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XX년 XX월 XX일 GOP 어느 소초, 그날의 시작도 여느 때와 같이 평화로웠다. 오전 4시 30분 새벽근무 중인 상황병이 취사병A를 조용히 깨웠다. 취사병은 눈을 비비며 일어나, 취사장 불을 켜고선 같이 취사장을 쓸고 닦은 뒤, 전일 저녁 근무자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버리기 위해 취사장 바로 밑의 언덕 아래에 있는 음식물 처리장으로 내려가 음식물 처리를 하였다. 어김없이 오늘도 멧돼지 가족은 개방된 음식물 처리장의 짬을 먹기위해 취사병A가 언제가나 눈치를 보고 있다.
눈치보는 멧돼지를 위해 얼른 자리를 비운 취사병A는 언던의 계단을 오르다 기분좋은 따듯한 바람과 마주했다. 봄이 옴을 알리는 바람이다. 따듯한 바람에 취해 담배한대 물고는 산세의 경관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한번 하곤 담배를 버리고 취사장으로 복귀했다.
당시 GOP 소초의 경우 식수인원 60명당 1명의 취사병이 배정받았고, 취사병A가 속한 소초는 식수인원이 딱 60명이라 취사병은 취사병A 뿐이 없었고, 누구의 간섭 없이 홀로 일을 했기 때문에 선⦁후임과의 교류가 적었지만 그만큼 쾌적한 내무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기 때문에 불만은 없었다. 그렇다고 취사병A가 완전히 왕따처럼 생활하지는 않았다. 취사병 A가 속한 본부소대원들 중 그와 업무교류를 해야하는 인원들과는 친했다. 그리고 그중 가장친했던 전투분대장(하사)은 휴가 복귀 때마다 팩소주를 몰래 가방에 숨겨와 취사병A가 만든 안주를 먹으며 회포를 풀고는 했다. 그래서 취사병A는 전투분대장이 휴가에 돌아오는 날이면 보급 식재료를 다 쓰지 않고 일부는 냉동고에 숨겨두었다.
보급식재료는 월/수/금에 오후 12시에 본부에서 직접 추진했는데, 본부에서 정해준 ‘일일메뉴표’를 토대로 식재료를 공급받았다. 화요일 점심에 감자국이 나오면, 월요일에 감자가 잔뜩 보급되는 그런 시스템이다. 여기서 중요한건 보급오는 날의 오후 12시 이전에는 냉장고에 아무것도 남지 말아야한다는 것이다. 만약, 보급 전 식재료가 남아있다가 걸리기라도 하면 영창도 감수해야 했다.
그날은 전투분대장의 휴가 복귀 날이었다. 이번에는 양주를 들고 오겠다는 전투분대장의 말을 떠올리며, 지난 월요일에 보급 온 삼겹살 30Kg(제육볶음 메뉴) 중 ‘삼겹살 3~4Kg(삼겹살이 한 줄씩 겹겹이 쌓아 그대로 얼려있는 상태로 그 자체로만 보면 네모난 덩어리 처럼 보인다)’를 몰래 냉동고에 고이 모셔놓았었다. 취사병이 사용하는 냉장고는 개방되어있기는 하지만, 함부로 문을 열지 못하도록 ‘시건장치(자물쇠)’를 해놓기 때문에 사실 취사병A가 양심선언을 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냉장고에 뭐가 남아있는지 확인이 불가능했다.
아침 7시 30분, 취사병A는 식사준비를 마치고 소대원들이 식사하기를 기대리면 취사장 마무리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상황병A가 다급하게 취사장에 들어왔다.
“A 일병님, 원래는 부소대장님(중사)이 맞이해야하는데, 지금 근무나가셔서, A일병님 께서 직접 맞이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알았어. 여기 마무리만 하고 금방 갈게”
취사병A는 당장 청소중인 취사장의 호스의 물을 끄고는 재빨리 냉장고로 뛰어가, 몰래 숨겨둔 ‘삼겹살 덩어리’를 취사장 언덕 아래 음식물 쓰레기장으로 던졌다. 만약, 오늘 냉장고에 삼겹살이 남아있다는 것이 사단에 발각된다면 이것은 취사병A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취사병A는 그때부터 등에 식음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비록 버기리는 하였지만, 취사장 아래까지 내려가서 그들이 멀쩡한 삼겹살이 음식물 쓰레기 통에 있다는 것을 보기라도 한다면 더 최악의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취사병A는 멧돼지가족이 삼겹살을 빨리 먹기를 기도했다.
취사병A는 이미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음을 알고, 상황실로 뛰어갔다. 그 곳에는 상황병A가 언급한 급양관들 말고도 몇 명의 간부들이 더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취사관리병 일병 A(관등성명), 사단 급양관님께서 찾으신다고 하셔서 왔습니다”
“어 그래, 니가 취사병이구나, 여기 취사장도 구경 좀 하자”
“네 알겠습니다”
취사병A와 사단 급양관을 필두로, 8명 정도의 인원이 취사장 순찰을 시작하였다. 사단 급양관의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도, ‘제발 짬통만은’ 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런와중에도 취사병A는 급양관의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을 이어갔다. 그리고 무리에 있던 중대 행정보급관(취사병 A의 실질적 직속상관)을 흡족하게 하였고, 중대 행정보급관도 취사병A를 도와 이것저것 같이 설명하면서 사단급양관의 순찰을 무사히 마치는 것 처럼 보였다. 그런데. 사단 급양관이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