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말을 듣고 놀라 눈만 껌뻑거리고 있을 때, 그는 잔에 있는 맥주를 모두 비우더니, 말을 이었다.
"저는 그 결과지를 받고, 바로 해남에 있는 시설로 내려갔어요. 하지만 동네방네 떠들기는 싫어서, 원장 수녀님께 소설이 잘 안 쓰여져 며칠 머문다는 핑계를 대고 작은 방을 하나 빌리고는 어머니와 만나 이야기할 기회만 노렸어요. 그런데 그곳도 규정이 있기 때문에 제가 입소자에게 말을 걸거나 하는 일은 웬만하면 통제되서, 수녀님께 몇몇 희망하는 입소자들을 모아 낭독회를 열고 싶다고 부탁했죠. 다행히 낭독회에는 제 어머니도 참석했어요. 낭독회를 시작하고 30분이 지났을 때, 날이 좋으니 다 같이 밖에서 읽자고 제안했죠. 저는 모두가 일어나서 이동하는 찰나의 어수선함을 최대한 이용했어요. 나가려는 어머니한테 다가가서 제가 쓴 편지를 건넸죠. 편지를 받은 어머니가 저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길래, 조용한 곳에서 읽으라고 귀띔했어요. 제가 어머니께 건넨 편지에는 내가 당신의 아들이라는 내용과 어렸을 때 버려져 고아원에서 자랐던 내용, 그리고 친자확인서를 넣었었죠. 저는 어머니가 그 편지를 읽으면 바로 저를 찾아올 줄 알았어요.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오지 않으셨어요. 저는 미칠 지경이였죠. 꼬박 일주일이 지나서야 혼자 야외 의자에 앉아 책을 보고 있을 때, 제 옆으로 오셨어요. 나중에 알았는데, 상태가 심각하지 않은 입소자들은 약간의 야외 활동과 자유시간이 주어졌나 봐요. 이제껏 제 어머님이 밖에 나오지 않는 성격이라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거였죠"
그가 말을 잠시 끊고는 어머니를 만난 날을 회상이라도 하듯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때 그에게 물었다.
"어머님을 처음 뵀을 때 어떤 말씀을 하셨나요?"
그가 웃었다. 그가 그렇게 크게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움찔했다.
"어떤 말을 했을 것 같아요?"
그는 재밌다는 듯이 내게 물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저는 분명 어머니가 옆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고개도 돌리지 않고 앉아서 책만 봤죠. 아마, 나를 버렸다는 데에 대한 일종의 시위 같은 마음으로 애써 무시했나 봐요. 한참은 말없이 서로 앉아 있었어요. 그러다 긴 침묵을 깨고 어머니가 제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며 말했죠. 저는 제 이름을 알려드렸지만 계속 선생님 거리면서 제게 '선생님, 저는 이곳 천사의 집에 오기 전의 기억이 전혀 없기 때문에 선생님께서 주신 유전자 검사지 상에는 모자지간이 맞을지 모르지만, 제 마음으로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셨죠. 순간 분노가 치밀었어요. 친자확인까지 받아서 보여줬는데도 마음속으로는 동의할 수 없다는 그 한마디에 줄곧 꾹꾹 누르며 참았던 응어리가 폭발하듯이 '펑' 하고 터졌죠. 그전까지만 해도 어머니를 찾아야겠다는 마음이 옅어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그저 익숙했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갈 수 있었던 거였어요. 제 그리움은 예전이나 당시에나 똑같았는데 말이죠. 저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참았던 울분을 토해냈어요. '도대체 어떻게 그런 말이 나오냐?','당신 때문에 나는 엄마 없는 자식이라는 멍에를 이고 한평생 그리움에 묻혀 살았다','당신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하지 않지만, 친자확인서까지 보여줬는데도, 남 일 이야기하듯이 할 수 있느냐?','그냥 많이 힘들었겠구나! 이렇게 한마디만 하면 안 되냐?',''왜 당신은 나를 두 번 버리냐? 한 번 버린 거로는 만족할 수 없는 것이냐?' 그냥 다 쏟아냈어요. 그러고는 힐끗 어머니를 봤는데, 평온하게 앉아서 제 이야기를 들으시더군요. 저는 힘이 풀려, 하마터면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죠. 그때, 어머니가 '나는 이만 들어가 봐야 하니까 조심히 가세요. 선생님'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의자에서 일어나셨어요. 그리고 저는 그날 바로 시설에서 나갔죠"
그는 당시의 기억에 분노했던 건지, 들고 있던 술잔이 연신 흔들렸다.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에게서 잔을 뺏어 내 앞에 두고는 그에게 물었다.
"그 뒤로는 안 찾아가 보셨어요?"
"네, 가봤자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게 눈에 선해서 찾아가 보지 않았어요. 오랫동안 기다리던 사람이었는데, 기억상실증이라니, 참 재밌죠? 저는 어머니를 찾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그는 완전히 녹초가 된 듯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불편한 침묵이 계속되었지만 그를 위해 좀 더 침묵해 주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술을 마셨다. 결국에는 서 있지도 못할 정도로 취해, 나는 그를 숙소까지 데려다주어야 했다. 숙소는 오래된 모텔이었는데, 방안은 꽤 깨끗했다. 책상에는 첫 줄 혹은 두 번째 줄까지만 쓰여 있는 편지들이 아무렇게나 널려있었다. 누구보다 다시 그곳을 방문해서 어머니를 만나고 싶었을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 다음날, 그를 깨워 식사했다. 그는 식사하는 중에 어제 자신의 얘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연신 말했다. 터미널까지 동행한 그와 버스를 기다리는 중에 나는 그에게 '정말 다시 가서 만날 생각이 없는지?' 물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고 슬픈 미소만 남겼다.
그 뒤로는 그에게 몇 번의 메일을 보냈지만, 답신은 오지 않았다. 내가 그의 답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때, 케이로부터 그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바로 옷을 챙겨입고 그의 장례식에 갔다. 모두 그의 죽음에 대해 의아해하며 떠들 때, 나는 침묵했다. 그가 어떤 행동을 했을지는 짐작이 갔으니 말이다. 영정사진 속 그는 활짝 웃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영정사진 앞에 향을 피워 그의 명복을 빌었다.
내가 그의 이야기를 소설로 남기는 이유는 그의 성격상 아무에게도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리라는 짐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짧은 생을 마감하면서까지 편히 눈감지 못했을 그의 일대기가 독자들로 하여금 그를 조금이라도 가여워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하늘에서 편히 쉬고 있을 그에게 허락도 없이 제멋대로 소설을 썼음을 사과하며 글을 마치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