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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돋움 Jul 31. 2023

두발 단속 걸려 본 사람?

"거기. 거기 학생 일루 와 바바"


중학교, 고등학교 입학실 날은 그려려니 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2학년 첫 등교일. 학교입구에서 허리춤까지 오는 튼실한 짝대기를 오른손에 쥐고, 왼손에 탁탁 소리 나게 내리쳐가며 등교하는 학생들을 예의주시 했던 학생 주임 선생이 나를 불러 세웠다.


[너 염색했지?]

[안 했는데요.]


처음 새 학교를 등교하면 으레 있는 일이었다. 엄마를 닮은 라이트 브라운 머리칼은 까만 머리카락을 가진 아이들 사이에서 늘 동동 떠다녔다. 그래서 첫 등교일은 늘 교문에서 걸렸다. 그 일로 생전 학교에 전화 한 통 하지 않는 엄마는 새 학교 등교일만 되면 교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우리 애는 염색하지 않았노라고.

 

눈을 가느다랗게 치켜뜬 그 선생은 학생 주임임에도 참 눈썰미가 없었다. 고등학교 1년 내 같은 머리색으로 등교와 하교를 반복한 나를 수없이 봤을 텐데, 하필 그날 쌩 트집이었다. 모르지. 그날따라 머리가 더 노래 보여는 지도.


[너 염색했네~]

[진짜 안 했는데요.]


수업시간이 간당간당하게 남은 등교시간인데도 학생 주임에겐 수업시간도, 진실도 중요치 않았다.

오직 [네 ~염색했습죠~ 네네~]라는 대답을 기필코 듣고야 말겠다는 똥꼬집으로 무장한 눈알을 부라리며, 음성 메시지 구간반복 버튼을 누른 듯 [너 염색했지?]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담담하게 [안 했는데요]를 또 반복했다.

수업 시작 3분 전.  1학년 담임을 했던 선생님이 출근하시며 나와의 실랑이를 보시고는 학생주임의 어깨를 툭치며 한마디 하고는 종종걸음으로 사라지셨다.


[샘! 걔 머리 원래 노래요.]


1학년 담임의 증언이 있었음에도, 학생 담임은 화장실 갔다가 뒤 안 닦은 듯 찝찝한 표정을 지으며 교무실 쪽으로 몸을 틀어 몇 걸음 걷더니 분이 풀리지 않는지 바닥으로 한숨을 푹 내시고는 뒤돌아서서 짝대기로 하늘을 찔러대며 고암을 쳤다.


[너. 운동장 세 바퀴 돌고 와!]


요즘은 학생 인권이 강조되면서 머리카락을 기르든, 염색을 하든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한 지금과 내가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맸던 중고등학교를 비교하면 격새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 중에서도 트라우마로 남은 기억중 하나는. 

어디서 열이 받았는지 교실에 들어서면서부터 벌게진 얼굴로 씩씩거리던 남선생이 수업 중에 뒤를 돌아보며 이야기했던 반 친구에게 나무로 만들어진 의자를 벽에 던져 못이 숭숭 박힌 몽둥이를 친히 만들어 피멍이 들 때까지 엉덩이며 종아리까지 몽둥이 찜질을 하사했던 기억이다. 그리고 한 말이 더 가관이었다.


[네가 오늘 재수 없었다고 생각해라]


물론 좋은 선생님들도 많았지만, 사실관계나 타당한 이유 따윈 필요치 않았던 그 시절 교단의 채벌은 3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지금까지 잊히지 않고 생생하다. 물론, 지금은 그 반대의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교권이 강력한 무기인양 무턱대고 학생들에게 휘둘렀던 예전도, 교권이 추락하여 학생과 학부모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는 지금도 모두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이 눔에 세상은 중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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