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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돋움 Oct 27. 2022

나에게 특별한 컵라면.

나에게 준 최초의 선물.

첫째가 중2가 되면서 시험 전쟁이 시작됐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받아쓰기를 시작으로 지금까지도 시험을 늘 보며 살아왔지만, 처음 겪는 결과의 점수화와 사회의 서열화 대열이 많이 부담스러운 모양인지, 머리도 아프고, 어깨도 결려오고, 피곤함도 더한 모양이다. 내일이 마지막 시험이라 고생한 녀석에게 뭔가 선물을 해주고 싶어 졌다.


"내일 아침 뭐 먹을래? 맛있는 거 만들어 놓을까? "

첫째한테 물었는데, 둘째까지, 똑같은 대답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다.


"엄마, 나 컵라면!"

"라면이 그렇게 맛있냐?"

"당연하지. 라면은 맨날 먹어도 좋아."


요즘 체중이 자꾸 불어나는 아이들을 생각해서 이기도 하고, 또, 워킹맘의 자격지심이랄까? 성의 없는 음식을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에게 많이 먹이고 싶지 않아, 라면은 1주일에 1번으로 제한했었다.


'라면 맛있지...'

라면은 나도 참 많이 좋아했었다. 그것도 컵라면.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나는 공부에 매달렸다.

공부 효율이 올라 좋은 성적이 척척 나와서가 아니라. 할 수 있는 게 앉아서 공부하는 것 밖에 없어서.

중학교 때 친했던 친구들에게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나서부터, 나는 인간관계가 무서워졌다.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도 없었고, 그런 사이가 될 만큼 다가갈 수도 없었다. 그런 내가 학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책상에 지루하게 앉아 있는 것뿐. 책상에 앉아 있는 게 괴롭다는 것조차 들키기 싫어 나는 또 열심히 공부하는 척을 했었다. 중학교 동기에게 지난 일을 이야기하며 그때 많이 괴롭고 외로웠다고 이야기하자 그 친구는 내가 혼자 있는 게 편해 보였다고 했다. 그 당시 나의 가면은 나름 철저했던 모양이다.


나는 그때 고생하고, 힘들었던 나에게 선물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평소에 용돈을 모아, 시험기간에 밤을 새우며 공부를 할 때에 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컵라면을 먹었다. 그때 컵라면은 힘들고, 외롭고, 괴로웠던 나의 삶의 유일한 낙이었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모두 잠든 방안 책상에서 뜨거운 물을 끓여 부은 컵라면을 기다리며 책상 스탠드 불빛 아래 앉아 기다리던 3분은 늘 설레었고, 먹는 5분은 더 없는 행복이었다.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하루 종일 허했던 마음속까지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그 당시 컵라면은 나에게 컵라면 이상의 의미였다.


그래서, 나도 오늘 고생한 녀석들을 위해 컵라면을 내일 아침 특식으로 주기로 결정했다.

"먹고 싶은 걸로 골라라. 엄마가 내일 뜨거운 물은 준비해 줄게"


어쩌면...

나처럼...

아이들도 컵라면에게서 단순한 음식 이상의 무언가를 얻고 있을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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