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부터 유행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장기요양기관에도 엄청난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장기요양기관 특성상 면역력이 약한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어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린다면 매우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더욱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대구를 기점으로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전국에 코로나가 확산됐습니다.
이에 맞춰 정부도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조치를 통해 유흥업소와 다중이용시설 등을 폐쇄하고 거리에 사람들이 사라지면서 많은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입어야만 했습니다.
다행히도 장기요양기관은 일상생활이 어려운 노인들이 이용자이기 때문에 다중이용시설이었지만 영업을 이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업을 지속하는 대신 공단에서 내려온 여러 가지 조치들이 따라왔습니다.
마스크는 직원과 이용자 모두 필수인 것은 당연했고, 모든 면회는 금지되었습니다.
매일 체온검사 및 방역을 하고 보고를 해야 했으며, 직원들의 퇴근 후 동선을 모두 기록해야 했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조치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고역이었던 것은 바로 코로나 검사였습니다.
장기요양기관직원과 이용자 모두 주 1회 의무적으로 보건소로 가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했는데, 많은 어르신들을 모시고 가는 것도 문제였고 보건소에서 엄청난 대기줄을 기다리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겨우 엄청난 대기줄을 뚫고 검사를 받을 때에도 인지가 저하된 어르신들은 협조가 어렵거나 화를 내시는 분들도 있어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건, 이걸 일주일에 한 번씩 반복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도 대기줄의 문제는 보건소에서 직원과 어르신들을 위한 별도의 줄을 만들어주어 나름대로 빨리 끝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르신 한 분의 온도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상태는 멀쩡해 보이셨지만, 열을 재보니 38도를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재빨리 어르신을 모시고 보건소로 가 코로나 검사를 받게 하고 보호자와 연락을 통해 그날은 귀가조치를 취했습니다.
저는 제발 코로나가 아니길 빌면서 초조하게 보건소직원의 연락을 기다렸습니다.
다음 날, 어르신의 결과를 통보받았습니다.
양성.
저희 기관에 처음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가 발생을 한 것입니다.
부랴부랴 직원과 다른 어르신들께 코로나검사를 실시해 보니, 3명이 더 확진이 되었습니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습니다.
장기요양기관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폐쇄를 피할 수 있었지만, 기관 내에서 코로나가 발생을 하면 2주간 폐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호자들과 이용자들에게 2주간 폐쇄를 하게 되었다는 연락을 하면서 온갖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2주간 어르신을 어떻게 집에서 모시고 있냐, 방역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 아니냐, 왜 여기만 코로나가 발생을 했냐 등등..
결국 기관은 2주간 폐쇄에 들어갔지만, 보호자가 없는 어르신들은 스스로 식사 같은 것들을 해결 못하시기 때문에 직원들이 비대면으로나마 식사 등을 챙겨드리며 안부를 확인해 드렸습니다.
길고 긴 2주간의 시간이 지나고 기관은 다시 영업을 할 수 있었지만, 예전과 사뭇 달라져 있었습니다.
2주간의 대기를 기다리지 못한 보호자와 이용자들이 대거 다른 기관 등으로 옮겨가며 이용자의 절반 이상이 나가버린 것입니다.
텅 비어 버린 센터를 둘러보며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지만, 코로나는 그 마음을 모르는지 계속해서 저희 기관을 덮쳐왔습니다.
저를 포함한 직원들과 많은 어르신들이 돌아가며 코로나확진을 받았지만, 다행히도 코로나로 인해 급격하게 건강이 악화되었거나 사망하신 분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가 장기화가 되면서 저희를 포함한 대부분의 장기요양기관들은 코로나를 경험해야 했고, 공단에서도 더 이상 코로나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2주간의 폐쇄를 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확진을 받은 환자들만 2주간의 격리조치를 받을 뿐이었습니다.
코로나가 대한민국의 절반 이상을 감염시키며 흔한 질병이 되어버리자, 장기요양기관에 내려졌던 조치들도 점차 완화됐습니다.
매주 보건소에서 받아야 했던 코로나 검사도 언제인가부터 더 이상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의무적으로 맞아야 했던 코로나 백신도 3차부터는 자율로 변경되었습니다.
코로나가 완전히 끝난 건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점점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저희 센터도 그 흐름을 따라 천천히 다시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그리고 혼란했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속에서 저는 또 다른 기회를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아직까지도 좋은 수입을 남겨주는 부업이라는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