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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거리 소설가 Aug 31. 2023

<단편소설> 6-2반 학급회의(完)

 금요일 마지막 교시, 소란스럽던 6-2반의 교실이 조용해진다. 평소와 다르게 아이들의 진지한 기운이 교실을 감쌌다. 담임선생 태수는 아이들에게 회의 대형으로 교실을 재배치하라고 지시했다.      


 “자! 지금부터 회의 대형으로 변경하세요. 지금부터 8월 4주차 학급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태수가 담임으로 있는 6-2반은 매주 금요일 마지막 시간에 학급회의를 진행한다. 담임은 일절 참여하지 않고, 반장과 부반장 그리고 각 부서장들이 주체가 되어, 지난 일주일간의 과오나 학급의 이슈 등을 처리하는 시간이다. 대체로, 즉석에서 반 아이들이 의제를 올리고, 간부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업무를 처리해준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매달 청소일정을 계획하는 미화부장 ‘영수’가 몇몇 아이들에게 뒷돈을 받고, 고의적으로 청소일정에서 제외시켰다는 이슈가 지난주에 발생했기 때문이다.      


 물론, 담임선생 태수가 미화부장을 불러 혼을 내고, 잘 못을 바로 잡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태수는 학교도 작은 사회이고, 그 주체는 학생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들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바랐다.  

    

 반장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위치의 의장석에 앉았고, 그 옆에 부반장이 앉았다. 그리고 그 뒤에는 각 부장들이 앉아있다. 각 부장들은 각각, 품위유지 부장, 오락부장, 교육부장, 미화부장 4명이며, 이 중 오늘 회의의 핵심사안으로 지목된 ‘미화부장’은 법원처럼, 아이들의 공간과 의장석 중간에 덜렁 앉아있었다. 


 무거운 기운을 깨고, 반장이 입을 열었다.     


 “2023년 08월 4째 주, 학급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금일 회의는 다른 날과 다르게 따로 급우들의 의견을 받지 않고 진행될 예정이며, 최근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과 관련하여, 관려자를 처벌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는데 주력 하겠습니다”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몇몇 학교일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은 미화부장의 비리에 대해 알지 못했다. 반장은 웅성거리는 아이들에게 조용해줄 것을 당부하고, 부반장에게 사건 설명을 부탁했다.      


 “네, 부반장입니다. 이번 ‘미화부장 뒷돈 수수 사건’의 개요를 간략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부반장이 헛기침을 하고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저번 주, 학급회의가 끝나고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미화부장이 2022년 00월 00일 A학생에게 현금 30,000원 / 2022년 00월 00일 B학생에게 현금 20,000원 / 2022년 00월 00일 A학생에게 현금 40,000원을 수수하는 등 A와 B학생은 최소 10차례에 걸쳐 미화부장에게 현금을 제공하고, 미화부장은 각 A와 B학생의 청소 순번을 임의로 조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익명의 제보자에 따르면 A와 B 두 학생은 지난 5월부터 현재까지 단 한 차례의 청소도 하지 않았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이상 이 사건의 개요였습니다.”

 “네, 부반장님 설명 감사합니다. 관련해서 앞에 계신 미화부장님은 하실 말씀 없으신가요?”

 “네, 미화부장입니다. 그런 일 없습니다.”


 미화부장은 단 몇 마디로 모든 의혹을 일축했다. 그러자, 반장 뒤에 위치하고 있던 교육부장이 입을 열었다.      

 “미화부장님, 그게 말이 됩니까? 저렇게 구체적인 증거까지 나왔는데 지금 그런 일이 없었다고요?”


 미화부장이 교육부장을 노려보며 이야기했다.      

 “증거 있습니까? 말뿐이지 않습니까? 누군가 절 음해하려는 세력의 모함입니다.”


 교육부장은 기가 차다는 듯이 혀끝을 차고는 A학생과 B학생을 노려보며 이야기했다. 

     

 “지금 여기서 처음 들려드리는 이야기이지만, A학생과 B학생은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과학경시대회 글라이더 부문 반대표 선발 시, 이 사건과 마찬가지로 A학생과 B학생은 저에게 접근하여 현금을 줄 테니 자신들을 대표로 선발해달라고 했습니다. 물론 저는 단칼에 거절했지만, 저 들은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본 교육부장은 이 작금의 사태에 대해서 통감하며, 저 들에게 합당한 벌을 내릴 것을 반장님 및 부반장 그리고 각 부장님들에게 간곡히 청합니다.”


 교육부장의 폭탄발언에 다시 장내가 술렁였다. 반장은 의사봉을 두드리며, 조용히 할 것을 요청했다.      


 “지금 많이 소란스럽습니다. 일정 이상 소란을 피우는 학우분들은 퇴정조치 할 예정입니다. 오락부장님은 소란 스러운 상황이 발생하면 직접 학우들을 교실 밖으로 내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예, 알겠습니다”


 반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선, 오늘 사건의 핵심은 돈을 준 사람들이 문제가 아니라, 미화부장이 저 들에게 돈을 수수했느냐가 핵심사항입니다. 그리고 확인도 안 된 상태에서 교육부장님의 말만 믿고 A와 B학우에게 벌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그 사실은 여기 계신 간부님들도 공감하실 겁니다. 그리고 교육 부장님은 다시는 이런 식으로 확인도 안 된 사항을 사실인냥 이야기 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교육부장은 반장의 질타에 잠시 당황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교육부장을 뒤로하고 반장은 회의를 계속 이어갔다.      


 “자 그럼, 처음으로 돌아와서 우리 미화부장님은 그런 사실이 없다는 것이지요?”

 “미화부장입니다. 네, 그런 사실 없습니다.”


 반장이 의사봉을 두 번 두드렸다.      


