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밤에 괜찮으셨습니까?”
옆집 남자가 벼락에 부서진 나무 앞에 서있는 태수를 걱정하며 물었다. 태수는 쪼그리고 앉아 나무를 바라보다가 불현듯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천천히 일어나며 답했다.
“네, 다행히 저는 별일이 없었지만... 이 나무는 간 밤에 벼락을....”
태수의 시선은 부서진 나무에 고정된 채, 허공에 답했지만, 그 조차도 끝마치지 못했다. 그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옆집 남자는 그를 위로할 요량으로 주머니에서 담배를 한 대 꺼내 그에게 권했다.
“담배 한 대 태우시겠습니까?”
태수는 옆집 남자의 호의를 무시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그에게서 담배를 받아 입에 물고는 아직 나무에 남겨진 잔불에 갖다 대자 이내 담배는 연기를 내뿜으며 태수의 공허한 마음속으로 들어갔다. 옆집 남자도 얼른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하지만 태수와 달리 자신의 라이터를 이용했다. 옆집 남자는 딱히 태수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옆에서 어정쩡하게 서있을 뿐이었다. 어색한 침묵을 깬 것은 태수였다.
“50년입니다. 이 고목”
옆집 남자는 태수의 말에 반색하며 답했다.
“그렇게 오래됐군요. 저는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나무가 그렇게 오래된 것인 줄 몰랐습니다. 그럼에도 마을 사람들은 태수 씨가 애지중지 키우 던 나무를 칭찬하고, 어떤 사람은 나무에 대해 경외심까지 갖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나무가 이렇게 돼서 어떤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태수는 옆집 남자가 자신을 진심으로 위로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말이 끝나자 고개를 돌려 가볍게 목례를 했다. 옆집 남자도 태수에게 가볍게 목례하는 것으로 예를 다했다. 그 둘은 그렇게 서서 담배를 한 대씩 더 피우고 있었다. 그제야, 간밤의 우레와 같은 폭발음의 근원을 찾기 위해 나온 마을 사람들이 태수의 집에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태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도 모른 채, 허망하게 사라져 버린 나무만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대강 이 상황이 짐작이 갔지만, 태수에게는 다가가 물어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래서 몇몇 사람이 옆집 남자에게 가서 물었다.
“영수 씨, 나무가 어떻게 된 거예요?
영수는 태수의 눈치를 살짝 보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간 밤에 벼락을 맞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제 새벽에 폭탄 터지는 소리도 들렸나 봅니다”
영수에게 말을 들은 남자 둘은 이내 자신들의 무리로 돌아가 그 소식을 알렸다. 그러자 남자들의 말을 듣고 있던 마을 주민들은 일제히 ‘저런’, ‘아이고’ 같은 안타까움을 내비치는 말부터 ‘아직 불이 조금 붙이 있는 것 같은데, 불을 꺼야 하지 않나요?’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말을 하는 사람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한 마디씩 내뱉었다. 하지만, 불을 끄자고 말한 주민은 이내 다른 주민들의 눈총을 받았고, 자신이 아차 했음을 깨닫고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아니, 내 말은 또 화재가 날까 걱정돼서...’라고 말했으나, 아무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태수의 50년이나 되는 고목이 한순간 번개에 의해 사라졌다는 것에 대해 적잖이 충격을 받고 아쉬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매년 11월이 되면, 태수는 창고에서 알이 굵은 알록달록한 조명을 꺼내, 나무를 둘러쌓다. 그리고 겨울 내내 조명을 밝혔다.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되면, 마을 주민들은 나무 앞에 모여 사진을 찍거나, 선물을 교환하고, 간단히 서서 맥주를 마시는 등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만끽했었다. 태수는 사람들이 나무를 보기 위해 모여있을 때마다, 집에서 손수 핫초코를 만들어 주민들에게 나눠줬었다. 나무는 모든 주민들의 추억이었다.
그때, 갓 대학생이 된 미진이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그녀의 어머니는 갑자기 우는 딸을 달래며 ‘왜 우냐고’ 물었다.
“내 어린 시절 태수 아저씨가 저기 나무에다가 그네를 만들어 줬었어요, 나와 내 친구들은 학교가 끝나면, 나무에 모여 그네를 타고 놀았었죠”
미진이 울먹거리며 말을 마치자, 그녀의 옆에 있던 사내아이도 자신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저는 저기 밑에 엄마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성적표를 숨겨놓곤 했었어요”
아이의 말이 끝나자, 마을에서 슈퍼를 하는 아주머니는 자신이 처녀 때, 지금은 사별한 남편과 연애편지를 몰래 주고받은 장소로 나무를 택했다고 했다. 자신이 편지를 써서 나무 밑에 두면, 남편이 그것을 보고 답장을 다시 나무에 묻는 방법으로 1년이나 교재 하다가 결혼했다고 말하며, 눈물을 훔쳤다. 저 마다 나무에 대한 추억을 크지도 작지도 않은 소리로 이야기했다. 태수는 가만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중, 뭐라도 결심한 듯이 마을 사람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는 50년 전에 도시에서 사업을 하다 실패한 후, 쫒기 듯 이곳 마을로 왔습니다. 당장 먹을 것을 살 수 없을 정도로 궁핍했는데, 이곳 분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었죠. 저는 그래서 이 나무를 심었습니다. 이 나무가 커서 마을 사람들에게 꼭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하지만 지금 까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이 이 나무를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지금에야 알게 됐네요. 어쩌면 나무는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난 것 같습니다. 나무가 번개에 맞아 초라한 기둥만 남았을 때, 저는 망연자실하고, 삶의 의욕을 잊었었지만, 여러분의 추억으로 다시 의지를 찾았습니다. 더 이상 슬퍼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나무를 아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태수가 이야기가 끝나자, 몇몇은 박수를 쳤고, 몇몇은 흘리던 눈물을 계속 훔쳤다. 태수는 잠시 나무 쪽을 바라보곤 무슨 생각이 났는지 입을 열었다.
“비록, 지금 나무는 없어졌지만, 추억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나무는 자신을 희생해서 다른 나무가 자라는 양분이 될 겁니다. 이제 슬퍼하지 말고, 앞으로 나가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50년 전에 제게 주신 배려는 다시 보답할 수 있도록, 다음 나무를 잘 키워보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크리스마스는 나무가 없어서 비록 화려하지는 않겠지만, 저희 칩 앞으로 와주십시오. 그 어떤 크리스마스 보다 더 따듯할 수 있도록 추억을 곱씹으며 여러분과 보내고 싶습니다”
그러자 마을 주민 한 명이 큰 소리로 답했다.
“그럽시다”
그리고 박수소리가 여기저기 들렸다. 태수는 마지막으로 부서진 나무를 바라보고는 그곳으로 다가가 잔불이 없는 쪽에 손을 대곤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때, 마을 사람들도 태수처럼 조용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