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삼십분(完)

by 길거리 소설가

삼십분


약속에 늦지 않기 위해 가까운 장소임에도 삼십 분이나 서둘러 나왔다. 너무 급하게 준비해서였을까? 선선한 바람까지 부는 가을 초입임에도 이마에 흐르는 땀에 주체 못 하고, 입을 벌린 채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지하철 천장 송풍기를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콧잔등을 지나 턱 아래로 뚝뚝 떨어진 땀을 오른손등으로 훔쳤다. 희끄무레한 멀건 액체가 손등에서 다시 바지춤으로 옮겼다. 그 행동을 몇 번이고 반복하니 약속 장소를 알리는 안내 음성이 들렸다. 나는 다시 서둘러 역사를 빠져나갔다. 시계를 확인하니 예정대로 30분 일찍 도착했다. 나는 얕은 한숨을 내쉬고, 안도감에 긴장을 풀었다. 누군가는 나를 보고 피곤하게 산다고들 말하지만, 이는 어쩔 수 없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속에 일렁이는 불안이 곧바로 나를 집어삼킨다.

잠시 긴장을 늦추고, 팔을 축 늘어트렸다. 그러자 그날의 기억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이십 년도 더 된 얘기다. 내가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 주의가 산만하다 보니, 어머니의 근심·걱정은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하루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학교에 가던 중, 머리에 날아든 나비에 정신이 팔려, 잡던 손을 내팽개치고, 그대로 나비를 따라갔을 정도였다. 아버지는 애써 아직 내가 어리기 때문이라며 어머니를 타이르기는 했지만, 가끔 나를 바라보는 불안한 눈빛은 당신의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점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부모의 과잉보호 속에서 자란 나는 오히려, 부모라는 안전한 그늘막이 있다는 생각에 더 안하무인으로 행동하고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사달이 났다. 무엇 때문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무튼 그날은 집안의 중요한 행사가 있었음에는 틀림없다. 새벽부터 나를 깨워 정신 차리게 하더니, 분주하게 청소했다. 새벽 내내 이어지던 청소는 닭이 두 번 울 때까지 계속됐는데, 그 후로 어머니는 주방에서 요리했고,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도와 심부름 같은 걸 하며 분주하게 보냈다. 잠도 덜 깬 나는 비몽사몽인 채로 의자에 앉아 있다가, 밀려오는 지루함에 어머니에게 가서 오락하고 와도 되겠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안돼“였다. 나는 계속 칭얼거리며, 불 앞에서 땀 흘리는 어머니를 지칠 때까지 괴롭혔다. 결국, 그녀는 두손 두발을 들고 내게 500원을 주며, ’딱 30분이야‘라는 조건부 허락을 했다. 나는 어머니 손에 쥐인 500원을 낚아채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가 오락실로 향했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지만, 오락실은 북적였다. 메케한 담배 냄새를 피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오락기 앞에 서서, 위의 시계를 먼저 쳐다봤다. ‘10시 10분이니까 10시 40분까지 하면 되겠군‘. 이렇게 생각하곤 스스로 흡족해하면서 오락기에 동전을 밀어 넣었다. 그대로 나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게임에 너무 빠져버린 것이다. 그곳의 30분은 내게 1분보다도 더 짧은 찰나의 순간이었다. 으레 그 나이 때 애들이 그렇듯 뇌에 도파민이 퍼지는 일에 대해서는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더 이상 산만한 아이는 없었다.

한참 게임에 몰두하고 있을 때, 주변에서 게임을 하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일어나더니 오락실 문으로 향했다. 이에 따라 오락실 안은 더 번잡스러웠다. 하지만 내게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기에 금방 신경을 끄고, 다시 게임에 몰두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구급차 소리가 오락실을 가득 메우더니 손 하나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나는 그 자리에서 고개만 돌려 나를 부르는 이를 확인했다. 아버지다. 갑작스레 혼란스러웠다. 아버지는 게임기 위에 있던 내 손을 잡더니 그대로 구급차에 실었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던 나는 처음 보는 아버지의 근엄한 표정에 대꾸 없이 따랐다. 그때의 시계는 12를 가르켰다. 그렇게 구급차에 오르자, 피투성이가 된 어머니가 누워있었다. 너무 무서워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흡’하고 호흡을 멈췄다. 그리고 어머니의 피 냄새를 맡으며,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작은 간이침대 위에 뉘어져 있었다. 커튼형 칸막이가 사방에 둘러있어 그곳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각종 약품 냄새와 부산스러운 소음을 토대로 병원이라고 짐작했다. 완전히 눈을 뜬 나는 기절 직전의 상황이 뇌리에 스쳤다. 고통스러움에 울부짖으며 누워있는 피 칠갑 어머니의 모습, 갑작스레 뱃속에서 역한 기운이 올라와 침대 끄트머리에서 헛구역질을 반복했다. 그러자, 장막이 거쳐지고, 아버지가 나를 안아주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 품에 안겨 숨을 헐떡이며 울어 재꼈다. 한참을 울었을까? 아버지는 누군가의 부름을 받아 그쪽으로 갔다. 멀뚱히 서 있던 나는 자연스레 시선을 아버지 쪽으로 옮겼는데, 아버지는 녹색 가운을 입은 사람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하다는 말을 연방 내뱉고 있었다. 드디어 아버지가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채로, 옅은 미소를 띠며 내게 와서 기쁨 넘치는 탄성을 질렀다. ‘네, 엄마 수술이 잘 됐데. 경과는 지켜봐야겠지만 생명에는 지장 없대.’. 아버지는 눈에 눈물을 훔치며, 웃었다. 나도 덩달아 웃었다.


