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며 병원 갈 일이 잦다.
두 아들 녀석이 번갈아 열이 나고, 기침 콧물도 마를 날이 없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나면 좀 나아질까 했는데, 요즘은 주위 아이 가진 부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중학교, 고등학교를 가도 감기가 주춤하지 않는 모양이다.
"OO님 1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보호자님도 같이"
한참을 기다린 끝에 간호사가 아이의 이름을 호명했다. 나를 바라보며 '보호자도 같이'라는 말과 함께.
보호자라는 말에 나는 불현듯 얼마 전 한의원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예기치 않은 교통사고로 나는 한의원을 다녔었다.
뒷목과 어깨 컨디션이 사고 후유증으로 도무지 깔끔하지가 않아서.
어릴 적 내가 할머니를 따라갔었던 한의원은 한약냄새가 빼곡히 배인 대기실에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낡은 나무의자에 앉아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면, 누런색 빛바랜 차트를 들고 나온 간호사는 어르신들의 이름을 호명하고 어르신들은 적당히 삐걱거리는 나무바닥을 걸어 들어가 안경을 코끝까지 내려쓴 한의사 선생님에게 침을 맞고 뜸을 뜨던 모습으로 기억되어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어르신들 뿐만 아니라, 갓난아기를 안고 온 엄마, 허리가 아픈 학생, 다리를 다친 아주머니까지 대기실에 손님의 나이도 방문이유도 다양해졌다.
"김 OO님~ 김 OO님~ "
옛 기억에 머물던 간호사보다 젊은 직원이 순서가 됐는지, 하얀색 차트를 들고 나와 누군가의 이름을 호명했다. 세 번째, 이름이 호명되자 소파 끝에서 졸고 계시던 할머니가 겨우 고개를 들었다.
"응~ 내 여기 있다."
대답을 하시고는 천천히 지팡이를 오른쪽으로 끌어당겨 세우시더니, 지팡이를 짚은 손에 힘을 줘 엉덩이를 들어 올리셨지만, 이내 다시 의자에 주저앉으셨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이번엔 좀 더 강한 힘을 들여 지팡이를 짚으시는지 지팡이는 미세한 진동을 일으키며 있는 힘껏 지팡이를 밀어 엉덩이를 들어 올리려 노력했으나, 이내 다시 엉덩이는 방아를 짓든 되돌아 소파에 안착됐다.
지켜보고 있던 나는 두 번째도 일어나지 못하시자. '도와드려야 하나?' 하며 엉덩이가 들썩이던 그때 세 번째 도전에서야 할머니는 지팡이에 몸을 지탱에 일어서기에 성공하셨다. 그리고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한의원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 셨다.
"잠깐 화장실 다녀온 다는 게 지금 딱 들어가시네."
할머니의 딸인 것 같은 분이 얼른 달려와 걸어가고 있는 할머니를 부축하셨다.
"어르신은 보호자분이 옆에 계속 계셔야겠는데요"
차트를 든 직원은 보호자에게 말을 건네며, 겨우 일어선 할머니를 부축하며 한의원 안으로 들어서셨다.
'보호자'.
나는 '보호자.'란 단어가 언제부터 익숙해졌을까?
아마도, 아이를 낳고 난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당연한 아이들의 보호자였다. 그 단어에 한 번도 이질감을 느끼거나, 부적절하다거나, 이상하게 느껴본 적이 없다. 허나, 내가 만약 부모님의 보호자가 된다면, 그때는 감회가 새로울 듯싶다.
이제는 집으로 배송되거나, 문자로 알려진 공문들의 뜻을 이해하거나 처리하기가 조금씩 힘들어지고, 몸의 이곳저곳이 불편해 수술을 하거나, 병원을 방문할 때도 나는 부모님의 보호자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보호자가 필요한 시기가 올 것이다.
지금은 소파에서 한 번에 벌떡 일어서는 게 당연하지만, 그것이 힘든 어르신의 시기가 나에게도 분명 다가올 테니까.
한 번에 일어서지 못하셨던 그 어르신도 예전엔 누군가의 보호자였을 텐데...
나이 들어감은
어린 왕자의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모양처럼
혹은 봉긋 솟아오른 경주의 높다란 고분모양처럼
발전하는 시간이 있으면 언젠가는 퇴화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삶의 인생 그래프인 것을.
어느 순간은 아기처럼 누군가의 손길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삶은 살아야 할 텐데.
누군가에게 의존하여 살기는 마찬가지지만,
유아보다 노년이 더욱더 슬픈 건.
이미, 자유로운 삶을 맞본 후이기 때문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