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수가 영호를 관찰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는 그가 학교 쓰레기장에서 꿇어앉아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음을 확인한 날이었다. 처음에는 그의 특이한 행동을 그냥 지나치려 해 보았지만, 생경한 모습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아 어쩔 수 없었다. 태수와 영호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모두 같은 곳을 나왔음에도 친하지 않았다. 같은 반도 몇 번 했고, 둘이 같이 앉았을 때도 있었지만, 영호가 상당히 불량했기 때문에 태수 쪽에서 선을 그었다. 그 후,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그들의 관계는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이제껏 관심밖에 있던 영호를 관찰한 지 이틀이 지난 태수는 경악했다. 원래도 불량한 줄은 알았지만, 아이들 혹은 선생들에게 부리는 행패와 패악질은 그를 고등학생이라고는 믿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에 담배를 태우고, 오토바이로 운동장을 활개 치고, 아이들의 돈을 갈취하고, 지적하는 선생에게 연필을 던지는 등 학생이 저지를 수 있는 온갖 악행을 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악행은 일상다반사였다.
태수가 영호를 관찰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는 여전히 포악하고 괘씸했다. 학생기준에서 착한 일이라고는 단 하나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는 모습이 선해 보일 정도로 그는 인간말종의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큰 사건이 일어났다. 반 친구가 우유를 먹던 중 사레가 들렸는지 재채기를 했는데 입안에서 튀어나온 허연액체가 하필이면 자고 있던 영호의 등짝을 적셨다. 영호는 불현듯 서늘해진 뒷덜미를 손으로 닦고, 자신의 단잠을 방해한 아이를 확인했다. 180cm 거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는 눈빛을 부릅뜨고, 곧 죽을 쥐새끼를 내려봤다. 아이는 벌벌 떨었다. 미안하다고 말을 해야 했지만 입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영호는 큼지막한 주먹을 위로 치켜들더니 이내 아이의 턱주가리에 꽂았다. 그리고 다리로 자비 없는 징벌을 내렸다. 아이는 킹킹대며 소리도 내지르지 못하고 흐느껴 울었다. 영호는 멈출 줄 몰랐다. 드디어 아이의 입에서 시뻘건 게 튀어나왔다. 영호를 따르던 놈들이 드디어 그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다행히 동면 직전의 포악한 곰 같던 그도 동료들에 의해 조금은 수 그러 들더니, 뉘어있는 아이를 한번 보곤, 머쓱했는지 침을 퉤 뱉고, 무리를 이끌어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태수가 영호를 관찰한 지 2주일이 지났다. 그를 관찰하며 느낀 점은 그가 포악하다는 점과 하루에도 몇 분씩, 심하면 한 시간씩 사라졌다가 돌아온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그의 무리들과 담배라도 태우러 나가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그러다 태수는 왜 자신이 그를 관찰하기 시작했는지 이유에 대해 떠올리고, 그가 사라졌을 때에는 분명 쓰레기장에 갔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하지만 그를 미행하기에는 그가 너무 무서웠기에 당장은 몸을 사렸다.
태수가 영호를 관찰한 지 3주일이 지났다. 지난 일주일 동안 영호는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태수가 영호를 관찰한 지 한 달이 넘었다. 그리고 영호도 다시 학교에 나왔다. 그는 여전히 포악했다. 반 아이들은 그가 나오지 않던 일주일간, 그가 눈에 보이지 않은 심리적 안도감과 언제 다시 나타날지 모르는 공포감이 혼재된, 정제되지 않는 행복을 만끽했다. 그들 중에는 차라리 그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는 아이들까지 있었다. 태수는 공포로서 통제하는 그의 위엄이 이토록 대단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가 학교에 등장하자 모든 아이는 한숨을 쉬었지만 제각각 계산이 들어간 한숨이었다. 누군가는 시작되는 공포에 대한 한숨이었고, 누군가는 그의 등장을 마음 졸이고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한숨이었다. 그가 반에 들어서자마자 그의 졸개 중 하나를 불러 돈을 걷어오라 시키더니, 수북이 쌓인 돈뭉치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바로 사라졌다. 반 아이들은 그가 집에 가버린 것인가? 하고 잠시 기대했지만 두 시간 후에 다시 돌아왔다.
