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수가 눈을 감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몇 차례 한숨도 쉬고, 답답하다는 듯이 잠시 일어났다가 앉았다가를 반복하기도 했다. 옆에서 보다 못한 영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태수에게 말했다.
“태수 씨, 무슨 고민 있어?”
“그게....”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는 태수에게 영수는 채근하듯 말했다.
“그러지 말고 말해봐요. 무슨 일이야?”
“그저께 소개팅 한 여성분께서 문자 메시지가 왔습니다.”
태수의 대답을 듣고, 영수는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여성분이 마음에 안 들었어요? 그런 것이 아니면 기쁜 일인 것 같은데... 왜 안절부절못해?”
태수는 시선을 아래로 깔고는 한숨을 크게 쉬며 대답했다.
“아니요.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그런데 제가 연애를 한 번도 안 하다 보니까 어떤 식으로 답장을 해야 할지 몰라서요. 사실, 그저께 만났을 때도 제가 허둥지둥거리고, 말도 잘 못해서 연락이 안 올 줄 알고 거의 포기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오늘 아침에 연락이 온 거예요. 대리님 이럴 때에는 어떻게 해야야 죠?”
태수의 말을 듣고 영수는 크게 웃었다.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고민하고 있었네요”
태수는 영수의 대답을 듣고 발끈하며 말했다.
“대리님이야 여자친구가 있으니까, 그러시죠. 아마 제 마음 모르실 겁니다”
영수는 태수가 진심으로 괴로워하는 것 같아 보여 자신의 언행을 사과하며, 말했다.
“그러지 말고, AI한테 물어봐요. 내가 볼 때는 지금 태수 씨가 뭘 생각해서 하는 것보다. AI가 정해준 답으로 답변하는 것이 훨씬 나아 보여요”
“AI요?”
“그래요. 인터넷 들어가서 AI 검색하면 쭉 나오잖아요. 아무 사이트나 들어가서 물어봐요”
“그럴까요?”
태수는 반신반의하고는 차분히 자리에 앉아 AI사이트를 검색했다. 그중에서 가장 상단에 있는 사이트에 접속해서 AI에게 물었다.
「소개팅한 여자한테 ‘그날 잘 들어가셨어요?’라고 문자가 왔는데 어떻게 답변해? “
AI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수많은 경우의 수가 담긴 메시지들은 나열했다.
「네, 간단하고 다정하게 응답해 보세요 (1)네, 덕분에 잘 들어갔어요! 집에 잘 도착하셨죠? (2) 네 잘 들어갔어요! 덕분에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3) 네, 잘 들어갔어요! 덕분에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다음에 또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4) “잘 들어갔어요! 오랜만에 재밌는 시간을 보내서 기분이 좋네요. 주말은 어떻게 보내셨어요?」
태수는 AI가 제시한 4가지의 답변 중, 세 번째 답변이 마음에 들어 그녀에게 보냈다. 그러자 상대방에게 바로 ‘네, 저도 좋은 시간이었어요! 다음엔 어디 가면 좋을지 추전해 주세요’라고 답변이 왔다. 태수는 다시 식은땀이 나고 있다. 옆에서 이를 재밌게 지켜보던 영수는 태수가 받은 답신을 보고는 말했다.
“상대방이 너한테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잘해봐”
태수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겨우 진정시키고는 영수 쪽으로 고개를 돌려 말헀다.
“대리님이 보기에는 괜찮은 것 같으세요? 저는 경험이 없어서...”
“딱 봐봐, 네가 싫은데 먼저 문자하고, 어디 놀러 갈지 추천해 달라고 하겠냐? 너 여기서 대답만 잘하면 내가 볼 때에는 곧 사귈 것 같다. 빨리 답장이나 해”
영수는 태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고는 얼른 AI에게 물어보고 답장하라고 채근했다. 태수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AI에게 물었다
「소개팅한 여자한테 ‘네, 저도 좋은 시간이었어요! 다음엔 어디 가면 좋을지 추천해 주세요’라고 답장이 왔는데 어떻게 대답하는 게 좋아?」
「네, 다음 약속을 이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1) 저도 만나서 좋았어요! 언제 한 번 시간 맞춰 볼까요? (2) 네, 저도 좋은 시간이었어요! 다음엔 어디 가면 좋을지 추천해 주세요 (3) 그날 저도 정말 즐거웠어요. 다음엔 더 많은 이야기 나눠요.」
태수는 AI의 답변 중 (1) 답변을 상대방에게 보냈다. 그러자 바로 상대방에게 ‘그럼 주말에 잠깐 커피라도 할까요? 요즘 날씨가 좋아서 나들이도 좋을 것 같아요’라고 답장이 왔다. 태수는 영수의 말에 힘입어 지금부터는 많이 떨지 않았다. 그는 다시 AI에게 물었다.
「소개팅한 여자한테 ‘그럼 주말에 잠깐 커피라도 할까요? 요즘 날씨가 좋아서 나들이도 좋을 것 같아요’ 이렇게 답장이 왔는데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네, 상대방이 구체적인 제안을 했으니,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약속을 확정 짓는 답변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1) 좋아요! 그럼 토요일이나 일요일 중에 언제가 괜찮으세요? (2) 네, 저도 좋아요! 주말에 시간대만 알려주시면 맞출게요.」
태수는 AI답변 중 (1) 답변을 상대방에게 보냈다. 그러자 그녀에게서 토요일 10시쯤이 좋다는 답변을 받고는 한강 근처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태수는 자신에게 AI를 가르쳐준 영수에게 다가가 고마움을 말했다.
