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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돋움 Aug 24. 2023

쓸쓸한 죽음 고독사. [무브 투 헤븐]

넷플렉스 드라마를 본 후

오늘도 어김없이 이른 출근 후 집에서 내려온 커피텀블러 뚜껑을 열고 책상에서 신문을 펼쳐 들었다.


요즘 같은 정보의 홍수시대에 고급정보는 언제든지 손가락 터치 만으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종이 신문을 즐겨 본다. 물론, 회사에서 받아보는 신문이라 지역사회 관계망 안에서 차마 끊어 내지 못하고 지지부진하게 소비되고 있는 통신비 항목 중 하나에 불과해 회사로 배달되어 온 즉시 쓰레기통으로 차곡차곡 재배달되고 있는 녀석을 구해주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종이는 매력이 있다. 신문과 책, 잡지, 하다못해 A4용지까지 다 질감, 특유의 냄새, 베이스 컬러가 다르고, 베이스 컬러에 새겨진 글씨도 컬러에 따라 다 다른 느낌을 준다. 똑같은 인간이라도 황인, 흑인, 백인이 있고 그들마다 다 다른 느낌이 들 듯이. 다채로운데도 궁극적으로 그들은 하나란 것. 그 다양성과 개성적이면서도 결국은 동질적인 모습이 나는 흥미롭다.


[오염수 방류, 북한의 이모저모, 기준금리가 어쩌고 저쩌고, 전국 비가 오락가락...]


앞선 내용들은 헤드라인만 쓱 훑으며 지나가다 결국, '사설'에서 흘러가듯 페이지를 넘기던 나의 시선이 멈춰 섰다.


[고독사 개인 불행 넘어 사회적 질병으로 봐야.]


1인가구 비중이 해마다 증가하면서, 고독사의 발생도 그 증가 추이에 따라 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주변 사람 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혼자 임종을 맞고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 발견되는 죽음, 고독사.

이혼등으로 인한 가족관계 파탄, 1인 가구의 증가, 실직으로 인한 경제적 압박, 고령화 등이 그 증사세를 부추기고 있는 모양새다.

사설을 읽으며 작년에 우연히 접한 넷플렉스 드라마가 떠올랐다. 너무 감명 깊게 보고, 매 순간 나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던 드라마 '무브 투 헤븐: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유품정리사 그루는 갑작스럽게 아버지를 잃고 그의 후견인이자 삼촌인 상구와 함께 세상을 떠난 이들의 마지막 이사를 도우며 그들이 미처 전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남은 이들에게 대신 전달하는 일을 한다. 죽음을 당하거나, 혼자 죽음을 맞이한 후 오랜 시간이 지나고 발견된 이들이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었고, 무슨 선물을 주고 싶어 했을지 아스퍼거 증후군인 그루가 그들을 헤아리며 점점 사람들을 이해하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고독사는 드라마속 소재이거나 나와는 먼거리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직장동료였던 한 직원의 고독사를 기억한다.

알콜리즘으로 회사에 출근할 때 늘 술냄새를 풍기던 말이 없고, 등이 동그랗게 말린 어수룩한 사람.

사람들은 하나같이 백선배를 꺼렸다. 관리자들은 늘 마시는 술을 따라다니며 말릴 수 없어 무슨 사고라도 날까 전전긍긍해 빨리 퇴직하기를 바랐고, 직원들은 개인위생관리가 잘되지 않아 늘 나쁜 냄새를 풍기고, 행동도 굼뜨며, 대화도 잘 되지 않았던 그를 피하기 바빴다.

그런 그가 퇴직하는 날 나를 찾았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나 때문에"


내가 한 고생이랄께 뭐가 있을까? 건강관리실을 찾는 모든 이에게 하듯 나는 불편함을 덜어줄 간단한 약을 주고, 상담을 했고, 현장에서 주저앉거나 다치는 일이 있으면 그가 아니라도 달려가는 게 나의 일이었다.


"아유. 무슨 말씀을. 선배님 퇴직하셔도 건강하십시오. 술은 조금만 드시고."

"네..."


퇴직한다고 삐죽거리며 건강관리실에 방문한 그의 손을 덥석 잡자. 백선배는 눈시울을 붉혔다.


그런 그가 고독사를 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퇴직하고 일주일이 조금 지난 후였다.

회사에서 받은 대출금 상환과 퇴직금 정산 관련으로 회사 회계담당자가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백선배의 침묵이 삼일째 지속되자 이상 신호를 감지한 회계담당자와 담당 관리자가 백선배의 집을 찾아 현관 앞에 들어섰을 땐 푹푹 찌는 여름 날씨로 인해 이미 문 틈새로 악취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고 한다.

백선배와 가족들은 술로 인해 가족관계도 와해되면서, 서로 연락을 끊은 지 오래였다.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접하고도 담담했던 자녀와 배우자도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이미 그들의 삶에서 사라지고 없는 잊힌 사람에 대한 부고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끝까지 지독히 외롭고, 쓸쓸한 것이 고독사인 것 같다.

그의 죽음에 애통해하며 눈물 흘려줄 사람도 없이, 죽고 나서 그를 기억하며 빈소에 술 한잔 부어줄 사람도 없이, 존재 자체가 원래 없었던 사람처럼. 이미 잊힌 사람.


누구나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의 존엄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쓸쓸한 죽음을 혼자 맞이하지 않을 권리. 그것은 정말 이 사회에서 지켜져야 하지 않을까.


오늘 신문 사설 한 구절로 백선배의 기억과 무브 투헤븐의 장면들이 실제로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곳에서 일어나고 그 수가 점점 늘어가는 현실에 가슴언저리가 답답해지고 묵직해져 온다.

이런 일이 더 이상 늘지 않고 줄어드는 것은 '사회적 관계망'을 강화하는 사회의 몫이겠지만, 이 사회는 개개인이 만들어 가는 것이니, 다른 사람보다 내가 먼저 변하는 게 맞을 것이다.


나무가 춤을 추면 바람이 불고

나무가 잠잠하면 바람이 자요

윤동주 [나무] 


바람이 불기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나무가 춤을 춰서 바람을 불러 일으키 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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