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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출내기 Nov 05. 2024

해롭지 않은 사람

늘 나를 당혹스럽게 했던 질문은 장래희망에 대한 것이었다.  새 학기를 맞이해서 처음 보는 학우들 앞에서나, 인적사항을 적는 설문지 안에서나 늘 그 질문은 나를 괴롭게 했다.  또 다른 말로 어딘가에서는 꿈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비전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소명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야망이라고도 했다. 그것을 뭐라고 부르든 간에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늘 우물쭈물 갈 곳을 모르고 어색했다.

장래희망이 없다면 이상한 것일까? 꿈이 없다면 잘못된 것일까? 어느덧 시간이 흘러 마흔을 넘고, 또 몇 해 더 넘기고 나니 비로소 내가 지내왔던 삶의 흔적들이 내가 바랬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비로소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다.


아침부터 얼토당토않는 이메일들이 가득하다. 일을 하라고 시켰으면 이에 응당 필요한 사람과 지원을 해주는 것이 당연한데, 그 누구보다도 일을 하기 싫은 내가 앞장서서 설득하고, 애쓰고, 떼써야만 간신히 톱니바퀴 하나가 돌아간다. 사방에서는 내가 제일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고, 내 문제가 제일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수백 번을 더 설명했는데, 그 고객은 또다시 아무것도 몰랐다는 듯이 똑같은 질문을 보내온다. 자칫 정신줄을 내려놓으면 나의 말과 글에서 독이 뿜어져 나온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지.


해롭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은 정말로 고되고 힘든 일이다. 꿈은 이로운 사람이 되기 위한 것이고, 우리는 때때로 이로운 사람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그 이로움이 널리 널리 펴져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정말 그 이로움을 보고 있노라면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하지만 해롭지 않은 사람이 된다는 건, 내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해로운 사람이라서, 그 자연스러움을 순간순간마다 극복해 나가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른 분의 글을 통해서 "세상에서 무해한 것"이라는 글귀를 발견했다. 너무도 공감 가는 말이다. 그렇게 장래희망도 꿈도 없이 살았는데, 어느새 너무 커져 버린 나의 세계다. 내가 만들어 버린 그 세계 속에서 내가 해롭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 어르신들의 사진첩에 붉은 저녁노을과 이름 모를 들꽃과 푸른 하늘이 가득한 건 그런 해롭지 않은 아름다움이 희귀하고 또 대견하다는 걸 아시기 때문이 아닐까.

해롭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 이제야 발견한 장래희망이다. 이제 그 누구도 묻지 않는 질문이고, 억지로 대답해 줄 필요가 없지만, 아 그래도 내가 애써왔던 것이 이것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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