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여정
<끝자락>
아직 이름도 물어보지 못한 그녀에게 나는 곁을 내주었다.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에 그녀가 놀라지는 않을까 조바심에 숨도 참은 채 목석처럼 반드시 앉아 대합실 시계만 쳐다봤다. 내 어깨 위에 올려진 그녀의 머리에서 달큼한 샴푸 향이 내 코를 찔렀다. 나는 의식도 하지 않은 채, 향기를 따라 시선을 그녀에게 던졌다. 오뚝한 콧잔등이 바로 보이고, 그 위에는 큰 눈망울을 가린 속눈썹이 그녀의 얕은 숨소리에 맞춰 잔잔히 움직였다. 5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불현듯 그녀가 눈을 뜨고, 황급히 내게서 멀어지며 말했다.
“어머, 제가 실례를 했네요. 미안해요”
나는 못내 아쉬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내 딴은 지을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녀의 눈이 반달을 그리더니, 이번엔 입술이 실룩거리며 양 끝을 올렸다. 이번에는 내가 용기를 낼 차례였다. 그녀에게 이름이라도 물어봐야 했건만, 선뜻 입이 떼지지 않았다. 잠시의 침묵이 무거웠던 것인지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일어나 편의점으로 향했다.
##
<충동>
그 표현이 딱 맞는 말이다. 새벽에 눈을 뜬 나는 어슴푸레한 창밖을 바라보다 책 한 권만 가방에 넣은 채 그대로 밖을 나섰다. 막상 나와서 하릴없이 걷던 중,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집 근처 버스 터미널에서 이곳을 떠날 수 있는 가장 빠른 차편을 사버렸다.
‘무정 역’.
5분 뒤에 출발이라고 전하는 매표소 직원이 내게 건넨 차표에는 그렇게 쓰여있었다. 난생처음 듣는 지명에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이 앞선 나는 지체하지 않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어설프게 팔을 괴고, 차창 너머로 지나가는 가로수를 세던 중 잠들었다.
<무정>
얼마나 잤을까? 기사님의 거친 손이 내 어깨를 마구 흔들었다. 비몽사몽인 채로 가방을 챙겨 버스를 내리자 9시를 알리는 대합실의 알람 시계가 울리고 있었다. 나는 곧장 대합실에서 2차선 도로에 1층 건물들이 듬성듬성 있는 거리로 빠져나왔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는지 상가들은 대부분 문을 닫은 채였다. 꼭 죽어있는 도시 같았다. 나는 바람을 따라 움직이기로 했다. 길 중간에 우두커니 서서 눈을 감자, 흐릿한 바람이 스쳤다.
오른쪽.
바람은 확실히 내게 오른쪽이라고 말했다. 가방을 고쳐 매고, 오른쪽으로 향했다. 정류장 앞의 거리는 금세 지나쳤다. 아마 이 ‘무정’에서 가장 번화한 곳인 모양이다. 지금부터는 끝없는 논과 밭 그리고 멀리 보이는 산 뿐이다. 그나마 있던 포장도로도 거친 비포장도로로 바뀐 지 오래였다. 이따금 지나가는 자동차에 흙먼지가 흩날릴 때도 있었지만, 오히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의 반갑기까지 했다. 20분 쯤 걷자 이번에는 양옆에 갈대밭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내 키에 반절만 한 갈대들이 잔잔하게 움직였다. ‘갈대들은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서있기만 해도 누군가가 봐주기 위해 멈춰 서는데, 어째서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 누구도 다가오지 않을까‘라는 멍청한 생각과 함께 갈대들을 바보처럼 바라봤다.
“저기”
<나를 ‘저기’라고 부르는 여자>
“저기”
내가 반사적으로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돌리자 웬 여자가 서 있었다. 나이는 나와 비슷해 보였고, 작은 키에 단발머리, 그리고 큰 눈망울과 오뚝한 코가 돋보였다. 내가 대답도 못하고 머뭇거리자, 상대가 답답했는지 카메라를 들이밀며 말했다.
“저, 사진 좀 찍어 주세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대답을 못 한 것이다. 연애는커녕 이성 친구도 없는 내게 이런 상황에 대처할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내민 카메라를 덤덤히 받았다. 그러자 그녀는 위치로 가서 자세를 취했다. 나는 최대한 숨을 참고,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킨 뒤에야 작은 프레임 속 그녀와 마주할 수 있었다. 하늘거리는 하얀색 원피스 차림에 챙이 긴 밀짚모자를 머리에 얹은 그녀는 한 쪽다리를 올리거나, 두 팔을 하늘 높게 들며 자세를 취했다. 나는 연방 셔터를 누르며 5분 동안 그녀만의 사진사의 업무를 완벽히 수행했다. 내가 그녀에게 결과물을 보여주자, 꽤 만족했는지 두 번이나 감사 인사를 남기고, 내가 걸어왔던 그 길로 홀연히 떠났다. 나는 그녀가 남기고 간 온기에 잠시 정신이 팔렸지만, 다시 길을 걸었다. 풍경은 마찬가지였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멀리 보이는 허름한 건물에 산이 가려졌다는 정도였다. 좀 더 걸어 그 건물이 온전히 보이자, 그곳이 카페임을 알 수 있었다. 마침, 목도 마른 참이라 쉬어갈 겸 들어갔다. 카페 안은 온갖 고가구들이 즐비하게 놓여있어 협소하게 보였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주인은 내가 들어갔음에도 등을 지고 무언가에 열중했다. 나는 적당히 자리를 잡고 주문할 요량으로 하나밖에 없는 창가 자리로 갔으나 그곳에는 이미 주인이 있는 건지 책이 놓여있었다. 하는 수 없이 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은 뒤, 카운터로 향했다.
