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젓가락
나는 가끔 힘들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오면, 꼭 그날을 떠올린다. 10년 전,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또 내 생일이기도 했는데, 가난한 대학생이었지만 ‘생일만큼은 근사한 곳에서 보내자’라는 생각에 없는 돈을 쪼개 비상금까지 만든 상태였다. 나는 두툼해진 지갑을 바지 뒷주머니에 찔러넣고, 무작정 밖으로 나섰다. 날이 몹시 더웠기에 손으로 연신 부채질하며, 두리번거리다 내 눈길을 끌 만한 간판을 발견했다. 빨간 바탕에 노란색으로 굵게 쓰인 ‘스파게티 맛있습니다’. 그 가게 간판의 첫인상이 어찌나 강렬했는지 ‘비싸고, 근사한 가게’에 간다는 내 목적을 깡그리 잃게 할 정도였다. 나는 무엇에 홀리기라도 하듯 ‘스파게티가 맛있습니다’라는 집으로 들어갔다.
식당 내부는 꽤 투박했고, 벽면에는 이 가게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쫙 펼쳐져있는 것이 ‘보통 식당은 아니구나!' 하는 인상이 들었다. 이미 점심시간은 지났기에 가게는 한산했고, 나는 밖이 보이는 창가 자리로 안내받아 앉았다. 점원이 물과 메뉴판을 건넸고, 나는 신중하게 고민하다 ‘토마토 파스타’를 주문했다. 내가 메뉴를 주문하자, 점원은 식전 빵을 내게 내왔다. 사실, 레스토랑이라고는 중학생 때, 엄마 손에 이끌려 가본 게 전부라 모든 것이 생소하고 낯설었지만, 그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최대한 익숙한 듯 행동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겼던 건, 그 식전 빵을 어떻게 먹는지 몰라서 자리에 있던 포크와 나이프로 썰어 먹었다. 아무튼 내 첫 식전 빵 경험이 지나가자, 이내 토마토 파스타가 나왔다. 나는 최대한 우아하게 먹고 싶었다. 평소 5분이면 먹었을 작은 양이었지만, 포크와 숟가락을 이용해서 천천히 먹으며, 중간중간 냅킨으로 입을 닦는 것도 잊지 않았다. 토마토 파스타는 놀라울 정도로 맛있었다. 물론, 내게 파스타라는 음식 자체가 낯설고, 비교 대상이 될 만한 경험도 없기는 하지만, 절대적인 맛의 기준으로 따진다면 내가 이제껏 먹었던 모든 음식을 통틀어 가장 맛있는 맛이었다. 나는 먹는 중에 속으로 ‘사람들은 이런 음식을 먹기 위해 돈을 버는구나’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매 순간 최고의 경험을 갱신하고 있을 때쯤, 모녀가 내 대각선 방향의 테이블에 앉았다. 어머니 쪽은 나랑 등지고 있고, 귀여운 여자아이는 내 기준으로 대각선 방향으로 바로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아이는 세 살에서 네 살쯤으로 보였는데, 양 갈래로 머리를 따고, 예쁜 분홍 원피스에 빨간 구두가 신겨있었다. 아이는 파스타집에 와서 신이 났는지 연신 방글방글 웃으며, 기대에 찬 눈빛으로 어머니 쪽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조금 지루해지면 바닥에 닿지도 않은 짧은 다리를 앞뒤로 흔들며, 음식이 나올 때까지 지루함을 참았다. 나는 남은 음식도 멋스럽게 먹기위해 일부러 더 천천히 포크를 돌려가며 두세 가닥씩 입으로 넣고 있는데, 모녀 테이블에서 점원에게 젓가락을 부탁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시 내 상식으로는 파스타 같은 고급 음식은 포크로 먹는다고 알고 있었기에 ‘저 엄마도 처음 와서 포크가 불편한가 보구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원이 젓가락을 어머니에게 가져다주자, 어머니는 그 젓가락을 아이에게 다시 건넸다. 나는 그 장면이 상당히 의아해서 집중해서 쳐다봤는데, 아이가 너무 어려 아직은 젓가락질에 서툴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시나 아이는 젓가락질에 서툴렀다. 교정용 젓가락도 아니고, 성인이 사용하는 일반 쇠젓가락은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힘들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작은 손으로 젓가락을 짧게 쥐고는 검지와 약지를 최대한 이용해서 파스타 면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오른손 검지는 빨갛게 물들었다. 아이가 파스타 면과 짧은 사투를 벌인 끝에 첫 면발이 입속으로 쏙 들어갔다. 아이는 만존스럽다는 듯 배시시 웃었다. 아이가 먹는 중에도 시선을 떼지 않고 바라보던 어머니는 아이가 드디어 첫입에 성공하자 손뼉을 짝짝 치며 기뻐했다. 어머니의 응원에 신난 아이는 온몸으로 춤을 추더니 두 번째 면발을 잡기 위해 다시 고군분투했다. 나는 이미 먹는 것도 잊은 채 넋 놓고 아이가 먹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아이는 느릴지언정, 조금 더러워질지언정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 예쁜 옷이 이미 토마토 국물로 범벅이 되고, 입과 손은 음식의 잔해들로 촘촘히 박혔지만, 온 신경을 젓가락 하나에 집중한 채 묵묵히 한 가닥씩 면발을 입속에 넣을 뿐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뭉클한 감정이 일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끝은 확실히 기억난다. 내 눈가에 촉촉이 눈물이 맺혀 오른쪽 뺨을 타고 내려가는 그 순간이 말이다. 주책스러운 마음에 얼른 냅킨으로 뺨을 닦자, 조금 전 냅킨으로 입을 닦고 묻은 빨간 소스가 내 뺨에 같이 묻어버렸다. 순간 당황했지만, 재미난다는 생각에 한참을 속으로 웃고 얼른 냅킨의 깨끗한 부분으로 뺨을 닦아낸 뒤, 얼마 남지 않은 음식을 마저 먹었다. 내가 잠시 촌극을 벌이는 중에 아이는 역시나 그 자리에서 묵묵히 젓가락질에 매진했다. 슬슬 아이가 그토록 젓가락에 진심인 이유가 궁금해질 때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점원이 결국 참지 못하고 아이의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아이가 젓가락질이 서툴러 보이는데 포크로 가져다 드릴까요?”
아이의 어머니는 점원의 배려에 눈인사로 고마움을 표시하고 답했다.
“아니에요. 아이가 좋아서 하는 일인 걸요. 제 딴에는 어른들이 모두 일반 젓가락을 쓰니까 내심 부러웠나봐요. 아마,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가 봐요”
그제야 점원은 이해가 간다는 표정으로 한결 편안하게 답했다.
“저 나이 때가 다 그렇죠. 뭐. 그럼, 제가 냅킨 한 장 더 가져다드릴게요. 식사 맛있게 하세요”
나는 아이의 젓가락질의 이유를 듣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이 날을 평생 기억하자고 다짐했다.
오늘 나는 다시 그날을 떠올리며, 조용히 옥상에서 내려왔다. 생일날에 우연히 만난 아이의 젓가락질은 내게 또 다른 의미의 수많은 생일을 선물했고, 앞으로도 선물하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