 “이제부터 판결 내리겠습니다. 본 사건은 익명의 제보로 시작되어, 미화부장이 돈을 직접적으로 수수했는지에 대한 증거가 없는 점, 미화부장이 많이 억울해 하는 점 등을 미뤄 기각 시키도록......”

 “잠깐!”     


 반장이 미화부장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그 순간, 학생들 사이에서 누군가 손을 들고 큰 소리로 ‘잠깐’을 외치며 일어섰다.     


 “참.. 그래도 회의시간에 사건이 다뤄지면 좀 더 깨끗하게 처리될 줄 알았는데, 역시 보통 썩은게 아니구만”


 모든 아이들이 손을 들고 일어난 경수를 쳐다봤다. 경수는 그런 학생들의 시선을 뒤로한 채, 의장석까지 나와 자신의 핸드폰을 반장 앞에 두었다. 반장은 당황스러운지 경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이게 지금 뭐하는 짓 입니까? 오락부장 경수 학생을 내 쫒으세요.”


 오락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경수의 핸드폰에서는 A와 B가 담배를 피며 나눈 대화 내용이 흘러나왔다.      


(녹취록)

 - 야, 라이터 좀 줘바. 

 - 여깄어. 이번에도 우리 화장실 청소 빠져있더라. 영수는 일을 참 잘해, 애들 눈치 못채게

 - 그러니까 말이야. 우리는 졸업할 때 까지 청소할 일은 없을 것 같더라, 미화부장 하나는 잘 뽑았다니까. 근데 교육부장 그 세끼는 왜 그러냐? 지 혼자 성인 군자야 그냥

 - 그 세끼 말도마 짜증나 죽겠어 걔 얼굴만 보면,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까?

 - 야, 이 형님이 다 준비 했지. 

 - 오, 어떻게?

 - 여자애 하나 섭외했어, 성추행으로 보내버릴라고

 - (둘의 웃음 소리)

 - 근데, 너 오락부장 어떻게 할 꺼야?

 - 아, 오락? 덩치만 큼 머슴 세끼, 처음에는 미화부장이랑 우리랑 연결해줘서 고마웠는데, 지가 이제 우리랑 맞먹으려고 하더라? 일단, 교육부장 제끼고, 오락부장이 더 나대면 그 때 생각하지 뭐     


 녹음내용이 끝나자 모두가 조용해 졌다. 반장도 더 이상 경수에게 나가라고 윽박지르지 못했다. 그 때, 경수는 웃으며 이야기를 했다.      


 “방금 들은 내용은 제가 3주 전 화장실에서 들은 내용을 녹음 한 겁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들을 내용은 이번 주 수요일에 같은 곳에서 들은 내용입니다. 재밌게 감상하세요.”    

 

 (녹취록)

- 야, 저 번주에 우리 어떤 미친놈한테 찔린거 어떻하지? 이번 회의 때 그 내용으로 회의한 다 던데 망했다

- 걱정마, 이 형님이 알아서 다 해놨다. 어제 반장이랑 부반장 만나서 10만 원씩 찔러줬고, 오락부장이야 공범인데 알아서 닥치고 있겠지. 

- 품위유지부장이랑 교욱부장은 어떻하지?

- 품위유지부장은 나랑 제일 친해, 내가 찔린 것도 걔가 알려줬어. 그리고 교육부장은 반장 선에서 정리된다. 걱정말어

- 개 짜증나네 진짜, 고작 청소 몇 번 안 한 걸로 귀찮게 됐네

- 우리가 잘 못 한 게 아니야. 우린 장차 큰 일을 할 사람들인데 우리한테 청소를 시키려는 분위기가 잘 못 된 거지. 나는 집에서 내방도 청소를 안 하는데 학교 화장실 청소는 개뿔

- (둘의 웃음 소리)

- 야 이제 가자, 곧 쉬는 시간 끝나겠다. 그리고 나 페브리즈 좀 뿌려줘, 담배 냄새 많이 날 거 같은데.   


경수가 핸드폰을 챙겨 주머니에 넣으며 이야기했다.

  

 “자 여기까지 가 녹음 내용입니다. 우리 반의 추악한 뒷 세계가 제 녹음으로 밝혀졌습니다. 저는 여기서 저기 범죄석에 앉아있는 미화부장을 비롯하여, 교육부장을 제외한 간부의 교체 및 학급 질서를 추악한 돈으로 어지럽힌 간부들과 A학생 그리고 B학생이 학기가 끝날 때까지 청소를 하는 것에 대해, 우리 학우들 및 담임선생님에게 건의드립니다.”


 경수의 녹취록으로 인해, 분위기는 삽시간에 뜨거워졌고, 담임 태수도 더 이상은 아이들끼리만의 일로 치부하면 안 된다고 판단하여 입을 땠다.      


 “경수, 제보는 고맙다. 반장, 의사봉 내게 가지고 와요”


반장은 힘 없이 의사봉을 담임 태수에게 건냈다.   

   

 “오늘 회의는 아주 충격이었습니다. 단순히 뇌물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범죄입니다. 저는 경수학생의 이야기를 듣고, 교육부장을 제외한 간부들의 자생으로 학급이 온전히 유지되기 힘들 것 같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오늘부로, 반장, 부반장, 품위유지부장, 미화부장, 오락부장은 그 직을 즉시 해임하고, 녹취록에 당사자인 A와 B학생과 함께 한 달동안 화장실 및 교실 청소를 명령합니다”     


 담임 태수의 몇 마디에 모든 상황이 삽시간에 정리됐다. 그리고 교육부장이 반장이 다시 뽑힐 때 까지 임시의장을 맡기로 했다. 모든 아이들은 현 간부들을 비난하며, A와 B도 눈물로 사과했다. 


그렇게 새로운 해가 뜰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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