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생의 수기
나도 이름이 있지만, 전학을 왔다는 이유로 1년째 ‘전학생’으로 불리고 있다. 2년 전, 각박한 도시 생활의 염증이 몸과 마음에 스며든 어머니의 요양차 가족 모두 이곳 시골로 왔다. 살아온 날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도시 생활에 절인 나로서는 썩 만족스럽지 않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를 위한 일임을 알았기에 참을 수 있었다. 슬슬 이사 왔다는 사실에 적응될 즈음 나는 OO초등학교 분교로 전학수속을 마쳤다. 학교는 직선거리로 500m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구불길에 비포장도로라 20분은 족히 걸렸고, 길이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수풀이 우거져 흡사 정글을 뚫고 나가는 느낌이었다. 내가 다닐 예정인 학교는 모든 학년이 모두 모여 수업을 진행했는데, 그래봤자 10명도 채 안 됐다. 그나마, 5학년은 나까지 포함해서 3명으로 학년 중에서는 가장 많은 편이었다.
아이들은 내가 전학 왔음에도 관심이 없었다. 아이들이 내게 관심이 없으니, 나도 딱히 다가갈 이유가 없었다. 정확히는 명분이 없었다. 그냥 먼저 아는 체해도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사회 축소판인 초등학교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먼저 다가가면 지는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저쪽에서 먼저 아는 체하지 않으면, 절대로 고개 숙이고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를 반기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바로 도시학교에서 1년 전에 전근 온 선생님이었다. 게다가 나와 비슷한 지역에서 교편을 잡다가 내려오신 거라, 꽤 반가우셨나 보다. 그러나 내 학교생활은 선생님 때문에 삐걱거렸다.
전학해 온 지 일주일이 갓 넘었을 때부터, 선생님은 나와 ‘도시’라는 내적 유대감이 통했는지, 말끝마다 내게 ‘전학 오기 전 학교에서는 이런 건 모두 배웠지? 혹시 이런 것도 배웠었니?’라는 말을 꼭 했다. 선생님으로서는 자신의 학습 방향에 대한 바로미터 쯤으로 나를 여기신 모양이지만, 그런 걸 알 리 없는 아이들은 도시에서 전학은 늠이 꽤 잘난체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학교에는 6학년이 딱 한 명 있었는데, 덩치가 좋은 남학생이었다. 그 형이야말로 정말 시골 학생의 표본 같은 외모를 하고 있었다. 집에서 어머니가 이 나간 바리캉으로 몇 번 머리를 쓱쓱 밀어버렸을 헤어스타일에 땀이 밴 누런색 티를 입고, 얼굴은 가무잡잡하고, 또 잘 먹어서 그런지 포동포동했다. 형은 우리들의 왕으로 군림하면서 자신이 곧, 이곳의 ‘엄석대’임을 자처했다. 반 아이들은 형에게 대항할 만한 힘이 없었기에 군말 없이 따르는 편이었고,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나에 대한 요구가 괴롭힌 수준으로 바뀌어 있었다. 분명, 선생님이 모두의 앞에서 나와만 대화하고, 나를 칭찬하는 일이 잦아지자, 심통이 난 게 분명했다. 하루는 물을 떠 오라 시켜놓고선, 오만 트집을 잡으며 몇 번이고 되돌리는 게 아닌가? 나는 다섯 번째 대물림에서 결국 참지 못하고 컵을 내동댕이치며 대들었다. 그러자 형은 씩 웃으며, 누군가에게 눈짓을 줬고, 이를 확인한 두호, 두섭 형제(쌍둥이)가 한 명은 나를 잡고, 나머지 한 명이 나를 때리는 식으로 괴롭혔다. 그때부터 나는 학교의 왕에 눈 밖에 나게 됐다.
나에 대한 괴롭힘은 투박했다. 급식으로 나온 우유를 내게 던지거나, 매직펜으로 자리에 낙서하는 등 너무 원색적이라 화도 나지 않았다. 내가 있던 도시의 학교에서는 몇몇이 아이 하나를 괴롭힐 때, 대상이 되는 아이의 털끝 하나라도 건들지 않는것이 불문률이었다. 대상이 되는 아이는 반 전체로부터 무관심과 무시당하다가 결국 정신적으로 견디지 못해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고, 그 아이의 히스테릭한 발작은 반 전체 아이들의 목적이요. 기쁨이었다. 그와도 너무 다른 이런 인간적인 괴롭힘은 내게 남아있던 순수함마저 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우유 팩을 맞으면서도, 매직펜을 지우면서도 화가 나기는 커녕, 오히려 즐겁기까지 했다. 이 얼마만의 아이다운 순수함이란 말인가? 나는 적당히 그들의 장단에 맞춰 놀아주리라 다짐했다. 그러자 그들은 점점 약이 올랐는지 괴롭히는 수위를 높였다.