다행히 어머니의 병세는 빠르게 호전되었다. 아버지 말로는 금세 집에 갈 수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있는 병실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며칠 지나자 들어갈 수 있었다. 내가 어머니를 보고 눈물을 글썽이며 그녀의 품에 들자, 어머니는 나를 꼭 안아주며, 자신은 괜찮으니 울지 말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 후로 어머니가 퇴원하실 때까지 병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학교를 마치면, 병실로 가서 어머니랑 조잘거리며 수다를 떨거나, 졸리면 간이침대에서 잤다. 그런 와중에 불편한 진실과 마주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다. 그날도 학교를 마친 나는 곧장 병원에 들렀다. 하지만 평소와 다르게 거세게 내리는 빗물의 저항을 뚫고 와서 그랬는지 몸이 축 늘어지며, 눈꺼풀은 점점 무거워져 그대로 간이침대로 향했다. 잠들려는 와중에도 어머니가 담요를 챙겨 내 몸에 둘러주는 감촉이 느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웅성거리는 소리에 실눈을 뜨고 지켜보자, 아버지가 어머니와 대화 중이었다. 나는 두 분이 무슨 대화를 그렇게 재미나게 하나 궁금한 마음에 일어나지 않고, 자는 척하며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러자 걱정스러운 말투로 아버지에게 무언가 물어보는 어머니의 음성이 내 귓전을 때렸다.

“내가 왜 사고 났는지 태수한테는 말 안 했죠?”

“응, 아직은. 하지만 얘기해줘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어려도 알 건 알아야 할 것 같은데”

“됐어요. 괜히 아이 상처나 받지, 당신도 절대로 함구하세요”

“나는 잘 모르겠어. 약속 시간을 어긴 자신을 찾으러 갔다가 교통사고가 난걸. 이번 기회에 버릇도 좀 고칠 겸 얘기하는 게 어때?”

“그건 안 돼요. 이런 식으로 아이에게 지울 수 없는 멍에를 짊어지게 할 수는 없어요. 교육은 다른 방식으로도 충분해요”


내가 울며불며 뛰쳐나간 순간은 어머니가 말을 마친 순간이었다. 그제야 모든 것이 이해됐다. 30분 안에 집으로 돌아오기로 한 어머니와의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모든 사달이 난 것이다. 내가 만약 30분만 게임을 하고 집으로 갔다면, 어머니가 사고가 날 이유는 없었다. 모두 다 내 탓이다. 나는 뛰었다. 병원 복도를 달리고 또 달렸다. 눈물로 범벅이 된 눈에는 희뿌연 잔상만이 놓여있었다. 뛰다가 사람과 부딪칠 뻔도 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저 멀리서 아버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시했다. 병원 밖까지 나온 나는 어딘지도 모를 곳에서 다시 목 놓아 울었다. 다행히 눈물은 세차게 내리는 비에 씻겨 내려갔다. 의자 같은 것이 보이길래 털퍼덕 앉아 고개를 떨구고 흐느끼는데, 머리 위로 내리던 빗방울이 뚝 하고 그쳤다. 나는 조심히 위로 올려다봤다. 우산을 쓴 아버지다. 아버지는 조용히 나를 안고, 다시 병실로 데려갔다. 어머니는 애써 내게 미소 지으며, 대화를 다 들었는지 물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어머니는 일부러 일어나 절뚝거리는 다리로 냉장고에서 음료 하나를 꺼내 주며 말했다. ‘우리 아들은 아무 잘못 없어,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야.’. 더없이 해맑게 웃는 어머니를 보고, 내 시선은 다시 뿌연 안개가 낀 듯 흐릿해졌다.


*

요즘 타지에서 공부한다고 집에 조금 소홀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어머니를 기다리며, 연신 손부채질로 더위를 식혔다. 나는 속으로 며칠 전, 굳이 이곳까지 온다는 어머니를 타박한 일을 생각했다. 괜한 말을 했다며 후회가 밀려오는 찰나, 눈에는 절뚝거리며 다가오는 어머니를 발견했다. 나는 얼른 자리에서 튀어 나와 어머니 쪽으로 달려가 그녀를 부축했다. 어머니는 생글거리며 내 안부부터 물었다. 나는 적당히 대답하고, 가슴 속에 응어리진 한마디를 내뱉었다.

“엄마, 다리는 좀 어때요?”

어머니를 볼 때마다 하는 말이지만, 속에서 밖으로 꺼내기 참 힘든 말이다. 어머니의 대답은 늘 같다.

“많이 좋아졌어. 이제는 안 아파!”

속으로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표정이 좋지 않으면 괜스레 당신이 미안해할까 봐 나 역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겪어야 할 성장통을 나 대신 몸소 겪어주셨다. 계속 절뚝대는 어머니를 부축한 채, 도로변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밖은 시원하다고 할 수 없지만, 간혹 바람이 불었기에 선선한 느낌을 주기는 했다. 어머니를 자리에 앉히고, 평소 좋아하시는 음료와 빵을 사서 자리에 갔다. 어머니는 내 인기척에도 반응 없이 도로변을 달리는 자동차에 시선을 고정한 채, 턱을 괴고 바라보고 있었다.

-끝-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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