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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희 Mar 12. 2024

바흐의 수난곡

파고들면 좀 어려워서 그렇지, 바흐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G선상의 아리아”는 레드벨벳 노래에 샘플링되기도 했고 “무반주 첼로 모음곡”도 유명한 클래식이다. 특히 나 같은 ‘처치 피플’에게는 더 그러할진대, 바흐는 개신교의 자랑이기 때문이다. 가톨릭에 모차르트가 있다면 개신교에는 바흐가 있다. 그는 수많은 종교음악을 작곡했으며 루터가 작곡한 코랄을 자신의 작품에 자주 사용했다. 그가 악보에 적었다는 “SDG”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을 나타내는 라틴어 “Soli Deo gloria"의 약자인데, 종교개혁가들의 기본 신념을 요악한 다섯 솔라 중의 하나이다. (나머지는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다.)     


나는 바흐가 활동했던 바로크 시대도 좋아한다. 웅장한 규모의 화려한 건물, 다양한 색감의 그림.. 생각하면 늘 매혹적이다. 그러나 바로크 시대의 웅장함과 화려함은 개신교가 추구한다는 소박함, 문자 중심성에 맞서는 가톨릭의 반응에서 나온 바가 커서, 내게 약간의 딜레마를 준다. 바흐도 그렇지 않았을까? 실제로 바흐의 음악은 복잡하고 화려하다는 평가를 받아서 개신교 경건주의자들의 반발을 불러오기도 했다. 바흐는 바로크 시대의 다양한 음악 조류를 종합했다는 평가를 받으니, 마냥 순수한 프로테스탄트 음악을 추출하려다가 음악적인 아름다움을 등한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바흐의 음악은 거대하고 깊으나, 고전주의 음악이 주는 위대한 단순성과는 거리가 있다.     


바흐의 음악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난곡 장르가 특히 그렇다.      

수난곡은 주로 신약의 복음서를 주제로 하는 일종의 종교적 오페라에 가까운지라, 복음사가, 예수, 마리아로 대표되는 솔리스트와 대규모 합창단이 동원된다. 곡의 구성도 레치타티보, 코랄, 아리아, 다성 합창으로 다채롭다. 연주 시간도 마태수난곡은 3시간, 요한수난곡은 2시간으로 긴 편. 그래서 수난곡을 들을 때는 다양한 감상을 느낄 수가 있는데, 코랄이 주는 깔끔함뿐만 아니라 독창 파트가 주는 화려함과 섬세함을 지나면, 크리스마스 오라트리오에서조차 느껴지는 바흐 특유의 처연한 거룩함이 느껴진다. 크고 높은 천장을 가진 오래된 성당이나 교회를 연상시키는 거룩함. 낮게 흐느끼는 예수 그리스도. 슬픔 중에 오래 앉아 기도를 하듯이, 그 안에 거하고 싶은.     


그 거룩함을 향하여 바흐가 밝고 성실하게 걸어갔다는 것은 꽤 역설적이다. 

바흐는 매일 아침 가족과 함께 작곡에 몰두했고, 교회 음악 감독으로 충실하게 일했으며, 자서전 쓰기를 거절하는 등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드러내기보단 겸손한 직업인으로 살았다. 그는 창작자로서의 자의식과 과연 작품의 위대함과는 별 상관이 없음을 증명한다. 어찌 보면 자기 자신을 엄청나게 사랑하는 이 시대, ‘콘텐츠’가 범람하는 이 시대도 작품으로는 피상적인 클리셰만 넘쳐난다는 점에서 자의식이 위대함과 별개라는 걸 함께 증언한다. 경박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바흐를 들을 때는 그런 마음이 들어서 자주 시간을 헤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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