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을 살고 있나요?

혹시, 컵커피 같은 삶을 살고 있을 누군가에게

by 발돋움

똑같은 컵을 스무 단씩 쌓아 기계 투입구로 밀어 넣는다.

컵은 일정한 속도로 한 개씩 레일 바닥으로 떨어지고,

떨어진 컵에 공기를 불어넣어 먼지를 떨어낸 후

정해진 용량으로 내용물을 참방거리게 담아낸다.

내용물을 그득 실은 컵은 오른쪽 레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레일을 지나가면 리드가 내려와 컵의 동그란 입구 부분을 밀착하여

내용물을 밀봉하고, 플라스틱 컵뚜껑이 톡 떨어져 내리면

적절한 압력의 프레스기가 컵뚜껑을 살짝 밀어 딸깍 고정시킨다.


그렇게 만들어진 컵은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이동하며 5개가 줄을 서면

레일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다시 5개가 줄을 서게 만들고

2줄로 나눠진 10개의 컵은 하늘에서 드리워진 집게발이 10개를 동시에

압력으로 집어 들어 10개 들이 상자 안에 안착시킨다.

상자는 다시 2단으로 쌓이고 쭉 미끄러지며 2단 상자가 4줄을 서면

또다시 로봇 집게발이 집어 들어 파렛트 위에 정육면체 집을 짓듯 맞춰진

프로그램대로 쌓아 올린다.


그러다, 컵이 쓰러지거나, 밀봉이 잘못되거나,

컵뚜껑이 정확히 안착되지 않거나, 상자를 부착시키던 글루건이 떨어져 집게발이 들어 올리다 컵상자가 와르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면...

생산되던 모든 라인은 스탑 되며,

똑같이 생긴 컵들은 돌고 있는 레일 위를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우두커니 멈춰 선다.


이제껏 등 떠밀려 움직이던 삶이라, 물 흐르듯 만들어진 길 따라 움직이던 몸이라.

내 생각이 필요하지도, 누군가가 굳이 그들의 생각을 캐묻지도 않았던 컵들이었다.

다른 이의 생각대로 움직이던 수동적인 삶에서 작동명령의 부재는 그들을

어디로 가야 할지, 무얼 해야 할지 알지 못하게 만든 체 그 자리에서 굳어지게 만들었다.


삶에 빨간등이 켜지며 브레이크가 걸렸다면,

다시 나를 돌아볼 절호의 찬스가 도래한 것이다.

그동안 내가 움직이는 레일 위에 우두커니 서서 정해진 속도대로 달리고 다른이의 생각이 만든 프레스가 미는 방향대로 움직이고 있었는지, 내가 생각한 방향대로 숨을 헐떡이며 달리고 있었는지.


내 삶의 주인은 늘 나여야 함은 변함없는 진리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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