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타인의 기억(8/9)

by 길거리 소설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쳐다봤다. 여독 따위는 한마디 말로 모두 날아가 버린 기분이었다. 어머니를 찾았다는 얘기를 담담하게 하는 그를 보자 그가 어머니를 찾아서 기쁜지, 슬픈지, 분노하는지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그가 말을 이었다.


"어머니를 찾기는 찾았는데…."


그는 갑작스레 눈을 내리깔고, 말꼬리를 한없이 내렸다. 그의 몇 마디 말 속에서 그의 지금 감정이 '슬픔'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뭐라도 말해야겠다 싶어서 그에게 물었다.


"어머님을 만났을 때, 뭐가 안 좋으셨나요?"


그는 나를 잠시 쳐다보고는 계속 뜸을 들이다 결국 입을 열었다.


"명일 씨에게는 어떻게 된 건지 그냥 얘기할게요. 그리고 지금 하는 대화는 잊어주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가 해남으로 봉사활동 하러 가자고 제안한 일 기억하시죠?"

"네, 기억합니다"

"모든 일은 그 봉사활동으로부터 시작됐어요. 저는 5년 만에 그곳을 다시 찾았죠. 명일 씨도 알다시피 외국에 오래 나가 있는 동안에 참석하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대부분 그대로였어요.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뀐 거라고는 원장 수녀님이 매우 아프다는 점과 몇몇 처음 보는 입소자들이 들어온 정도였죠. 봉사는 수월했어요. 청소를 해주고, 식사를 나눠드리고, 시와 단편소설을 읽었어요. 입소자 중에는 자신이 시를 쓰고 싶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셔서,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시를 쓰는 방법도 알려드렸죠. 그러다 보니 밤이 되었어요. 할 수 없이 우리는 그곳의 빈방을 얻어 1박 하기로 했죠. 그런데 그곳에 계신 수녀님 중 한 분이, 자꾸 입소자 한 분이랑 저랑 너무 닮았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래서 수녀님께 물었죠. 어떤 분이랑 저랑 닮았는지요. 그러자 60대가 넘은 할머니 한 분을 콕 집어서 제가 알려주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저 할머니 입소자는 3년 전에 길바닥에 핸드폰, 신분증, 지갑 같은 것도 없이 쓰러지셨다가 시설로 오게 됐는데, 어째서인지 시설에 입소하기 전의 기억을 못 하신다고 하더라고요. 이름부터 사는 곳, 가족관계 등을 말이죠"


그의 말을 끊고 물었다.


"치매에 걸리신 분이었나요?"

"아니요. 정신은 멀쩡했대요. 다만, 과거의 일만 기억 못 하는 '기억상실증'에 걸리셨던 거죠. 병원에도 데려갔는데, 의사가 일시적인 것 같다면서 기다리라고만 했데요. 하지만 그때까지도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던 거죠. 아무튼, 수녀님이 말해주는 그 입소자를 자세히 보니까 저랑 조금 닮아 보이기는 했어요. 그냥 웃어넘겼으면 될 일이었는데, 사람이 느낌이라는 게 있잖아요. 문득, '저분이 내 어머니가 아닐까?'라는 희망과 두려움이 동시에 들더라고요. 하지만 애써 '닮은 사람이겠지'라고 치부하고는 무시했어요. 그리고 다음날 그 입소자에게 밥과 국을 내어주는데 가슴 한편이 강렬히 요동쳤어요. 결국 저는 식사 중인 그 입소자 뒤로 가서 실수인 척 머리칼을 몇 가닥 뽑아 제 것과 함께 '친자확인'을 진행했죠. 재밌게도 2주 뒤에 제가 받은 친자확인서에는 '99.99% 친자 일치'라고 쓰여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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