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비소년
비가 뚝뚝 내리자, 창밖을 보던 태수가 부리나케 밖을 나섰다. 태수와 같이 있던 아이들은 노란 우비에 장화를 신고, 소낙비에 만들어진 웅덩이 사이를 거침없이 질주하는 그를 마냥 부러운 듯 쳐다봤다. 태수는 일순간 자신이 마치 만화 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사정없이 뛰어다녔다. 볼일을 보고 돌아온 선생은 아이들이 창문에 쪼르륵 붙어, 열심히 바라보는 무언가를 확인하기 위해 눈을 게슴츠레 떴다. 그러자 오늘 우비와 장화를 새로 샀다며 하루 종일 자랑하던 태수가 온몸에 흙탕물을 묻히고 웃고 있었다. 선생은 경악했다. 일전에 아이가 빗물에서 못 놀도록 태수 어머니가 자신에게 신신당부한 일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태수의 어머니는 유치원에 매달 꽤 많은 돈을 기부하는 거물이었는데, 원장도 태수 어머니가 한마디 할 때마다,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그 힘이 정말 막강했다. 선생은 얼굴이 사색이 된 채로 바로 우산을 챙겨 밖으로 향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거세게 내리는 빗줄기는 땅을 팰 정도로 강했다. 선생이 우산을 펴자 여기저기 구멍이 보였다. 우산꽂이에서 아무 우산이나 집은 것이 낭패였다. 그럼에도 빨리 아이를 잡아야 했기에 그대로 쓰고, 빗속으로 들어갔다.
태수는 여전히 비 오는 날을 만끽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잘 보이는 곳에 서서 자기 우비를 뽐내는 정도로 만족하려 했지만, 성에 차지 않아 길길이 날뛰는 쪽으로 선회했다. 아이는 넓은 운동장을 쉼 없이 뛰어다니다, 물웅덩이가 보이면 그 앞에서 두 발로 점프하는 식으로 즐겼다. 아이들은 그저 태수가 부러운 듯 쳐다만 봤다. 몇몇 아이도 나가볼지 잠시 고민했지만, 나중에 선생님께 혼날 것이 두려워 그러지 않기로 했다. 태수는 더 광폭한 행보를 보였다. 주차장에 주차된 어떤 선생님 차 위로 올라가, 물기를 머금은 보닛을 미끄럼틀로 사용했다.
선생은 딱 이 시점에 다 해저 버린 우산을 들고나왔다. 선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태수가 있는 주차장으로 쏜살같이 뛰었다. 이미 뛰는 시점에서 그녀가 들고 있는 우산은 의미가 퇴색되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일단은 들고 뛰었다. 이미 온 몸이 억수로 내리는 비에 의해 다 젖어 버렸다. 그녀는 순간 짜증이 확 솟구쳤지만,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화를 낼 수도 없었기에 마음을 최대한 다스리려 노력했다. 그녀의 시선에 태수가 보였을 때, 아이는 이미 미끄럼틀 놀이에 질려, 자동차 옆에 있는 웅덩이를 발로 차고 놀고 있었다. 일단, 선생은 태수에게 다가가 그를 달랬다.
“태수야, 오늘은 비가 너어무 많이 오니까 우리 같이 들어가서 블록쌓기 놀이 할까?”
“싫어”
태수는 가까이 다가오는 선생을 손으로 밀치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아이들이 목을 빼꼼히 내민 창가 앞까지 내달렸다. 선생은 아이를 잡기 위해 부리나케 일어나 뛰었지만, 마침 불어오는 강풍에 우산이 뒤집히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넘어졌다. 선생은 갯벌에 넘어진 것처럼, 흰옷에는 흙탕물 범벅이었다. 짜증 섞인 신음을 내며 선생이 일어나, 요망한 악동을 얼른 찾았다. 그녀의 시선에 다시 창가 앞에서 팔을 잇는 힘껏 벌리고 아이들의 우상이 되고자 하는 태수가 보였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망가진 우산을 그냥 왼손에 들고, 오는 비를 다 맞으며, 터벅터벅 태수 쪽으로 걸었다. 아이는 여전히 그 자세로 오는 비를 모두 맞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선생은 조용히 아이 뒤에 서서 온 힘들다 해 번쩍 들어 올렸다. 그러나 미끄러운 우비 때문에 아이는 선생의 손아귀에서 쉽게 빠져나갔다. 태수는 선생과의 숨바꼭질에 흥미를 느꼈는지 ‘선생님 바보’라는 말과 함께 다시 반대쪽으로 뛰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이들은 참지 않고 웃었다.
