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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돋움 Jun 18. 2023

만두의 의미

퇴근길 마트에 들렀다.

퇴근하기 1시간 전부터 나는 매일매일의 고민거리이자 숙제인 저녁메뉴를 고심한다. 떠오르는 몇 가지 메뉴 중 한 가지를 골라 퇴근길 마트에서 우리 집 냉장고 안에서 숙식 중인 재료 이외 필요한 새로운 룸메이트를 공수해야 한다.


지금은 한참 김치가 맛있게 익었고, 단백질도 보충할 겸 두부김치로 정했다.

양파, 파, 물엿, 굴소스는 집에 있고... 두부만 큼직한 녀석으로 고르면 된다. 초록색 마트 바구니를 집어 들고, 두부코너로 거침없이 성큼성큼 걸어가던 나는 대형 냉동고 앞에 쓰인 안내문구에 나도 모르게 우뚝 섰다.


[고향만두 세일!!]

 

-엄마 만둣국 끓여줘!

초등학교 2~3학년쯤으로 되어 보이는 내가 엄마에게로 달려가 매달린다. 새벽 6시면 집을 나서 1시간 반을 걸어야 도착하는 정미소에서 까대기를 치고 저녁 6시가 넘어 걸어갔던 길을 다시 꼬박 걸어 집에 도착한 엄마를 보자마자 달려가 까만색 몸매자락을 붙잡고 칭얼댄다. 엄마의 몸배 발목 부분은 털어내도 털리지 않고 고스란히 쌓인 쌀겨 가루가 고무 주름 사이사이 누렇게 쌓여 몸배의 발목 부분은 물들이고 있었다. 내가 몸배를 붙잡고 흔들어 댈 때마다 쌀겨 가루는 엄마의 파란색 고무슬리퍼 앞 코부분으로, 양말 뒤꿈치로 떨어지며 사방으로 날렸다.


-와? 와또 만둣국 타령인데? 고마 집에 있는 거나 묵자

 

유난히 하얗다 못해 창백했던 엄마의 얼굴에도 쌀겨가 켜켜이 쌓여 이제는 피부가 되어버렸던 걸까? 누렇고, 거칠어져 눈썹 위로, 눈 아래로, 홀쭉한 볼과 입사이로 길고 쩍쩍 갈라진 주름을 두르고 만두타령인 나를 오래된 소나무 마냥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어렸던 나는, 여섯 식구 밥해먹이고, 농사일도 해놓고, 새벽까지 마당 수돗가에서 빨래해서 널어 말린 후 쪽잠을 자고 다시 새벽 밥 해놓고 일을 나가야 했던 엄마에게 나를 좀 봐달라고, 바빠도 나 좀 알아달라고, 힘들어도 나를 좀 사랑해 달라고 때를 썼다.


-오늘 내 생일인데... 만둣국 끓여줘.


엄마 앞에 서서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 대며 코를 훌쩍이는 나를 보고 엄마는 짧은 한숨을 내 쉬고는 몸배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5천 원을 꺼내 내 손에 쥐어 주었다.


-가서 만두 두 봉지 사 온나. 만둣국 끓여 주께


그때... 나에게 만두는 엄마의 관심이자 사랑이었다.

식구가 많으니 군만두, 찐만두는 꿈도 꿀 수 없어 늘 한솥에 한참 끓여 만두피와 만두소가 따로 놀았던 그 음식을 먹어야만 나는 엄마가 나를 아직도 잊지 않았구나. 사는데 바빠도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하고 안심했던 것 같다.


지금은 누가 '만두 좀 더 드세요~'하며 내 그릇에 만두를 덜어 주려고 해도 '저 만두 안 좋아합니다. 많이 드세요~ '하며 정중히 거절하는 음식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마트 냉동고 앞에서 멈칫하며 어렸던 나를 잠깐 마주한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겨 냉동고를 스쳐 지나갔다. 이제는 만두 없이도 사랑받을 줄 알고, 사랑을 줄 줄도 아는 내가 되었으니까.

나는 오늘 두부만 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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