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발과 오른발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엎치락 뒤치락 느릿느릿.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늘 내 발 보다 한 발 앞서는 녀석이 있다.
등산 스틱.
오르막을 오를 때 다리 부담의 30%를 덜어준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등산스틱을 구비해 등산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요 스틱의 역할은 다리부담을 덜어주는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왠지 든든한 등산 친구가 생긴듯한 느낌.
나한테도 이런 친구가 있나?... 스틱을 잡고 산에 오를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존재만으로 무거운 마음이 저절로 30%나 줄어들게 하는 사람.
잘 못 들어선 길에서 온몸을 사정없이 때려대는 무성한 풀과 나뭇가지를 같이 용감하게 헤쳐나가는 사람.
난관이 없는 절벽 끝. 낭떠러지에서 아슬아슬 휘청이고 있을 때 중심을 잡고 바로설 수 있게 하는 사람.
발이 미끄러져 아래로 아래로 향할 때 이제 그만하면 됐다며 제동을 걸어주는 사람.
홀로 등산길에 올라도 손만 꼭 잡고 있으면 언제든 든든한 무기가 되어주는 사람.
이도 저도 힘들어 딱 주저앉고 싶을 때, 잠시 기대서서 쉴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사람.
그러나 나는 잘 알고 있다.
언젠가, 응답하라 1988을 보며 나는 왜 저런 친구가 내 주위에 없을까? 개탄하며 한참을 골몰한 끝에 깨달았다. 내가 그런 사람을 원한다면,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것.
이 단순하고 명확한 진리를 나는 마음속에 새긴다.
일방적인 관계는 여지없이 서로를 병들게 한다.
하산하며 마주친 나무는 그런 생각을 더욱더 확고하게 만들었다. 뿌리까지 들린 썩은 나무가 살아있는 건강한 나무에 기대어 있는 모습. 누가 봐도 민폐였다. 분명 썩은 나무는 점점 더 썩어가다 언젠간 나무 중간이 부서져 내려 땅바닥으로 나무의 온전한 모습도 잃은 채 곤두박질쳐지겠지만, 그사이 살아있는 건강한 나무는 아무런 희망도 없는 저 나무가 죽어가며 기대는 무게를 온몸으로 견뎌내야 한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소중한 사람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 누군가에게 민폐 되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자연에게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