태수가 영호를 관찰한 지 두 달이 넘었다. 태수는 그를 관찰하며, 그와 내적 친밀감이 쌓였던 것인지, 아니면 그의 포악질에 내성이 생긴 것인지 더 이상 그가 두렵거나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몇 대 때리고 끝내는 그의 뒤 끝없는 심성에 ‘남자답다’라고 생각할 지경이었다. 태수는 자신의 호기로운 마음을 앞세워 슬슬 관찰에 대한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영호는 학교에 나왔다. 평소와 다르지 않았고, 여전히 반 아이들의 왕으로 군림했다. 그런 그가 3교시 수업 종이 울리자, 그들 무리를 벗어나 홀로 사라졌다. 태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곧장 그의 뒤를 밟았다. 그와는 열 걸음 정도 뒤에서 숨을 죽이고 따라붙었다. 설마 자신을 미행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영호는 태수의 생각처럼 쓰레기장 옆 공터에 무릎 꿇고 앉아 중얼거렸다. 그의 손은 가볍게 맞잡은 뒤, 무릎 위에 올려있었고, 그의 고개는 땅 쪽으로 떨군 채였다. 흡사 기도하는 모습이라고 태수는 생각했다. 그의 기이한 행동은 십 분을 넘겼다. 이미, 4교시를 울리는 종이 쳤음에도 그는 일어날 줄을 몰랐다. 괜히, 태수만 마음이 급해져 교실로 향했다.
다음날, 학교에 평소보다 일찍 도착한 태수는 반으로 가는 대신, 영호가 앉아 있던 쓰레기장으로 향했다. 그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곳에 서서 주변을 살펴보니 철제 난간이 보였다. 태수는 아버지 방에서 슬쩍한 조그마한 녹음기를 철제 난간에 달았다. 그리고 반에 도착해서 영호가 어서 빨리 그곳으로 가주기만을 바랐다. 오늘 영호는 2교시를 마치고, 또 사라졌다. 태수는 굳이 그를 따라가지 않았다.
태수가 학교를 마치고, 쓰레기장 난간으로 가보니 하루 종일 그곳의 소리가 녹음된 녹음기가 덜렁 매달려 있었다. 녹음기를 챙겨 곧장 집에 도착한 태수는 씻는 것도 잊은 채, 컴퓨터를 켜곤 녹음기 파일을 열었다. 그리고 음성을 앞으로 넘기며 영호의 목소리를 숨죽여 기다리자, 지지직거리는 잡음 소리 저편에 작고 희미하지만, 또렷한 영호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오늘도 죄를 지었습니다. 친구를 때렸습니다. 이렇게 회개합니다. 이렇게 회개합니다. 제가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지은 죄 모두 회개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오늘도 죄를 지었습니다. 친구를 때렸습니다. 이렇게 회개합니다. 이렇게 회개합니다. 제가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지은 죄 모두 회개합니다”
태수는 영수의 소름 돋는 중얼거림에 얼른 녹음파일 껐다. 갑작스러운 한기를 느낀 태수의 팔에는 닭살이 돋아나 있었다. 영호는 이제껏 온갖 패악질을 저지르고 쓰레기장에서 죄를 회개했던 것이다. 태수는 입 밖으로 욕을 내뱉었다. 그날, 침대에 누운 태수는 영호가 어째서 어울리지도 않는 기도를 했을까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했다. 여러 가설 중에 그가 이중인격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두 인격이 서로를 공유하면서, 한쪽은 죄를 짓고, 한쪽은 죄를 용서받는 쪽임이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태수는 마지막으로 영호가 이중인격이라는 증거를 잡고 싶었다. 분명, 그가 쓰레기장에서 기도할 때는 착한 인격일 테니 그때 가서 말을 붙여 보자고 생각했다.
다음날, 어제와 마찬가지로 이른 아침 눈을 뜬 태수는 곧장 학교로 달려갔다. 전날 침대 누워 그에게 직접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전에 확실한 증거를 찾기 위해 그의 사물함이라도 뒤져보자는 생각이었다. 그가 만약 정말 이중인격이라면, 두 인격이 나눈 대화가 쪽지 형태로 어딘가에는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먼저, 그의 사물함을 뒤졌다. 사물함에는 냄새나는 체육복과 과자 봉지가 더럽게 박혀있었다. 태수는 코를 막으며 사물함을 닫았다. 다음에 그의 책상을 뒤졌다. 책상에는 책은 없고, 과자봉지와 음료수 캔 그리고 작은 노트가 하나 있었다. 태수는 얼른 노트를 열었다. 첫 장에 ‘천국에 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적혀있다. 다음 장에는 일자가 쓰여있고, 잘 못했던 일과 진심으로 회개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 노트는 일종의 ‘영호의 용서 노트’였다. 태수가 자신의 자리에서 노트를 읽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영호의 악행과 참회를 번갈아 읽었다. 그러다 노트의 어느 부분에서 다른 내용의 글이 있었다.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에게 회개를 많이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더 많은 잘못을 저질러야 한다!’
그랬다. 영호는 하나님에게 회개하기 위해서 패악질을 저질렀던 것이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망상인가 생각한 태수는 책을 덮으려던 순간 가슴팍으로 주먹이 날아왔다. 얕은 신음을 내뱉은 태수가 고개를 들자 영호와 눈이 딱 마주쳤다. 영호는 빠르게 자신의 노트를 낚아채곤, 태수의 뺨을 사정없이 때렸다. 태수는 맞으면서도 어이없는 진실에 실성한 사람처럼 웃으며, ‘영호의 천국 입성에 일조하는구나’라고 생각한 뒤, 영호의 발차기에 그대로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