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만 에피소드.
5년 전 친구들과 함께 순천만을 갔을 때의 일이다.
황금물결이 일렁이는 갈대숲사이로 난 구불구불 산책길을 따라 걷다 서다를 반복하며 사진도 찍고, 갈대를 사진에 담아보며 풍경에 취해 탐방로를 걷고 있었다. 갈대숲을 즐기기엔 더없는 장소다 보니 남녀노소, 외국인 할 것 없이 관광이 많아 어깨를 부딪혀가며 걷고 있을 때였다.
50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 무리 중 한 명이 지나가는 외국인 여성의 머리카락을 낚아챘다.
영문도 모르고 길을 걷던 외국인은 머리카락을 움켜쥔 우리나라 여성 때문에 뒤로 넘어질 듯 아슬아슬 중심을 잡으며 머리가 뒤로 젖혀진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나라 여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무렇지 않게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던 여성은 같은 무리의 여성들이 들으란 듯 말했다.
"머리카락이 굽실거려도 꺼칠하진 않네. 제법 부드럽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주위 사람들의 시선, 경악스러운 눈빛, 같은 한국사람으로서 수치스럽기까지 한 이 상황을 그 사람만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한참 머리카락을 주물럭 거리던 그 여성은 미안하단 말 한마디도 없이 뒤돌아 제갈길을 갔다.
그 외국인 여성은 당황함과 곤혹스러움으로 다시 걸음을 뗄 때까지 그 자리에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을 서있었다.
정말 무례했다. 이것은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저급의 행동이었다. 핀펌을 한 외국인들의 머릿결이 어떠한지 궁금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낚아채다니... 본인의 머리카락도 누군가가 낚아채서 주물럭거리면 기분이 좋을까?
나는 나의 쥐똥만 한 영어 실력으로 이 상황을 설명하고 죄송하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 그 광경을 보고도 미안하다는 말도 못 했다.
어쩌면, 핑계일지도 모른다.
so sorry와 진심 어린 눈빛만 있어도 되었을지 모르나, 같은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너무 부끄러워 말문이 막혔다. 감히 사과를 못했다. 그 사람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기억할까?
나는 국산이 아니면 처다도 보지 않는 애국자도 아니고, 나라를 위해 이 한 몸 바치길 언제나 학수고대하는 열혈지사도 아니지만. 같은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도리는 누구에게나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가장 기본적인 나라 사랑 아닐까.
마지막으로 그 50대 여성분께 한마디 하고 싶다.
"저기요. 머리카락 어떤지 궁금하면 미용실 가서 물어보세요. 지나가는 사람 머리끄덩이 잡지 말고, 부끄러워요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