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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돋움 Apr 06. 2023

마음속 왕따를 떠나보내며.

밝은 밤을 읽고.

시간이 많이 흘렀다. 

30년은 누구도 짧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그 사이 나는 대학을 다니고, 회사에 취업도 했으며, 남자를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둘을 낳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선 웅크리고 앉아 쏟아냈던 눈물의 횟수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차고 넘친다. 그러니, 어릴 때 겪었던 그런 일쯤은 아무것도 아닌 듯도 싶었다. 일부러 떠올리지 않고선 생각나지 않는 그 일이 마음속 수면 저 깊은 어딘가에 있어 보이지 않으니 이젠 없는 듯도 싶었다.

그러나, 내가 겪었던 그 비슷한 상황이, 가슴을 묵직하게 누르는 느낌이, 그 사무치는 외로움이 어디선가 보이고, 느껴지고, 슬며시 들려올 때면. 나는, 나도 모르게 30년 전. 교실 한 구석에 홀로 앉아 있던 중학교 1학년 어린 시절의 나로 되돌아가 버렸다.

50명에 가까운 아이들로 북적이는 교실 속에 앉아 있지만, 철저히 혼자인 나. 투명인간인 듯. 이방인인 듯. 그렇게 그 무리 속에 박힌 이질적 존재. 그래서 더욱더 돋보였던 나를 나의 어깨는 어딘가로 숨기기 위해 점점 더 굽어져만 갔지만, 나의 자존심은 그런 상황에서도 철저히 짓밟히기 싫어 고개를 더 들어 올렸고, 굳은 표정 속에 외로움과 초조함을 깊숙이 감추었다. 나에게 가장 힘든 일은 대인관계 였다.

늘 민들레 홀씨처럼 바람 부는 데로 이리저리 떠돌며 정착하지 못했던 나를 단단히 뿌리내리게 해 준 사람들이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의 여직원들이었다. 사람들과 친해질 수도 있다. 내 속마음을 말해도 되는 사람이 있다. 내 마음을 다 줘야 상대방도 나에게 다가온다는 것을 대인관계 초보인 나의 인간관계 펜스를 가볍게 허물어 뜨리며 다가와 알려주었다. 그렇게 깊이 있게 절친한 6명의 직장동료들은 나에게 삶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가 되어 주었다.


「 그들은 그저 그녀를 피했다.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다가도 그녀가 다가가면 조용해졌고 도무지 끼워지지 않았다. 그녀가 인사를 하면 고개를 돌렸다. 적극적으로 그녀를 위협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녀는 공격당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상처를 입었다. 그녀는 댓돌에 멍하니 앉아서 마당에 떨어지는 햇빛을 바라보곤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 빠르게 포기하고 체념하는 게 사는 법이라고 가르쳤다. 삶에 무언가를 기대한다고? 그건 사치이기 전에 위험한 일이었다.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어?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같은 의문의 싹을 다 뽑아버리라는 말이었다. 아무 잘못도 없는 나를 왜 때리는 거지? 어떻게 나와 함께 울어줄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거지? 그런 질문을 하는 대신에 이렇게 생각하라고 했다.

오늘 지나가는 길에 맞았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내 남편이 이유도 모르는 병으로 죽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나는 혼자 슬퍼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부정탄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그런 식으로, 일어난 일을 평가하지 말고 저항하지 말고 그래도 받아들이라고 했다. 그게 사는 법이라고. 」

최은영 [밝은 밤] 중 

 

[밝은 밤]은 나 자신을 조금 더 깊이 있게 드려다 보고, 아직도 마음속 어딘가에서 괴로움에 웅크리고 있는 어린 시절의 나에게 다가가 가만히 등을 토닥여 주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자신을 속이고, 부당하고, 슬프고, 외로운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여만 했던 과거 여인들의 삶에 당당히 맞서며 가족보다 더 친밀했던 우정과 치열했던 인생을 함께 버티는 전우애를 보여준 삼천이와 새미의 인생에서 현재 이혼과 어머니와의 불화로 송두리째 자신의 삶이 흔들려 버린 주인공 지연에게까지 자연스럽게 흘러가며 조금씩 회복되어 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사람에게는 사람이 필요했다. 배경과 환경과 많은 고정관념. 관습을 제외시킨 그저 사람. 마음과 마음을 나눌 사람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야, 나로서 오로시 숨을 쉴 수 있다. 내가 모진 말로 나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자해를 일삼지 않고서도 스스로 설 수 있게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인 것이다. 

사람이 그리우면서도 상처받을까 무섭고, 두려웠던 나는 그렇게 조금씩 사람들에게로 걸어가고 있다. 

더 이상은 외로운 게 싫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누군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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