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건의 운수좋은날을 읽고...
비 오는 날의 설렁탕집
오전 내내 기분 나쁜 비가 추적추적 내리더니, 그 시커먼 구름이 이제는 빗물을 게워 낼 준비라도 마친 듯 장터에 어둑함을 몰고 왔다. 하늘을 한번 쳐다본 오씨는 한숨을 푹 쉬고는 철로 된 입간판을 가게로 들였다. 작년에도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간판이 녹슬어 비싼 값을 치렀던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오씨의 가게 안에는 오전부터 하릴없는 잡배 넷이 탁주를 걸치며, 주방에서 사골을 고아 내는 오씨의 아내를 희롱할 생각에 입맛을 다셨다. 오씨는 눈치라도 챈 듯 아내에게 집에 가라고 한 뒤, 자신이 그 일을 받아 대신했다. 오씨의 아내가 완전히 가게를 나서자, 잡배 놈 중 하나가 ‘쳇’ 이러며 아쉬워하는걸, 오씨는 작게 째진 눈으로 흘겼을 뿐 아무 말 하지 못했다. 곧 식당에는 흰 삼베로 만든 도포를 입고, 갓끈을 정갈하게 맨 노인 둘이 자리를 잡고 앉아 설렁탕과 청주를 주문했다. 이십 전이나 하는 청주를 주문받아 신이 난 오씨는 그들이 먹을 설렁탕과 함께 소내장 몇 덩이를 그릇에 담아 내주고 너스레를 떨었다.
“나리 오늘은 일본 놈들이 소 도축을 많이 해가서 질 좋은 내장을 좀 얻었습니다. 같이 드십쇼”
노인들은 오씨의 말에 대꾸도 없이 다 헤진 도포 자락을 걷어내고 수저를 들었다. 오씨는 뭐라도 좀 더 떨어지지 않을까 기대하는 눈치였지만 노인이 자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자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그때, 잡배 놈 하나가 탁주를 주문하며, 가게가 떠나가게 소리쳤다.
“거, 우리도 그 질 좋은 내장 좀 얻어 봅시다”
오씨는 탁주 한 사발을 그놈 자리에 ‘탁’ 놓으며 대꾸했다.
“그 질 좋은 내장은 다 팔렸수다. 어떻게 국물이라도 좀 더 드립니까?”
오씨는 말끝을 올리며 불편한 기색을 딱히 숨기지 않았다. 오씨가 과민하게 반응하자 상대는 저마다 낄낄거리며, 불그스름한 오씨의 얼굴을 보고 ‘완보탈’,‘완보탈’ 이라고 놀리더니, 이내 흥미를 잃었는지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설렁탕 바닥을 숟가락으로 박박 긁다가 자리를 털고 나갔다. 그들이 나가자, 오씨는 얕은 한숨을 쉬고, 그들 자리에 소금을 팡팡 뿌리곤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오씨가 한참 주방에서 사골국을 국자로 젓고 있는데, 가게 문의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내가 비틀거리며 들어왔다. 그 사내의 머리는 까치집을 해놓고선 흰 띠로 대충 동여맸고, 잘 먹지 못했는지 광대가 튀어나올 정도로 살가죽이 없었지만, 어쩐지 팔뚝은 두툼하고 매끈했다. 그는 흰색 상하의 저고리를 입었는데, 바짓단은 거뭇한 게 진흙으로 색칠되어 있었다. 얼굴은 검었지만, 코와 볼은 빨간 게 누가 봐도 어디서 한잔 걸치고 온 사람이었다. 오씨는 방금 나간 잡배 놈 중 하나인가 싶어 인상을 잔뜩 찡그렸으나, 그 사내가 성큼성큼 다가와 얼굴이 또렷이 보이자, 근방에 사는 김첨지임을 알았다. 오씨는 사골을 휘졌던 국자도 내팽개치고, 그를 반기러 주방에서부터 뛰쳐나갔다.