그때, 유치원 정문이 열리더니 고급 승용차 한 대가 들어왔다. 선생은 들어오는 차를 유심히 보자 다시 사색이 되었다. 바로 태수의 어머니 차였기 때문이다. 오전 회의 때, 무슨 일로 원장님과 점심을 먹는다는 얘기는 들었었는데, 유치원으로 오는 줄은 몰랐기 때문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 상황에서 선생만 본 것은 아니었다. 차 안에서 태수 어머니도 흙탕물에 젖은 선생을 보고 적잖이 당황하며, 창문을 내렸다. 그러자 자신의 아이가 빗속에서 뛰어노는 모습까지 마주한 어머니는 말 그대로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경악했다. 태수가 입고 있는 우비는 백만 원도 넘는 금액으로 유명 브랜드가 한정판으로 만든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재밌는 점은 그 옷이 우비이기는 했지만, 방수기능이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에 지금처럼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착용하면 안 된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태수는 그저 해맑게 뛰어놀 뿐이었다.
선생은 불안한 시선을 검은 세단에 고정했다. 그러자 얼굴이 잔뜩 상기된 태수의 어머니가 자신과 아이를 번갈아 보며 노려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우선 아이를 먼저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 태수가 있는 쪽으로 뛰었는데, 이미 아이의 어머니가 자동차에서 유치원이 떠나가라 호통을 쳐버렸다. 아이는 불현듯 찾아온 엄마의 호통에 잔뜩 쫄아, 어쩔 수 없이 유치원으로 들어갔다. 선생도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유치원으로 들어갔다. 그 뒤에는 불 보듯 뻔한 일의 연속이었다. 태수의 어머니는 곧장 원장실로 들어가 오늘 일에 대해 선생의 관리책임을 물었다. 원장은 땀을 뻘뻘 흘리며, 태수 어머니 비위를 맞추기 위해 온갖 감언이설을 섞어 말하다가, 안 되겠는지 선생을 불렀다. 선생은 화장실에서 몸을 닦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녀가 입고 있던 옷은 얼룩덜룩했고, 머리는 이미 어쩔 수 없을 정도로 흙탕물과 땀과 빗물이 범벅인 채였다. 선생은 최대한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숙인 채 원장실로 들어갔다. 선생이 보이자, 태수 어머니는 호통을 쳤다.
“아니 도대체 애들 관리를 어떻게 하길래, 저렇게 비 오는 날 뛰어놀게 할 수 있는 거죠? 제가 분명 아이 등교하면서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빗물에 아이를 내버려두지 말라고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죠?”
선생은 거의 울먹거리며 답했다.
“그게, 제가 잠시 일을 처리하고 온 와중에 벌어진 일이라…. 정말 죄송합니다”
태수 어머니의 고압에 제대로 변명조차 하지 못한 선생은 눈물을 흘리기 직전이었다. 한편, 자신의 불만을 모두 쏟아 버린 태수 어머니는 잠시 이성을 되찾고, 자신 앞에 있는 가녀린 여인을 샅샅이 살폈다. 흰 티는 이미 누렇게 바래있었고, 얼굴과 머리에는 진흙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그녀의 손은 이미 흙색으로 베여서 당분간은 닦아도 닦이지 않을 상황처럼 보였다. 그제야 태수 어머니는 선생에게 조금 미안해졌는지, 목소리를 내리깔고 말했다.
“다음부터는 조심해 주세요. 저 비옷도 비싼 건데 비를 하도 맞아서 버리게 생겼습니다”
태수 어머니가 말을 마치자, 선생은 짤막이 ‘네’라고 대답한 다음 ‘죄송합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던 건지 태수 어머니는 지갑에서 십만 원짜리 두 장을 꺼내 선생에게 건네며 말했다.
“선생님도, 우리 아이 때문에 고생하신 것 같은데, 세탁비는 제가 드릴게요”
선생은 고개를 저으며, 연신 괜찮다고 답했지만, 태수 어머니는 막무가내로 선생 손에 돈을 쥐여준 뒤, 그녀를 내보냈다. 선생은 원장실을 나오며, 자기 손에 들린 흙색으로 물들어, 구겨진 수표를 한참 바라봤다. 그때, 태수가 방실방실 웃으며 선생 쪽으로 오더니 말했다.
“선생님! 다음에도 우리 빗속에서 술래잡기 또 해요!”
천진한 미소였다. 선생은 아이를 바라보며 억지로 웃음을 짓고 ‘알겠다’라고 답한 뒤, 화장실로 향했다. 태수는 어머니 손에 이끌려 평소보다 일찍 퇴원했다. 태수 어머니는 아들을 더러운 꼬락서니로 밖에 내보이기 싫었던 모양이다. 유치원 정문까지 태수 어머니 차를 배웅한 원장은 유치원에 들어오며, 한시름 놨다는 표정으로 선생을 찾았다. 원장실로 다시 불려 간 선생은 호되게 혼날 줄 알았지만, 오히려 ‘적극적인 대응으로 태수 어머님이 아주 만족하셨습니다. 고생했어요’라고 하자, 온몸의 힘이 빠져버렸다. 선생은 원장의 말에 건성으로 답하곤, 밖에 나가 비 오는 날의 운동장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수표를 천천히 찢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