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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한지 1시간 만에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by young

노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 중에 하나는 바로 낙상(落傷)사고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많은 기능들이 감소하다 보니 낙상사고가 빈번히 일어나는데, 균형감각과 반응속도가 급격하게 하락하는 70대 이후부터는 넘어지면서 손으로 바닥을 짚지 못해 그대로 고관절이나 척추의 부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노인들이 고관절이 골절됐을 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면 2년 내에 사망할 확률이 70%에 달하고 수술을 하더라도 2년 내에 사망할 확률이 30%로 노년기에 낙상은 매우 치명적입니다.


단순히 뼈가 골절된 것뿐인데 사망률이 왜 이렇게 높을까요?

그것은 바로 합병증 때문입니다.

고관절이 골절되면 장기간 누워있어야 하다 보니 욕창과 폐렴, 요로감염 등이 잘 생기고 뇌졸중, 심근경색, 폐색전증 같은 질병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렇다 보니 어르신을 모시는 장기요양기관에서도 낙상사고를 매우 조심합니다.

보행이 불안정한 어르신은 반드시 옆에서 보조를 해드린다거나, 보행기를 사용하게 하는 식으로 말이죠.


제가 센터장으로 있던 노인주간보호센터에서 2년간 있는 동안 한 번도 낙상사고가 일어나지 않아, 낙상사고는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노인주간보호센터의 대표님이 저에게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기존에 다니던 주간보호센터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주간보호센터였는데, 센터장 직위의 보장과 현재보다 더 높은 페이를 저에게 제시하였습니다.


마침 평가 이후 대표님과 가치관의 차이로 많이 부딪히는 바람에 서로 불편한 사이가 되어 고민을 하던 차에 이런 제의가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결국 고민 끝에 대표님께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고 새로운 노인주간보호센터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오전에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사무실에 앉아 사회복지사에게 현재 이용자 정보 및 업무현황에 대해 브리핑을 받고 있는데,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졌습니다.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어 밖을 나가보니 어르신 한분이 주저앉아 계셨습니다. 오전 프로그램인 팽이치기를 하던 중에 넘어지신 것입니다.

어르신의 상태를 살펴보니 도저히 일어나시지 못하셨고, 결국 휠체어에 태워 병원을 모시고 갔습니다.

엑스레이 촬영결과, 고관절 골절이었습니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보호자와 대표님께 사고에 대한 내용을 설명드렸습니다.

결국 어르신은 수술대에 오르셔야 했고, 그 비용은 전부 저희 노인주간보호센터가 지불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장기요양기관은 이런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배상책임보험이라는 것을 가입해 놓습니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일부 본인부담금만 지불하면 나머지 비용은 보험으로 처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인부담금인 70만 원을 지불했고 모든 게 끝이 난 줄 알았지만, 이제 시작이었습니다.

어르신은 수술이 끝나고 재활을 위해 재활병원에 입원하셨는데, 보호자가 필요한 물품들을 수시로 저에게 문자로 보내오셨고, 사고를 발생시킨 저희는 시도 때도 없이 병원을 왔다 갔다 하며 물티슈, 기저귀 등을 날라야 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는 동안 어르신은 여전히 재활병원에서 나오시질 않았습니다.

결국 보험사에서 더 이상 보험금을 지급할 수없다고 통보하고, 거액의 합의금을 지불하고 나서야 어르신은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입사하고 1시간 만에 넘어지셨던 그 어르신은 결국 저희 노인주간보호센터로 돌아오지 못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르신이 재활병원에 있는 사이, 또 하나의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어르신이 요양보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계단을 올라가다 삐끗하면서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버린 것입니다.

결과는 허리 척추 골절이었습니다.


보험사 직원은 1년 사이에 2건의 사고가 발생한 저희를 보며 너무한 거 아니냐는 식으로 말씀을 하셨고, 저는 고개를 푹 숙이며 죄송하다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보험 덕분에 거액의 치료비를 부담하지는 않아도 됐지만, 당연히 보험료는 엄청나게 할증이 되었습니다.


축구나 야구에서 팀이 성적을 내지 못하거나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감독의 책임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장기요양기관에서도 사고가 나면 결국 그 책임은 센터장의 몫입니다.


대표님은 갓 입사한 저에게 크게 책임을 묻거나 질책을 하지는 않았지만, 제가 들어오자마자 큰 사건이 2건이나 발생했다며 쓴웃음을 지으셨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스스로를 질책했습니다.

장기요양기관의 센터장을 하면서 한 번도 사고나 환수를 당하지 않았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건 결국 운이 좋았을 뿐, 철저한 시스템 속에서 만들어진 안전은 아니었습니다.


2건의 낙상사고 이후 저는 센터의 모든 시스템을 새로 짰습니다.

보행이 불안한 어르신은 반드시 요양보호사가 2인 1조로 이동하게 하고, 안전매뉴얼을 만들어 요양보호사들에게 수시로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조치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직원들의 마음가짐'이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어르신과 함께 걷고, 앉고, 일어서야 하는 일상 속에서 순간의 방심이 사고로 이어진다는 걸, 그제야 모두가 몸으로 느끼게 된 것이지요.


그렇게 센터가 다시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낙상사고에 대한 기억이 잊힐 때쯤, 다시 한번 큰 사건이 벌어집니다.


바로 코로나 바이러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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