나와서 나랑은 크게 이야기해 본 적은 없는데, 조용한 하지만 밝은 친구였어. 늘 콧노래를 부르고 다니는 것만 기억이나”     


 소영의 말에 태수는 소녀를 떠올렸다. 그리고 이내 가슴이 벅차올랐다. 오늘 만나러가는 아이가 꼭 그 소녀 같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태수는 시계만 쳐다보며 언제 하교시간 만 고대하다가,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가방을 채 쌓지도 못한 소영이의 팔을 붙잡고 교실을 빠나갔다.     


 “야, 너 왜그래?”

 “빨리, 유인물 나눠주러 가야지”

 “좀, 기다려봐 책가방은 닫아야 할 것 아니야!”     


 소영은 태수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가방을 닫으며 말했다.     


 “너, 오늘 바쁜 일 있어? 그럼 그냥 나 혼자 갔도 돼, 무리해서 안 가도 돼, 선생님한테도 너랑 갔다고 이야기할게”

 “무슨 소리야. 우리 둘이 주번인데 당연히 같이 가야지! 얼른 앞장서, 너는 미진이? 그 친구 집 알지?”

 “흠....”     


 소영은 태수의 행동에 약간 불만이 있었지만, 이유를 모르니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었다. 소영과 태수는 말없이 땅 만 쳐다보며 한 참을 걸어서야 소영의 발이 멈췄다. 태수는 소영이가 멈췄다는 것도 모른채 몇 걸음 더 걸어가다가 소영이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그때야 고개를 들었다.     


 “야, 이태수, 여기야”


 태수는 두근거리는 마음에 고개를 들어 확인했다. 그리고 그 곳이 자신이 그토록 찾던 소녀의 집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비 오는 날 창가에 팔을 괴고 있을 것 만 같은 2층 창문은 오늘도 굳게 닫쳐있었다. 소영은 문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자 미진의 어머님으로 보이는 분이 둘을 반갑게 맞이했다.     


 “너희들이구나, 우리 미진이랑 같은 반 친구들이, 그렇지 않아도 선생님께 연락 받았어, 유인물을 나눠주러 온거지?”

 “네, 어머님”


 소영이 대답했다. 태수는 소영의 뒤꽁무니에 숨어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얼른 들어와라, 쥬스라도 마시고가”

 “네, 알겠습니다”     


 소영과 태수는 미진의 어머니의 안내를 받아 집으로 들어갔다. 집은 태수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넒고, 고풍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태수가 그토록 만나고 싶던 소녀, 미진이는 보이지 않았다. 미진의 어머님은 소영이와 태수에게 이것 저것 물어보며 친절히 대해 주셨다. 태수는 한참을 말없이 주스만 홀짝 거리다가 뜬금없이 물었다.     


 “저기.. 어머님.. 혹시 미진이는 어디 갔나요?”  

   

 미진의 어머님의 얼굴빛이 잠시 어두워졌다가 이내 밝아지며 대답해주셨다.     


 “미진이는 지금 몸이 많이 안 좋아서, 병원에 입원해있어. 그리고 치료 때문에 곧 미국으로 갈거야. 오늘 너희가 가져온 유인물도 미진이가 학교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가기위해 작성해야하는 유인물이야”     


 그 뒤로 미진의 어머님은 미진이의 병명과 언제부터 아팠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셨지만, 태수는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다시는 창밖의 소녀를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 온통 헤집고 다녔다. 미진의 어머님과의 대화가 언제 끝났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태수는 침울했다. 그리고, 소영이 태수를 툭툭치며 ‘가자’고 할 때까지 태수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앉아있었다. 태수는 무기력하게 미진의 집을 빠져나와 집까지 터덜거리며 걸을 수밖에 없었다. 소영은 태수 옆에서 걸으며 상태가 좋지 않은 태수의 눈치만 살피다 그냥저냥 인사를 한 뒤 자신의 집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태수는 소영이가 중간에 없어진 것도 모른 채 그저 걷기만 했다. 태수가 자신의 집에 다 달았을 때, 문 앞에서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방향을 돌려 다시 미진의 집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미진의 집 앞에 도착한 태수는 초인종을 눌렀다.     


 땀이 범벅이된 태수를 맞이한 미진의 어머님은 걱정스레 물었다.     


 “너는 아까 우리집에 온 아이구나, 혹시 뭘 두고 갔니?”

 “아니요. 어머님, 미진이한테 말 좀 전해주실 수 있으세요?”


 미진의 어머님은 어리둥절하게 태수를 바라보고만 있는데, 태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이태수이고요. 미진이 한테는 사실은 나도 비 오는 날이 좋았다고, 네가 꼭 치료 받고서 돌아오면 같이 비 오는 날 우산 쓰고 이 곳 저 곳 돌아다니자고, 전해주세요!. 꼭 기다리겠다고요”     


 그 때, 미진의 어머님은 웃으며 태수의 땀 때문에 젖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미진이 한테 이렇게 듬직한 친구가 있었는지는 몰랐네. 오늘 태수가 한 이야기 그대로 미진이 한테 전해줄게. 미진이도 좋아할 거야. 고맙다. 나중에 우리아이가 다 나아서 오면 그 때 또 놀러와라”


 “네, 어머님 감사합니다”     


 태수는 그제야 부끄러움이 차올라, 문 앞에 서있는 어머님을 뒤로한 채 다시 자신의 집으로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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