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사람
몇 달 전부터 사거리 신호등 앞에 이상한 사람이 서 있었다. 160cm가 넘지 않는 작은 키에 등은 구부정했고, 장발의 머리는 얼굴을 모두 가렸다. 이따금 부는 바람에 그의 민낯이 드러나면 양 볼에 패인 곰보 자국이 보였으며, 시선은 늘 땅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는 더운 여름임에도 아주 추운 겨울에나 입을 법한 검은색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주변에는 소매 사이로 떨어지는 땀들로 인해 비 온 뒤 처럼 젖어있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여느 노숙인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조금 다른 점을 말해보자면 이렇다. 그는 꽤 규칙적으로 사거리에 출몰한다. 새벽이 가시고, 해가 떠오를 때면 으레 그도 그 사거리에 나타났고, 반대로 석양이 모두 지고, 땅거미가 내려오면 그도 사라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 사내 곁에서 잠시 머물렀던 행인에 의하면, 그에게서 굉장히 좋은 향기가 난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행인이 농담하는 줄 알고 흘려들었으나, 다른 이들도 이구동성으로 같은 말을 하자, 나도 직접 그의 곁에 서봤더니 정말로 향기가 나는 게 아닌가? 메케한 매연들 틈에서 분명 달콤하고, 포근한 그의 향기를 맡았다. 인지부조화. 당시 느꼈던 감정이다. 노숙인의 모습에서 맡을 수 없는 향기를 느끼자 괘씸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는 그저 한낱 부랑자에 불과하지 않은가? 어쩌면 나는 그 매혹적인 향기에 취한 날부터 그를 주의 깊게 관찰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를 관찰하는 일을 굉장히 지루한 고행이었다. 해가 떠서 신호등 앞에 딱 서 있는 다음부터는 먹고, 마시기는커녕 작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막말로 길가의 돌덩이를 바라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신호등 앞에 서 있는 그가 익숙해질 무렵 작은 변화가 일었다.
그날도 나는 사거리에 있는 카페로 출근했고, 그도 거기 서 있었다. 그런데 평소와 달랐다. 그의 오른손에 무언가 들려있었는데 자세히 보이지 않자 일부러 밖으로 향했다. 나쁜 짓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떳떳한 행동도 아니기에 내 어색한 발걸음과 그 어색함에서 촉발되는 시선 처리는 퍽이나 우스웠을 것이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그의 곁으로 다가가자 나를 끌어당겼던 향기가 코를 찔렀다. 잠시, 향기에 취했으나 이내 고개를 젓고 그의 오른손을 유심히 살폈다. 기역 자 모양으로 굽혀있는 손끝에는 불이 켜있는 작은 손전등을 쥐고 있었다. 일단 확인은 했으니, 발걸음으로 돌려 다시 카페로 향했는데. 머릿속에는 계속 ‘뭐 하러 그는 손전등을 심지어 불까지 켜놓고선 들고 있었는지’ 의문이 맴돌아 어쩔 수 없이 다시 발길을 돌려 그에게 가서 물었다. 오랫동안 봐왔던 그에게 건넨 첫 질문이었다.
“어르신, 어째서 대낮에 불이 켜진 손전등을 들고 계신가요?”
나는 최대한 공손하게 물었다. 그리고 그의 대답을 듣기 위해 허리를 약간 낮추고, 귀를 쫑긋 세웠지만 상대는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좀 더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어르신, 손전등은 왜 들고 계신 거예요?”
두 번의 물음 끝에 그가 나를 힐끗 쳐다봤다. 얼굴을 온전히 가린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그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나는 그의 눈짓에 움찔하며, 굽혔던 허리를 폈다. 다시 물어볼까도 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좀 더 그의 대답을 기다릴 요량으로 2분가량을 서 있었지만, 그 사내의 입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다시 발길을 돌려, 몇 발짝 걸었는데 느닷없이 등 뒤에서 큰 목소리가 들렸다.
“진리” 그 사내의 목소리였다. 처음 듣는 그의 목소리는 그의 작은 몸집에 비해 크고 우렁찼다. 나는 다시 그에게 돌아가 물었다.
“어르신 뭐라고요?”
그가 답했다.
“진리”
나는 그의 대답을 바로 이해하지 못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물었다.
“어르신,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인가요? 진리라뇨?”
내 물음이 채 끝나가기도 전에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내게 향했다. 그리고 그의 얕은 신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다시 어울리지 않는 묵직한 저음으로 답했다.
“빛은 길을 밝히는 진리”
나는 아리송한 그의 대답에 큰 벽을 느끼곤 정말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다시 카페로 돌아온다는 대충 의자에 앉아 통창 너머 그를 바라왔다. 역시나 미동도 없이 손전등을 비추고 있다. 그가 말한 진리가 무엇인가? 그는 결국 자신이 손전등을 들고 있는 이유인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아마, 그조차 모르는 듯했다. 그럼에도 확실한 건 그의 향기가 이제는 멀리 떨어진 이곳 카페까지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