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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돋움 Aug 17. 2023

아들 낳기 위한 이름.

다른 이름으로 살고 싶었다. 


내 이름은 누가 봐도 아들 동생을 낳기 위해 지어진 이름이었다. 예전엔 그런 경우가 제법 있었다. 딸만 낳은 집안 막내는 꼭지, 말자, 말숙, 말년, 딱 끈이... 이름이 아니면 별명으로 라도 지어 불렀다. 

 

엄마는 아빠가 장남이 아님에도 딸을 연달아 셋이나 낳자 시어머니와 가족들에게 설움을 받았다. 그래서 딸 중 셋째인 나의 이름이 아들을 낳기 위한 재물로 바쳐졌다. 

나는 그렇게 지어진 내 이름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당연히 이쁘지도 않았고, 어감도... 놀리기에 딱 좋은 이름. 당시에도 이쁜 이름을 가진 아이들은 주위에 많았고, 그런 아이들과 확연히 비교되는 내 이름이 불려질 때마다 인상이 찌푸려졌다. 이름은 나를 부르고 있지만, 불려질 때마다 누구든 그 집에 아들하나 점지해 주길 손바닥이 닳도록 빌며 애걸복걸하는 나무 관세음보살이나 주기도문 같은. 주술적인.. 냄새가 나는 그런 이름.  내 이름인데 나는 전혀 안중에도 없는 무심한 이름. 기분이 언짢을 수밖에 없다.


희생량이 된 내 이름을 덕인지, 아들을 낳을 시기가 맞아떨어진 건지, 그도 아니면 나를 부를 때마다 이름 속에 숨은 관세음보살이 삼신할머니의 심금을 울린 것인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내가 태어난 이래 3년 터울의 남동생이 드디어 태어났다. 그렇게 나는 목표를 이루고, 더 이상 쓸모조차 잃은 그 이름으로 30년 동안 불리어지던 어느 날 결심했다.

나를 빛나게 해 줄 이름, 내가 잘되길 염원하는 이름, 내 마음에 쏙 드는 이름, 불릴수록 기분 좋아지는 이름으로 바꾸기로. 원래 누군가의 이름은 온전히 그 사람의 것이어야 하는 게 옮다. 그런 소중한 이름을 너무 방치했다.  진즉 바꿨어야 했다. 


지금부터 13년 전이었지만 개명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법원에 인우보증서, 범죄기록 확인서, 변경 이유를 담은 서식을 제출하면 되었다. 지금은 더 간단해졌다고 한다. 둘째 임신 중 경찰서, 법원을 다니며 서류를 때러 다니면서도 나는 하나도 힘든 줄 모르고 신이 났다. 

내가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이제 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으로 존중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내 맘에 쏙 드는 이쁜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아직 살아온 날보다 개명한 날이 길지 않아 곧곧에 예전 이름의 흔적들이 남아 여전히 개명 사실을 알리며 일일이 이름을 바꿔야 할 일들이 생기고, 중고등학교 친구들에겐 여전히 옛날 이름으로 불려지기도 하지만, 지금 이름에  흡족해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비단을 펼친 듯 아름다운 인생을 살라]

이름은 그 사람이 이름의 뜻대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있다. 성질이 더러워 마음이 비단결로 거듭나길 바라든, 내가 살아가는 삶이 곱디고운 비단카펫이 되든, 나를 위한 깊은 축언이 깃든 내 이름처럼. 나도 그 뜻 그대로 꼭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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