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파란 손수건(完)

by 길거리 소설가

잔잔한 듯하게 흐르는 한강은 내 마음을 대변하지 못한다. 귀에 꽂은 이어폰의 음량을 억지로 올려 그나마 울적한 마음을 바꿔보려 애썼지만, 가라앉은 기분만큼은 쉽사리 돌아오지 않는다. 시끄러운 노랫말이 귓전에 울려도, 벙어리의 아우성처럼 내게는 스쳐 가는 바람일 뿐이다. 떠나간 인연의 피상에 지나지 않았다. 서늘한 맞바람이 강줄기를 타고, 내 앞을 세차게 때린다. 더 이상 이곳에는 있을 수 없다. 나는 바람의 흘러가는 데로 발걸음을 옮겨 강 아래를 향해 걸었다. 사람들은 뭐가 그리 즐겁고 재밌는지, 저마다 돗자리를 펴고 사랑놀이에 연 염이 없다. 지금만큼 나를 더 비참하게 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그들을 애써 외면하고, 강을 따라 더 내려가자 제멋대로 풀이 나 있는 강가 어귀의 작은 벤치에 노인 두 명이 앉아 있다. 할아버지는 지팡이로 턱을 괴고 앞을 바로 보고 있고, 할머니는 등을 꼿꼿이 세운 채 앞을 바라본다. 그 둘은 서로를 바라보지 않지만, 두 손은 맞잡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사랑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어쩌면, 진정한 인연의 완성이란 같은 곳을 바라보며, 나란히 달리는 마라톤과 같지 않을까? 저들은 강은 바라보며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꿈을 꿀 것이다. 한참을 자리에 앉아 있던 노부부 중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고쳐잡고 일어났다. 할머니도 할아버지 등짝을 바라보며, 천천히 일어나 그의 손을 꼭 잡았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잡은 손 쪽으로 무심히 시선을 던지더니, 이내 앞으로 걸었다. 나는 주인 없는 벤치에 앉아 노부부가 바라보는 꿈에 발을 담갔다. 노을이 일렁이는 강렬한 붉은 하늘빛이 시선에 들어오자, 눈에서는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흐른다. 이내 제멋대로 쌓여있던 가슴 한편의 응어리가 게워지듯 비좁은 목구멍을 통해 쏟아져 나온다. 누가 볼세라 소리죽여 흐느껴 봤지만, 이미 터져버린 봇물 처럼 쉽사리 감춰지지 않는다. 이제는 눈물마저 눈치 없이 흐르고, 끅끅거리는 외침은 오열로 바뀌었다. 의식 없이 오른 주머니에 고이 모셔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으려는 찰나, 소중한 사람의 마지막 선물을 내 눈물로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제 결심했다. 이곳 벤치에 삶을 내려놓고 떠난 노부부처럼, 나도 떠난 이와 함께하기 위해선 그가 바라보는 곳을 바라봐야만 했다. 내 옆에 없더라도 슬며시 남편의 손을 잡던 노부인처럼 나도 그를 잡기 위해선 그를 놓아줘야만 했다. 파란 손수건을 손에 꼭 쥐고, 천천히 강가로 향했다. 가시지 않은 강바람도 이제 나를 막지는 못할 것이다. 손수건이 있는 힘껏 강에 던졌다. 순간 손수건은 하늘거리며 모두 펼쳐지더니 미련 없이 나를 떠났다. 이렇게 쉬운 거였는데, 어째서 나는 지난 몇 년간 하지 못했을까? 그저 이렇게 놓아주기만 했으면 됐을 텐데 말이다. 그도 원했을 것이다. 더 이상 하늘에서 아파하는 나를 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다 끝났다. 드디어 그를 가슴에서 내보냈다.


그를 보내고 다시 발걸음을 돌려 벤치에 앉았다. 이제 붉은 노을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어둑해지는 하늘이 곧 달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적막한 분위기가 싫어 괜한 헛기침을 몇 번 하자 주변에 놀러 온 동물들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이번엔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강변임에도 바다의 비릿함이 조금 전해진다. 해가 지나 살을 에는 바람이 불었다. 카디건을 뚫고 들어오는 강바람에 괜히 옷을 여며봤지만, 소용이 없다. 이제는 정말 가야 할 시간이 왔다.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 왔던 길을 나섰다. 여전히 쌀쌀한 바람이 불어대는 되돌아오는 길로 말이다.

토요일 연재
이전 09화(단편소설)무정(無情)의 여정(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