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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티브’에서 비롯되는 디자인의 다채로움

디자인으로 사용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법 - 김승환

최근 들어 감성 디자인이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이는 인간의 감성을 자극해 심리적 만족감 이상의 정서적 유대 감정을 형성하는 디자인을 추구하는 것이다. 사실 감성이라는 것은 감정과 다르기에 그것을 인지하기 어렵다. 감정은 나의 기분, 상태를 나타내는 방법으로 비교적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인지 파악하기 쉬운 반면, 감성은 더욱 내재적이고 비인지적인 방식으로 나를 자극하는 미묘한 무언가이다. 감성은 내가 무언가에 끌리지만 그것에 왜 끌리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도록 하는 요소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성을 자극하는 디자인이 어려운 것이고, 그 방법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다.

모티브 디자인은 감성 디자인을 시도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그 감성이 왜 생기는지 묻는다면 나는 과거의 경험을 그 이유 중 하나로 답하고 싶다. 과거로부터 오는 향수는 우리에게 말로는 형용하지 못할 애틋함을 불러일으킨다. 과거의 경험이 특별할 수도 있고,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과거를 추억하게 한다는 것만으로 일상적인 감정과는 다른 특별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과거의 경험을 불러오는 방법이 그 대상을 모티브로 삼는 것이다. 모티브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여러 디자인 사례가 있다.


Hono

무라타 치아키 ‘hono’ (출처 : https://www.jungle.co.kr/magazine/27116)

단순한 원기둥의 형태를 띠고 있는 이 조명은 촛불을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졌다. Hono의 디자이너인 무라타 치아키는 이 제품에 특별한 기능을 넣었는데, 사용자가 바람을 ‘후’ 부는 제스처로 조명을 끌 수 있다는 것이다. 바람을 불어 불을 끈다는 것은 우리의 기억 속에 한 번쯤 존재하는 행위이다. 어린 시절 생일날, 케이크 위의 촛불을 ‘후’ 불어 끈 경험이 있을 것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소원을 빈 후 껐던 촛불은 이후에 돌아봤을 때 그리운 향수를 느끼게 한다. Hono는 바람을 부는 단순한 동작으로 사람들의 기억을 불러내는 것이다. 그렇게 불러낸 기억은 사람들을 감성에 젖어들게 한다. Hono로 인해 단순히 빛을 위해 조명을 켜고 끄는 기능적 행위가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경험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감성은 과거의 기억을 상키시킴으로써 사용자들에게 그 디자인이 더 끌리게 하는 그런 요소가 아닐까 싶다.


CD 플레이어

후카사와 나오토 ‘벽걸이형 CD플레이어’ (출처 : https://www.mujikorea.net/display/showDisplay.lecs?goodsNo=MJ31014818&s

후카사와 나오토가 디자인한 이 cd 플레이어는 환풍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CD플레이어를 켜는 방식에 과거 줄을 당겨 환풍기를 켜는 방식을 차용함으로써 그 행동의 의미를 새롭게 구성하고 있다. CD 플레이어가 단순히 노래를 트는 기계가 아니라 그 공간의 분위기를 환기시켜주는 역할이 되는 것이다. 제품에 과거의 경험을 결합시킨 이 디자인은 사용자들에게 또 다른 감성으로 다가간다.

하지만 모두가 과거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환풍기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한테 이 디자인은 감성을 자극하는 디자인으로 다가가기는 힘들다. 솔직히 지금 MZ라고 칭해지는 세대 정도만 되더라도 줄을 당겨쓰는 옛날 환풍기를 직접 경험해 본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환풍기를 모티브로 한 디자인이라는 것을 알더라도, 분위기의 환기라고 느껴지는 그 감성이 직접경험이 있는 사람들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감성을 자극하는 요소는 과거의 경험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특정한 대상을 모티브로 삼은 디자인은 그 대상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비교적 제한적인 감성 디자인으로 다가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경험의 유무는 모티브 디자인의 발목을 잡는 한계일 뿐일까? 디자이너에게 사용자의 경험은 중요하다.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할 때 사용자가 어떤 경험을 할지에 대해 고려한다. 감성 디자인의 경우 디자인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사용자가 느끼게 될 감성을 설계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그 감성이 전해질 것을 기대할 수도 없고 기대해서도 안 된다. 한 대상으로부터 비롯된 경험을 새로운 대상으로 전달하는 것이 모티브 디자인의 목적이지만, 그 전의 경험이 없더라도 새로운 형태의 디자인의 그 자체로 새로운 경험을 조성할 수 있다. 그 새로운 경험이 그 사람들의 옛 경험이 되어 언젠가 새로운 감성 디자인을 만들어 낼 수도 있는 것이다. 모티브 디자인은 다른 대상을 모티브로 삼았다는 것만으로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익숙함에서 오는,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신선함에서 오는 다양한 감성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어쩌면 모티브 디자인의 힘은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감성을 의도적으로 사용자들에게 전함으로써 끌림을 형성하는 것뿐만이 아닌,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디자인을 다채롭게 하는 것, 그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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