“대리님 감사합니다! 이번 주 토요일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대리님 아니었으면 저는 우물쭈물하다가 아무것도 못했을 겁니다!”
“가서 잘해라, 거기서는 AI한테 물어도 볼 수 없으니까. 알았냐?”
“네, 대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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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수는 설레는 마음으로 그녀를 기다렸다. 너무 설레는 나머지 시계도 보지 않고 나오는 바람에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먼저 도착했다. 기다림이 이토록 설렌다는 감정이라는 것을 태수는 평생에 처음 느꼈다. 하지만 태수가 마냥 설렘일 수 있는 이유는 약속날짜가 잡히고 며칠 동안 쪽잠을 자며, AI를 활용해서 맛집, 코디, 유머, 연애 매너 등을 섭렵했기 때문이다. 태수가 이런저런 공상을 하며 앉아있을 때, 약속시간 보다 10분 일찍 그녀가 도착했다.
“태수 씨 일찍 오셨네요?”
“미진 씨, 조금 일찍 도착했어요! 여기 분위기가 좋아서 기다리는 것도 괜찮네요”
태수는 미진이 어떻게 인사를 할지 미리 생각해 둔 것이 있어서, AI를 통해 미리 연습해 온 답을 했다. 그리고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 둘의 대화는 그런 식으로 흘렀다. 미진이 물어보면, 태수는 미리 외워온 대답을 줄줄이 말했다. 1시간 넘게 이야기를 이어오던 와중에 미진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태수 씨 지난번이랑 완전히 다른데요?”
태수는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미진이 말을 이었다.
“지난주에 만났을 때에는 말도 못 하시고, 당황만 하셨는데, 오늘은 완전히 연애 고수처럼 보여서요. 대답도 마치 로봇이 하는 것처럼 딱딱 맞아떨어지고.... 약간 인간미가 없다고 해야 하나?”
미진은 그렇게 이야기하고는 태수를 한 번 바라보고는 다시 웃어 보였다. 태수는 예정에 없던 질문에 등줄기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덥지 않은 카페 안에서 혼자만 이마의 땀을 훔쳤다. 미진은 갑작스레 땀을 흘리는 태수가 걱정돼서 물었다.
“혹시, 더우세요? 갑자기 땀을....”
태수는 그 대답에도 답을 하지 못했다. 잠시 두 사람은 침묵을 이어가다가, 태수가 어렵게 입을 떼었다.
“사실, 저는 이제 것 연애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소개팅도 미진 씨가 처음이고요. 잘 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AI에게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지난번에 문자메시지도 AI한테 물어서 한 거였어요.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태수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며, 고개를 밑으로 떨궜다. 상다방이 화가 많이 났을 것이라고 생각해,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그런데 미진은 태수의 이야기를 다 듣고는 뭐가 재밌는지 그 앞에서 ‘쿡쿡’ 거리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태수도 고개를 떨구고 있는 와중에 미진이 숨죽여 웃고 있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미진은 긴 침묵을 깨고는 말했다.
“저도예요”
태수는 미진의 말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하고, 고개를 들고는 눈만 껌뻑였다. 그러자 미진은 답답하다는 듯이 재차 말했다.
“저도라고요. 저도, 연애를 한 번도 해보지 않아서, 태수 씨가 마음에 들었는데 어떻게 하지 몰라서, AI에게 물어봤어요. 그래서 그날 문자 보낸 거예요. AI가 문자를 보내서 마음을 전하라고 해서요!”
미진은 갑자기 쑥스러워졌는지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는 앞에 놓여있는 커피를 벌컥거리며 마셨다. 그제야 상황파악이 된 태수는 미진에게 물었다.
“미진 씨도요?”
미진은 짧게 답했다.
“네”
태수는 아까의 긴장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오히려 이 상황이 재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 맞는 말은 쉽사리 떠오르지 않아 다시 침묵했다. 미진은 어색한 침묵이 싫었는지, 태수에게 물었다.
“혹시, AI 어떤 사이트 거 썼어요?”
“아, 저는 OO사이트 썼습니다”
“네?”
미진이 화들짝 놀라며, 다시 크게 웃었다.
“저도 OO사이트 AI를 썼어요!”
“네?”
그 둘은 이제는 아무 거리낌 없이 웃었다. 둘의 웃음소리가 너무 커서 주변의 사람들이 의아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두 사람도 그 시선을 느꼈는지 웃기를 멈췄고, 태수가 먼저 이야기했다.
“그럼 우리 둘 다, 똑같은 AI 코치를 받은 거였네요.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요?”
태수는 소리를 죽이며 웃었다. 미진은 여전히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 그때 미진이 말했다.
“이제야 좀 사람이랑 대화하는 것 같네요. 나가시죠. 어디 가서 점심이나 먹어요”
“네, 제가 어제 찾아온 AI추천 맛집이 있습니다. 그쪽으로 가시죠”
그 둘은 또 웃었다. 태수는 자리에 일어나는 미진을 바라보며 따라 일어섰다. 그리고 며칠간 열심히 외웠던 AI의 조언은 이미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