하루는 누군가 내 도시락을 뺏어 먹은 일이 있었다. 내가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책상에는 내용물이 빈 도시락이 뚜껑도 열린 채 덩그러니 놓여있던 것이다. 아픈 와중에도 어머니가 나를 위해 힘겹게 싸준 도시락을 원숭이만도 못한 놈들이 먹었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었다. 나는 얼른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쌍둥이 중 형인 두호가 입맛을 다시며 휴지로 입가를 닦는 모습을 봐버렸다. 나는 곧장 두호 앞으로 가서 ‘내 도시락을 먹은 거냐고?’ 따졌다. 하지만 잡아뗐다. 그런데 그놈이 트림하자, 누가 봐도 방금 도시락을 먹은 사람의 냄새가 났다 . 내가 그 냄새로 또 따지자, 자기도 더 물러설 곳이 없었는지 ‘그게 뭐 대수야?’라며 역으로 성을 냈다. 이 모습을 형과 두섭이 키득거리며 자리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정답을 맞혔고, 그대로 자리로 돌아가 도시락을 들어 두호의 머리에 내려찍었다. 그리고 얼굴을 부여잡고 주저앉은 두호의 등 뒤로 가서 팔을 이용해 목을 졸랐다, 그러자 형과 두섭이 말리러 내 바로 앞까지 왔다. 나는 속으로 ‘잘 걸렸다 이놈들’이라 생각하고, 형이 내지른 주먹을 피해 손날로 형의 목 정중앙을 두세 번 내리친 다음, 뛰어올라 돌려차기로 머리를 때렸다. 형을 ‘악’ 소리를 내며 왼쪽으로 자빠졌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달려가 옆으로 누워있는 형의 배와 가슴팍을 사정없이 발끝으로 때렸다. 형은 누운 채로 흐느끼며 울었다. 두섭이는 내 행동에 얼어 버렸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자기 핏줄을 감싸안고 있었다. 형을 밟아버린 내 시선은 두섭에게로 향했다. 나를 두려워하는 그의 눈빛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본때를 보여줘야만 했다. 내가 오른팔을 높이 쳐들어 두섭의 왼뺨에 정확히 꽂자, 그도 ‘악’이라는 소리와 함께 자빠지며 데굴데굴 굴렀다. 나는 거기서 멈췄다. 그리고 그들에게 한마디 했다. ‘너희들에게 내게 우유 팩을 던지던, 낙서를 하던, 때리던 신경 쓰지 않겠다. 하지만 한 번 더 내 도시락을 건드린다면 그때는 이보다 더한 대가를 치를 것이다. 그리고 나는 태권도 3단에 합기도 2단이다. 웬만하면 싸움 걸지 말도록’. 내가 말을 마치자, 뒤늦게 선생님이 돌아와 ‘어머 어머’ 이러며 눈치를 살폈다. 학생 중 하나가 선생님께 그간의 사정을 말했다.
그날 이후, 그들의 괴롭힘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철저한 이방인이 된 채로 그들 무리에 속하지 못했다. 이제는 형의 무리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조차 나를 두려워하는 바람에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그리고 이따금 나를 불러야 하는 상황이 오면, 내 이름 대신 ‘전학생’이라고 꼬박꼬박 불러줬다. 나는 조금 억울했다. 원래 이렇게 싸우면서 친해지는 것이 아닌가? 나를 원색적으로 괴롭힐 때만 해도, 언젠가 모든 오해가 풀리고 이들과 잘 지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했었는데 말이다. 결국, 형은 나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대로 졸업해 버렸고, 두호와 두섭이는 이따금 내가 부르기라도 하면, 땀을 한 바가지씩 흘린다. 나는 선생님의 배려로, 중학교 검정고시 공부를 따로 준비하고 있다. 시간 되면 등교해서, 검정고시용 공부(혼자 한다.)를 하고, 혼자 점심을 대충 먹고, 하교한다. 학교생활이 재미가 없다. 누군가가 나를 이름으로 불러줬으면 좋겠다. 나는 또 공부하러 가야 하므로 수기는 여기까지 쓰겠다. 지금이야 따분함에 힘들어도 내가 어른이 되면 이 또한 즐거운 추억이 될 거라고 굳게 믿으며, 이 순간을 미래의 나에게 선물한다. 이제 정말 글을 마치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