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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돋움 Aug 14. 2023

잘 물든 단풍이 봄꽃보다 아름답다.


한때 왕성한 사회활동으로 대한민국을 누비고 다니 셨다던 아파트 아래층 할아버지는 몇 달 전 차를 중형 세단에서 소형차로 바꾸셨다. 그마저도 아파트 주차장에서 좁은 주차선으로 자동차를 구겨 넣기 위해 힘겹게 핸들을 돌렸다 풀었다 하며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곤 한다. 능력과 체력이 한꺼번에 소진되어 버리고, 아내마저 먼저 요양원으로 보낸 어르신은 자신이 조금만 걸음을 걸어도 숨이 차오르고 뻣뻣하게 굳어져 자유롭지 못한 팔다리가 이토록 말을 듣지 않게 될 것이란 걸 미리 예상이나 하셨을까? 


요양원에 근무하는 지인은 평소 입던 옷가지가 든 보따리와 가방을 들고 초라하게 입소하는 어르신들을 늘 마주한다. 그분들은 불편한 다리, 잘 들리지 않는 귀, 힘없는 팔과 더불어 해묵은 질병으로 더 이상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자신이 평생 살던 집을 떠나 낯선 요양원으로 입소하신다.


처음 불안해 잠을 못 주무시던 어르신들은 차츰 식사량이 늘고, 복도에 보행 보조기 운동도 다니시고, 친해진 어르신들과 담소도 나누시며 천천히 요양원 환경에 적응해 나가신다. 한 번은 귀가 잘 들리지 않으나 늘 웃고 계신 어르신께 귀가 들리지 않아 불편하지 않으시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고 한다. 그 어르신은 "TV를 틀어도 맨 남 헐뜯는 소리, 경로당을 가도 뒤통수만 보이면 험담인데 그런 소리 안 들리니 세상 편하니 좋다. "라며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고 한다. 

상실감, 자존감의 추락, 우울감, 존재의 필요성에 대한 깊은 성찰로 정신을 못 차릴 것 같은 순간에도 어르신은 평온하신 것이다. 


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마음을 헤아리며 닮아가려 노력해야겠다는 결심을 해 본다.

나도 언젠가는 가야 할 곳이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니. 세대가 바뀌고, 착실하게 나이 들어가다 보면 나도 불안한 눈빛으로 내가 가진 옷가지들 중 고무줄이 든 바지와 널찍한 티셔츠 몇 장 든 보따리를 들고 새롭고 낯선 환경에 들어서게 될 날이 반드시 오고 말 것이다. 그때 나는 지혜로운 그 어르신처럼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할 테니 말이다. 


우리의 인생도 나고 자라고 나이 들어가는데, 잘 물든 단풍처럼 늙어가면 나이 듦이 결코 서글프지 않습니다. 자연이 변화하듯 편안하게 늙어가면 그 인생에는 이미 평화로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란 인생에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태도를 지니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흔히 운명론을 말하지만 그 운명도 자신이 만듭니다. 어떤 일이 내 생에 주어지는 가가 운명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대처하고, 해결하느냐가 운명입니다. 


법륜스님 -인생수업 "잘 물든 단풍이 봄꽃보다 아름답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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