오씨가 허리를 숙이고 김첨지에게 말했다. “도련님 오셨습니까?” 이미 꾹꾹 눌러 담은 막걸리를 여섯 잔이나 해치운 김첨지는 초점 없는 눈으로 자신에게 존대하는 오씨를 멍청하게 바라보다가 번뜩 자기가 들어온 곳이, 자신의 종놈이 차린 설렁탕집임을 알고는 망연자실한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김첨지의 아버지 김일직 대감은 일본 놈들이 제 나라를 빼앗자,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 독립 자금에 쓰라며 보탰지만, 정작 자신은 순사에게 걸려 모진 고문 끝에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반면, 오씨는 신분제가 폐지되고도 한참을 김첨지 집에서 종노릇하다, 김 대감이 그렇게 된 후로 일본말을 익혔다. 천운이었을까? 오씨는 제물포에서 일본 상인을 상대로 통역 일을 했는데, 벌이가 꽤 쏠쏠해서 오씨는 그 돈을 밑천으로 이곳 장터에서 설렁탕 장사를 할 수 있었다. 그런 연유로 김첨지는 오씨의 설렁탕집 근처는 얼씬하지 않았으나, 오늘은 그조차도 잊을 만큼 술에 절어있어서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것 같다. 김첨지는 오씨를 보고 다시 나갈까도 생각했지만, 갑자기 만사가 귀찮아져 오씨에게 소리쳤다.
“여기 설렁탕 하나 포장해서 내와라.”
“네, 도련님 금방 드리겠습니다” 오씨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김첨지의 호령에 조용히 술을 먹던 노인 하나가 그를 힐끔 쳐다보더니, 마을 최고의 망나니 김첨지임을 알아보곤 혀를 끌끌 차며 일행에게 말했다.
“쯧쯧 아비는 군자인데, 어찌 저런 놈이 아들이랍시고, 참. 김대감이 무덤에서 뛰쳐나오겠네! 허허”
김첨지는 비스듬하게 서서 정신을 차리는 와중이었음에도 노인의 말은 어쩐지 또렷이 들었다. 김첨지는 잠시 노인 쪽으로 고개를 돌려 눈을 흘기고, 주먹을 꽉 쥔 채 당장이라도 달려갈 것 같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는지 선 채로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이를 알아챈 노인의 일행이 재빨리 그를 변호하고 나섰다.
“너무 그러지 말게, 아비도 잃고, 자식도 둘이나 잃었는데 어찌 멀쩡하게 돌아다닐 수 있겠는가? 술이라도 마셔야지. 안 그런가?” 그때, 오씨가 포장된 설렁탕 봉지를 김첨지에게 내왔다.
“여기 있습니다. 도련님”
김첨지는 설렁탕값을 치르기 위해 흙이 묻은 십 전짜리 지폐 하나를 허리춤에서 꺼내 그에게 건넸다. 그러자 오씨는 으레 아까처럼 허리를 푹 숙이고 한사코 받지 않겠다는 고집을 피웠다. 그러자 김첨지는 소리를 빽 하니 지르며 오씨를 다그쳤다.
“네 놈도 이제 나를 무시하는 거냐? 자 봐라, 돈이다.”
김첨지는 건네받은 설렁탕도 내팽개치고, 주머니에 짤랑거리는 동전과 때 묻은 지폐를 쏟아내듯 오씨에게 던졌다. 오씨는 김첨지의 광증에 몸을 오들오들 떨다가 결국 땅에 떨어진 십 전짜리 지폐 하나를 주우며 말했다. “아닙니다. 도련님 그 돈, 받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제야 김첨지는 땅에 떨어진 돈과 설렁탕을 주워 들고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오씨는 김첨지가 나서는 뒷모습을 음울하게 바라봤다.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보던 노인은 다시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저놈은 천성이야. 천성. 어쩔 수 없는 천성이라고” 노인의 말에 혼자 생각에 잠긴 오씨는 순수했던 어린 날의 김첨지를 떠올렸다. 그러자 갑자기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이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