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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돋움 May 08. 2023

마음의 편지

오래된 상처를 치유하는 친구의 편지.

80년 생인 나는 고등학교 때 즈음 개인용 통신기기로 처음 삐삐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전엔 집전화로 전화를 거는 것 외에 직접적으로 개인에게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매체는 편지가 전부였다.


그 시절 여자고등학교였던 우리 반 아이들과 옆남학교 간에 쉬는 시간 쪽지에 편지를 써서 야간자율학습시간에 주선자들이 쪽지를 교환해 주는 '쪽팅'이 인기였다. 얼굴도 모르는 아이들끼리 편지를 서로 주고받고, 서로에 대해 상상하고, 설레며, 편지 사이 작은 선물로 껌이나 사탕 같은 것들을 끼워 서로 교환하곤 했다. 그때는 그 작은 쪽지가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학습에 대한 피로를 달래주는 작은 설렘이었고, 공부에 대한 중압감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던 활력소 이기도 했다.


그 당시 편지는 이성뿐만 아니라, 친구, 선후배, 선생님과 제자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메신저 역할을 넘어 오롯한 학창 시절의 나이기도 했다. 


"이거 가져가서 정리해라 다 니 거다"

3일 연휴 어버이날을 맞아 미리 찾은 친정에서 엄마는 먼지가 뽀얗게 쌓인 커다란 쇼핑백을 내밀었다.

'허걱'

커다란 쇼핑백 안에는 족히 300통은 되어 보이는 무수히 많은 편지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이게 다 내 거라고?"

"너 편지 많이 썼잖아. 다 니 거야."


커다란 쇼핑백을 추억을 끌어안듯 가슴에 안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베란다 책상 위에 편지들을 쏟아부었다.


국민학교땐 자매 맺은 학교 아이들과 주고받았던 편지가 대부분이었고, 중고등학교 땐 반아이들과 교실에서 혹은 방학기간 동안 집에서 집으로 편지를 보내 서로 안부를 묻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던 편지들이었다.


편지를 정리하던 중 유독 눈에 띄는 이름하나가 있었다.

중학교 시절을 통째로 트라우마로 만들 만큼, 나에게 많은 심리적 부담과 스트레스를 주었던 A.

나를 친한 무리에서 선을 그어 철저히 바깥으로 밀쳐냈던 'A'에게서 받은 편지가 스무 통 정도였다.


시기별로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날 무렵 나는 A가 보낸 편지들만을 모아 글자 하나하나 눈으로 꾹꾹 눌러 편지 쓰듯 빠지지 않고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그 아이는 왜 나에게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나는 왜 그런 일을 겪어야만 했었는지. 지금이라도 그 아이를 이해하고 싶었고, 그래서 나는 조금이라도 편해져야만 했다. 한통. 두통. 편지를 읽어 내려가며 나의 고개는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뭐지?' 

내가 생각하던 A가 편지를 쓴 사람이 맞긴 한 걸까? 아니, 내가 생각했던 A가 A가 맞긴 한 걸까?


편지의 내용은 아무리 찾아봐도 온통 나에 대한 관심, 걱정, 친구에 대한 사랑뿐이었다.

글을 쓴 이 아이가 나를 완전히 없는 사람 취급하며, 친구들 사이에서 배제시켜 버린 냉정한 아이였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스무 통의 편지를 다 읽고. 골똘한 생각에 빠져 있던 나는 TV를 보며 세상 떠나갈 듯 웃어대는 두 아들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깨달았다.


나는 그때 중학생이었고, A 또한 그러했다.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를 보며 하루에도 수십 번 자지러지게 웃어대며 세상 재밌어하다 모든 것을 다 잃은 듯 우울해하는 모습을 보며 대체 누굴 닮았는지 이해할 수 없어했는데. 나 또한 그 시절 질풍노도의 시기를 걸었던 중학생이었던 것이다. 


친구를 독차지하고 싶을 만큼 좋지만, 그만큼 미워질 수도 있는 시기.

어쩌면 저렇게 잘할 수 있을까?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상대방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시기.

내 것으로 다 가질 수 없다면, 그냥 처음부터 관심조차 없던 존재로 만들어 버려야 했던

양가감정. 그 혼란스러움이 당연했던 사춘기의 나와 A였다.


나 또한 충분히 누군가에게 무심히 고통을 주고받을 수 있었던 그때 그 시기. 

그런 시기의 상처를 지금까지 지루하게 끌어안고 살아온 나 자신이 긴 한숨과 함께 순간 공허했다.


어쩌면, 

나는 내가 살면서 겪어야 했던 모든 불행과 분노, 서운함의 대상으로 A를 낙점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A는 철저히 내 모든 고통의 원흉이 되어야 했으므로 해마다 살을 덧붙여 가며 더욱더 나쁜 아이가 되어야 만 했고, 힘들 때마다 내 감정들을 쏟아부을 쓰레기통처럼 숨겨뒀다 필요한 순간엔 꺼내 들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해묵은 먼지를 털어내 듯. 

그렇게 조금 가벼워진 마음으로 

과거 나에게 상처를 줬던 중학생 A에게

쿨하게 이해한다는 듯 멋적게 웃음 짓는 중학생인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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