“커피 한 잔 주세요”
여주인은 나를 반기며 주문을 받았다. 결제까지 맞췄으나, 못내 창가 자리에 앉고 싶다는 아쉬움에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쭈뼛거리며 서 있자, 여주인이 내게 물었다.
“왜요? 뭐 필요한 거 있어요?”
“아니요. 혹시, 저기 창가 자리에 지금 손님이 있나요? 책이 놓여있어서.”
여주인은 내 어깨너머로 창가 자리를 쓱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아니오. 아까 손님 한 분이 계시기는 했는데, 가방이랑 챙겨 나갔어요. 아마 그 손님이 두고 가신 것 같은데. 그냥 앉으세요”
나는 여주인에게 덤덤히 ‘네’라고 답했지만, 기쁜 마음에 한달음에 창가 자리에 앉았다. 향긋한 커피와 창으로 적당히 부는 바람. 그리고 샛노란 밖의 풍광을 바라봤다. 갑작스레 찾아온 뭉클한 감정을 누르려 커피잔에 손을 대는 순간 [잊어버리는 방법] 이라고 쓰인 테이블 위의 책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럼에도 책을 펼쳐 볼 용기는 나지 않아, 놓여있는 그 채로 제목만 몇 번이고 읽으며 생각했다. ‘이 책의 주인은 얼마나 지독한 기억이길래, 이런 책까지 사는 걸까?’. 그때, 누군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카페로 들어왔다.
<나를 ‘아까’라고 부르는 여자>
“아까”
그녀와 두 번째 만남이었다. 카페 안으로 들어온 그녀와 눈이 딱 하고 마주쳤고, 그녀는 내게 곧장 달려와 물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쉽사리 답하지 못하자,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 제 사진 찍어 주신 분이시죠?”
“네, 맞아요. 아까 반대 방향으로 가시지 않으셨나요?”
그녀와 구면이라 조금 편안해진 모양이었는지 내가 질문을 해버렸다.
“네, 그런데 여기에 뭘 좀 두고 온 것 같아서, 여기까지 뛰어왔어요”
나는 책을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이 책인가요?”
“네, 네”
그녀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테이블 위에 놓인 책을 고이 집어 자신의 가방에 넣은 뒤, 자연스레 내 맞은편에 앉았다. 나는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커피를 그녀에게 권했다.
“아직 안 마셨는데, 좀 드세요. 9월이지만 아직은 날이 더워서, 시원한 걸로 시켰어요” 갑작스레 내 입에서 말이 튀어 나갔다. 생각지도 못한 내 행동에 나도 놀랐다. 그녀도 당황했는지 잠시 나를 빤히 보더니, 해맑게 웃으며 잔을 들어 마셨다. 꽤 목이 마른 모양이다. 커피를 반절 정도 마신 그녀가 물었다.
“그쪽도 혼자 여행 오셨나 봐요?”
어쩐지, 이번 질문에는 다시 예전처럼 몸이 굳어졌다. 내가 또 우물쭈물하자, 그녀는 ‘피식’하고 웃더니 대답을 기다리는 대신 자신이 떠들었다.
“저도 혼자 여행 왔어요. 뭔가 신나는 일이 생길 것 같아서요. 그런데 잘못 온 거 같아요. ‘무정’이라는 데에는 아무것도 없네요”
말은 저렇게 해도, 이미 입가에 번진 미소는 그녀가 얼마나 즐거웠다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딱히 그녀의 말에 대꾸할 거리가 생각나지 않아 창밖을 쳐다봤다. 그러자 이번에도 그녀가 말했다.
“그런데 원래 남의 말을 잘 무시하는 성격이세요?”
약간 뿔이 난 그녀는 볼이 빨갛게 상기된 채 콧바람을 뿜으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럼에도 악의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이번만큼은 빨리 답해야겠다는 생각에 말부터 뱉었다.
“아니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곧 머리를 쥐어짜서 답했다.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 제가 사람들이랑 말을 잘 못합니다. 어색해서”
두 귀가 새빨개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느낌이 아니라는 건, 내 귀를 보곤 웃으며 말하는 그녀를 통해 확인했다.
