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무렵, 저에게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당시 제가 근무하던 노인주간보호센터는 법인에서 운영을 하고 있었는데, 그 법인에서 운영하는 기관 중에는 요양보호사교육원도 있었습니다.
요양보호사교육원은 요양보호사 자격증 시험을 치기 위해 의무적으로 등록하여 공부를 해야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 법인에서 운영하는 교육원에서 강의를 진행하던 사회복지 강사님께서 코로나에 감염되어 강의가 불가능해진 것이었습니다.
사회복지 강사는 자격조건이 까다로운 데다, 코로나 시국이라 당장 구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마침 제가 자격요건이 되다 보니 얼떨결에 강사로 투입이 되어버렸습니다.
급하게 연락을 받고 해보겠노라 말은 했지만, 막상 전화를 끊고 나니 벌써부터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강의를 해본 적도 없고 심지어 1~2시간도 아닌 하루에 8시간을 꼬박 강의해야 하다 보니 부담이 컸습니다.
일단 하겠다고 한 이상 물릴 수는 없었고, 이것도 새로운 경험이 되겠다 싶어 열심히 교재를 가져와 공부도 하고 중간중간 수강생들이 지루해하지 않게 하기 위한 현장이야기 같은 것들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강의 첫날,
처음 해보는 강의에 요령 같은 게 있을 리 없었습니다.
목에 핏대를 올려가며 8시간 내내 떠들고 나니 다음날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가 되기도 했고, 학생들이 대부분 연세가 많다 보니 짓궂은 농담을 해서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거, 마이크 잡은 김에 노래 한 곡 불러보세요!"
"어.. 네.. 진도 나가겠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임시로 맡은 한 기수가 끝났는데, 다행이도 평이 좋았는지 이후에도 사회복지분야 강사로
강단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기수 두 기수 보낼 때마다 점점 강의도 익숙해져서 주간반과 야간반을 하루에 몰아서 12시간을 강의해도 목이 괜찮을 정도로 템포와 컨디션조절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짓궂은 농담 같은 것도 웃으며 받아칠 수 있는 여유까지 생겼습니다.
"거, 마이크 잡은 김에 노래 한 곡 불러보세요!"
"제가 노래 부르면 기획사에서 바로 스카우트해가서 더 이상 수업을 못 해요. 그러니까 여러분을 위해서 참겠습니다!"
그렇게 여러 수강생들을 지나치는 동안, 아직도 유독 기억이 나는 연세가 많으신 수강생이 한 분 있습니다.
80대 초반의 할아버지셨는데 항상 30분 일찍 오셔서 앞자리에 앉으시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한 번도 결석하시지 않을 정도로 공부에 열의가 있으셨지만, 연세가 있으시다 보니 페이지를 찾는 것도, 진도를 따라가시는 것도 힘들어하셨습니다.
그렇게 진도가 절반 정도 나갔을 무렵, 수업을 마치고 모든 수강생들이 다 나갔는데 그 어르신만은 남아 조심스럽게 저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선생님.. 제가 이번에 꼭 합격을 해야 되는데 방법이 없을까요? 너무 어렵습니다.."
어르신께서는 아내가 치매에 걸려 본인이 돌봐야 하는 상황인데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으면 가족요양을 할 수 있다 보니 이번에 어떻게든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무 간절한 어르신의 부탁에 저는 다음날부터 합격을 위한 여러 가지들을 준비했습니다.
그날 진도 나간 부분들을 요약해서 큰 글씨로 출력하여 드리기도 하고, 어려운 것들은 그림으로 만들어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만점을 받는 게 목표가 아닌 합격선인 60점이 목표였기 때문에 정말 외우기 어려운 부분들은 엑스표시를 해서 암기 부담도 덜어드렸습니다.
그렇게 중간중간 모의고사를 풀어보니, 어르신의 점수가 점차 높아지는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그리고 수업 마지막 날,
어르신이 그때와 마찬가지로 수강생이 모두 다 나간 뒤, 저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어르신은 저에게 작은 종이가방을 하나 내미셨습니다.
"선생님, 이거 별거 아니지만 집에 있는 조금 가져와봤습니다. 그동안 너무 고마워서요.."
종이가방 안을 보니, 유자청이 담긴 유리병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래 강의하시다 보면 목이 많이 상하 실 텐데, 이거 한 숟가락씩 물에 타서 드시면 좋습니다."
사람이 건네는 선물 중에는 값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전해지는 선물이 있습니다.
어르신의 손에서 건네진 유자청은 그런 종류의 선물이었습니다.
저는 병을 조심스레 두 손으로 받아 들고는 꼭 합격하실 수 있으실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요양보호사 시험날.
오전에 시험을 마친 어르신께 전화가 왔는데, 다소 자신이 없는 목소리였습니다.
"합격을 못한 것 같습니다.. 문제가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 한숨 섞인 말이 얼마나 무겁게 들리던지, 오히려 제가 더 마음이 조여왔습니다.
"어르신, 시험 끝나고 나오면 원래 다 어렵게 느껴지는 거예요. 지금은 그냥 좀 쉬세요. 결과 나오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저는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어르신의 마음을 달랬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합격자 발표날에 어르신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어르신의 번호를 보는 순간 다시 제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숨을 들이쉬고 통화 버튼을 눌렀습니다.
"선생님.. 합격했습니다."
그 짧은 한 문장에 모든 감정이 담겨 있었습니다.
목소리는 떨렸고, 천천히 삼키는 숨소리로 울음을 참고 계신 것이 느껴졌습니다.
"선생님이 잘 가르쳐주신 덕분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르신은 결국 무사히 합격해서 가족요양을 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코로나때 임시로 시작했던 강의가 어쩌다보니 현재까지 3년 넘게 하고 있습니다.
회사일과 병행을 해야 하다 보니 제 연차를 써가며 강의를 하고 있지만 매 기수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또 다른 이야기를 듣고, 각자의 사연이 교실을 채우는 그 순간이 너무나도 좋아 오늘도 강의실 문을 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