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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 디자인 맥시멀 시대: 그들은 무엇을 놓쳤는가

미니멀 디자인의 본질은 무엇일까? - 이채원

디자이너라면 클라이언트에게 한 번쯤, 아니 백 번쯤 들어봤을 단어 ‘미니멀.’ 그만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추구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대중적 선호를 기반으로 수많은 기업들이 앞다투어 그들의 제품을 ‘미니멀하게’ 디자인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게 된다. 대다수의 기업들은 ‘깔끔하고 매끈한, 기하학적으로 단순화한 형태’를 내세우며 은연 중에 미니멀을 정의내린다. 혹은 ‘최소한의’라는 미니멀의 사전적 정의에 맞춰, 물리적 버튼의 개수를 최대한 줄이고 디스플레이로 많은 것들을 해결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미니멀 디자인의 본질이 ‘단순화’와 ‘덜어내기’인 것인가?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세상에는 미니멀함을 주장하며, 심지어는 조형적으로 완전한 비례를 자랑함에도 어딘가 묘하게 미감을 자극하지 못하는 단순화된 디자인이 다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요즘의’ 애플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놓친 미니멀 디자인의 본질은 무엇일까. 이를 되찾기 위해 나는 디자이너들이 왜 ‘미니멀함’을 추구하게 되었는지, 그 시작점으로 돌아가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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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즘 사조에서 디자이너는 무엇에 집중했는가?


1960년대 본격적으로 태동하기 시작한 미니멀리즘은 작가의 주관적 서술을 배제하고 ‘지금 현재 여기에서 느껴지는 대상 그 자체’를 표현하기 위해 전시 공간 안에 단순한 오브제를 툭 던져 놓았다. 이렇게 여타 요소들을 덜어냄으로써 관객은 오히려 ‘작품 자체’가 아닌 흐르는 시간 속 관객 자신과 작품 사이 ‘관계’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솔직히 어렵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디자이너로서 이를 이해하는 데 애써 시간을 들일 필요는 없다. 디자이너가 여기에서 가져온 철학은 단순하기에. 바로 ‘덜어냄’이다. 이 말에 의문이 드는 게 당연하다. 방금 전에 ‘덜어냄’이 미니멀 디자인의 본질인가, 라는 물음으로 서두를 던져놓고 다시 동일한 곳으로 돌아오다니?


사실 두 덜어냄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미니멀리즘 회화에서 덜어냄은 관객이 ‘작품 자체에 대한 인식을 빠르게 ‘패스하게’ 만든다. 즉, 작품을 인식하고 지각하는 과정이 단순화된다는 의미이다. 회화 작가들은 이를 ‘관계의 지각’이라는 새로운 종점을 향하게 하는 데 사용했지만, 디자이너는 다른 관점을 떠올렸다. 단순히 시각적 아름다움의 추구가 아닌, ‘신속하고 자연스러운 정보 처리’를 위해 미니멀리즘의 간결한 조형성을 차용해오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 디자인에서의 미니멀이 갖는 핵심은 ‘간결함’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시각 요소를 통한 ‘정보 처리 과정의 단순화’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용자 경험을 고려한 디자인만이 실제로 ‘경험’하는 그 순간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뒤이어 다룰 테슬라와 애플의 중요한 차이점이 등장한다.


경험할 때 더 아름다운 디자인


앞서 말했듯이 테슬라와 애플, 두 가지의 예시를 들고 왔다. 두 브랜드 모두 ‘미니멀리즘’을 강력하게 추구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양측은 시각적으로 꽤 미니멀하고 매력있는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다만 두 브랜드가 가진 철학의 차이는 직접 경험하는 순간에 두드러진다.

테슬라 모델3의 실내 디자인이다.

테슬라는 자동차 실내 디자인의 전형에서 완전히 벗어난 극강의 미니멀함을 추구했다. 계기판을 완전히 없애고 핸들의 버튼 또한 단 두 개만 남겨 매우 단순화된 형태를 보여준다. 이것이 그들의 철학이며, 이는 상당히 혁신적이고 간결하다. 하지만 실제로 경험해보면 어딘가 모르게 좀 거칠다는 느낌이 든다. 일단 차에 탄 순간 시작된 ‘시동은 어떻게 켜지?’ 라는 당황은 ‘와이퍼는? 헤드 라이트는? 방향 지시등은?’ 과 같은 물음표들에 의해 점점 증폭된다. 덜어냄이 ‘직관성을 오히려 떨어뜨리는’ 측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아이폰의 홈버튼이다.
홈버튼이 사라진 대신 나타난 아이폰의 홈바이다.

이에 반해 애플은 ‘더 나은 직관성’을 위해 단순화를 사용한다. 몇 가지 예시들을 들어보자면, 먼저 오랜 기간 함께 했던 홈버튼을 덜어내면서 애플이 사용했던 방식은 섬세했다. 새로운 ux가 아닌 기존의 익숙함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바로 스크롤이다. 잠금 해제 시에 스크롤 할 때와 유사한 ‘위로 쓸어올리기’ 동작을 가져옴으로써 사용자가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러한 고려는 경험하는 순간 더 아름다운 디자인이 된다.


뭐 이렇게 옛날 이야기를 가져왔어? 라는 생각이 든다면 꽤 정확한 접근이다. 애플의 미니멀리즘 디자인 철학은 아름답다. 그럼에도 요즘 들어 애플의 디자인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는 이러한 철학이 온전히 지켜지지 않는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공개된 아이폰 15 시리즈에서는 아이폰이 십수년 간 유지해온 무음 버튼이 바뀌었다. 왜 굳이? 라는 평가도 많았던 무음 버튼을 개인적으로 참 좋아했다. 버튼의 형태와 색감의 구분을 통해 직관적인 ux를 제공했고, 덕분에 디스플레이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무음 여부를 알 수 있다는 점이 조형을 덜어내지 않았음에도 외려 ‘미니멀’하게 다가왔다.

변화한 측면 버튼은 형태를 단순화하고 여기에 더 다양한 기능을 담았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로 인해 직관 정보는 줄어들었다. 기능도, 단계도 맥시멀해졌다. 다소 아날로그적인 방식이더라도 애플의 본질적인 미니멀리즘을 사뿐하게 나타낸다고 생각했던 무음 버튼의 변화가 나로서는 조금 아쉽다.


길을 잃은 것은 이들 뿐만이 아닐 것이다. 미니멀리즘 맥시멀 시대에 ‘있어 보이기 위해’ 덜어냄을 사용해버린 결과다. 돌아가는 길은 어렵지만, 다행히도 막막하지는 않다. 자꾸만 시각을 최종 목적지로 삼으려는 허세를 끊임없이 짓누르자. 디자이너가 사용자를 바라보지 않으면 사용자는 덩그러니 버려진다. 매력적이고 혁신적이지만, 어려운 신기술과 사용자의 간극을 부드럽게 이어붙이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이다. 경험할 때 더 아름다운 디자인, 그것이 ’미니멀‘의 진짜 의미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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