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소나기가 오는 바람에....."
짧은 인사가 오가고는 다시 긴 침묵이 흘렀다. 태수는 정면에 위치한 창으로 비 오는 밖을 보고 있었고, 청년은 다시 두꺼운 책을 읽었다. 카페 2층에는 몇몇 손님들이 더 있었는데, 그 마저도 나가버리자 태수와 청년 밖에 남지 않았다. 원래도 조용했던 카페가 더 조용해졌다. 태수가 창문을 바라보는 것을 그만두기로 결심하곤 긴 침묵을 깨며 청년 쪽으로 허리를 돌린 다음에 물었다.
"아까 떨어트렸던 종이, 제가 잠깐 읽었었습니다. 그 종이의 내용 본인 이야기입니까?"
태수의 말에 책에 집중하던 청년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갑작스레 중저음의 목소리가 귀를 때리자 반사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청년은 태수를 한 번 바라보고는 태수에게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한 번 집중하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귀에 안 들어오는 성격이라, 갑작스레 말씀하셔서 놀랐습니다. 오늘은 계속 죄송하기만 하네요"
"괜찮아요"
"선생님, 그런데 무엇을 제게 여쭤보셨죠?"
"아, 아까 흘린 종이를 제가 읽어봤습니다. 본인 이야기인가요?"
청년은 태수의 질문을 받고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소설이기는 하지만, 거의 제 이야기입니다"
머쓱하게 웃는 청년은 목이 타는지 테이블 우측에 있는 커피를 들어 쪽쪽 마시기 시작했다. 태수는 다시 질문했다.
"어디 글 쓰는 대회 같은 데라도 나가나요?"
청년은 마시던 커피를 내려두고는 사뭇 진지해 보이는 표정을 하곤 답했다.
"꿈이 소설가입니다. 저는 글을 써서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오늘 보신 글은 어디 대회를 나가거나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 글은 아닙니다. 저를 위한 소설이니까요"
태수는 청년의 대답을 듣고는 의아하다는 듯이 반문했다.
"'나를 위한 소설'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고, 희망을 주고 싶어서 글을 씁니다. 선생님 이번에는 제가 질문해보겠습니다. ‘사람들’에는 저도 포함되겠지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태수는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짧게 '네, 그렇겠죠'라고 답했다.
"지금 저는 상황이 좋지 못합니다. 오늘 처음 뵌 분께 제 모든 사정을 다 말씀드리기에는 실례인 것 같아. 거두절미하고, 아무튼 제가 힘든 상황에서 제게 다시 용기를 북돋을 수 있는 저 만의 소설을 제가 쓰고 있습니다."
"자신을 위해 자신이 소설을 쓴다라..."
태수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생각에 잠기듯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 그게 도움이 좀 됩니까?"
"저도 처음 저를 위해 써보는 소설입니다. 그래서 어쩔지는 잘 모르겠지만, 도움이 될 거라고 봅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태수는 청년의 말에 따로 답하지 않고, 미소를 보였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밖의 소나기는 그치고, 해가 나기 시작했다. 비가 그친 것을 먼저 말한 것은 청년 쪽이었다.
"선생님, 비가 그쳤습니다. 해가 나네요. 아직 남은 비구름 사이로 비추는 햇살만큼 멋진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감상에 젖은 청년이 말하자 태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청년이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벌써 가시게요?"
"네, 집에 가려던 길에 비가 내려 어쩔 수 없이 카페에 들어왔습니다, 이제 비도 그쳤으니 가봐야 합니다"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청년은 굳이 자리에서 일어나 태수에게 인사했다. 태수도 청년을 바라보며 목례를 하고는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에는 점원 밖에 없었다. 점원은 어디가 좋지 않은지 오른쪽 뺨에 얼음을 대고 있었는데, 태수가 2층에서 내려오자 얼른 얼음주머니를 치웠다. 태수가 다 마신 빈 컵을 점원에게 건네며 물었다.
"어디가 안 좋은 모양인가 봅니다?"
"네, 제가 치통이 좀 있어서요"
"그렇군요. 쾌차하세요"
태수는 카페에서 나왔다. 그때도 점원이 큰소리로 잘 가라고 인사했다. 태수가 고개를 돌려 표정을 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을게 뻔했다. 태수는 그 표정을 확인하기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