“정말요? 정말 그러신가 보다. 지금 귀가 엄청 빨개 지셨어요. 그런데 내성적이신가요?? 원래 그런 분들은 혼자 여행 잘 안 하지 않아요? 집에 계신 거 좋아하고 그럴 줄 알았는데?”
신나게 떠드는 그녀가 왠지 싫지 않았다. 나는 웃으며 말하는 그녀에게 이따금 짤막이 답하며, 생각지도 못한 시간 동안 대화를 이어갔다. 시계가 11시를 알리는 뻐꾸기가 나오자. 그녀가 시간을 확인하곤 놀라 말했다.
“어머 12시 차 타고 가야 하는데. 슬슬 일어나야겠어요”
“그럼 같이 일어나시죠. 저도 가봐야겠네요”
<아름다운 동행>
카페를 나온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리고 갈대밭을 지날 때쯤, 내가 용기 내어 물었다.
“카페에서 그쪽이 두고 간 ‘잊어버리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책을 봤어요. 무엇을 잊기 위해서 그 책을 보시는 건가요?”
그녀가 화들짝 놀라 눈을 흘긴 채, 나를 쳐다봤다.
“혹시, 책 펼쳐 봤어요?”
그녀의 다른 모습에 나는 너무 놀라 손사래를 치며, 제목만 봤고, 책은 펼치지 않았다고 거듭 부인했다. 그제야 그녀는 미소를 되찾았다.
“하하. 장난이에요. 책 펼쳐봐야 아무것도 없어요. 그리고 무엇을 잊기 위했냐고 물었죠? 사실, 그런 건 없어요. 그냥 책이 이뻐 보여서 산 거예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는 그녀의 입술은 분명 떨리고 있었다. 더 이상 캐물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나는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잠시 말없이 걷던 중, 그녀가 어디론가 뛰어가더니 외쳤다.
“저, 여기서 사진 하나 찍어주세요”
뒤로 산이 보이는 풍경이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그녀에게 받은 카메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마치 옆 친구와 어깨동무하는 것처럼 오른팔을 어정쩡하게 올린 채로 있었다. 확실히 이상했다. 나는 찍은 사진을 그녀에게 바로 보여줬다. 말없이 사진을 보는 그녀의 눈망울에 분명 촉촉한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녀의 슬픔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 나는 먼 산을 바라보며 딴청 했다. 잠시 정적이 지나가자 다시 밝아진 그녀가 내 팔에 팔짱을 꼈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걸어가는 모양 그대로 멈췄다. 그 모습에 그녀는 다시 깔깔거리고 웃으며, 나를 숙맥이라고 놀리더니, 끄트머리에 ‘고마워요.’라고 작게 소곤거렸다.
“뭐가 고맙다는 거죠?”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될 말이었으나, 생각지도 못한 게 입에서 먼저 튀어나 나갔다. 나는 후회했다.
“사진 찍어줘서 고맙다고요. 얼른 가요”
##
<다시 끝자락>
편의점에서 돌아온 그녀는 생수 하나를 내게 건네며 물었다.
“몇 시 차에요?”
“저는 12시 30분 차에요”
결심의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그녀는 10분 뒤면 버스를 타고 영영 떠날 것이다. 나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녀가 건넨 생수병을 잠시 자리에 놓고, 일어나 말했다.
“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네!”
쾌활하게 답하는 그녀를 뒤로한 채, 화장실 세면대에 물을 받아 연거푸 얼굴을 쓸어내린 뒤, 다시 그녀 앞에 서서 물었다.
“짧은 인연이었지만 헤어지려니 너무 아쉽네요. 혹시 이름이랑 전화번호 좀 알 수 있을까요”
이미 내 심장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오장육부가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해 온몸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느낌이었다. 내 눈은 그녀의 입술에서 떨어질 생각을 안 했고, 두 귀는 주변 소리를 아예 차단한 것인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심장 소리는 이제 더 크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창피함은 순간뿐이다. 오늘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마땅했다. 찰나의 순간 속에서 나는 긴 심연의 터널에 푹 빠져버린 느낌으로 그녀의 입술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기다렸던 그녀의 음성이 내 귓전에 울렸다.
“그렇죠? 그런데 그거 아세요?”
나는 당황했다. 그리고 당황한 채로 답했다.
“뭐가요?”
“제가 어디서 봤는데요. 헤어짐이 아쉬운 이유는 여정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래요. 어? 차가 왔어요. 저는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럼. 목적지까지 조심히 가세요”
그녀는 모를 말만 남긴 채 떠났다. 허무함이 나를 파고들었다. 분명, 그녀는 내 모습에 어떠한 매력도 느끼지 못했음이 분명했다. 멀어져가는 그녀가 탄 버스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의자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생수병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생수병에 작은 포스트잇 쪽지가 붙어있었다. 그녀의 이름과 전화번호였다. 나는 쪽지를, 한참을 바라보며, 내게도 헤어짐을 향해 달려가는 아름다운 여정이 시작되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