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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과 회화의 경계에서

서양화 전공하던 내가 대학교에선 디자인을 전공하는 건에 대하여 - 이화인

나는 디자인과에 오기 전 예중, 예고 시절 서양화를 전공하였다. 내가 처음 미술을 하고 싶다고 결심한 계기는 디자인이었으나 입시에서의 성공을 위해서 서양화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러나 회화에서 나의 역량은 부족했고 현역 시절 지원했던 대학, 과에 합격하지 못하였다. 다시 도전하게 된 입시에서는 결국 서양화가 아닌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디자인과에 오게 되었다. 회화에서 디자인이라는 분야로 바꾸게 되면서 나는 두 분야의 다양한 차이점을 몸소 느끼게 되었다. 이는 내가 디자인을 하면서 마주하게 된 난관들의 원인으로 볼 수 있었는데 이 글에서 이를 바탕으로 디자인의 핵심을 짚어보고자 한다.


내가 처음으로 느꼈던 차이점은 발상의 근원이었다. 회화의 경우 핵심은 나의 세상을 표현하는 것이다. 주어진 주제에 대하여 작가의 시선이 드러나는 것이 핵심이고 작품 속에는 그 어떤 다른 존재가 배제된 채 오직 작가 만이 남아있다. 작가가 느끼고 경험하는 바가 중요하고 이를 전달하기 위해 작가들은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여 자신만의 회화 스타일을 만들게 된다. 그러나 디자인의 경우에는 타인의 세상을 중요시한다. 세상을 보는 나의 관점보다는 타인의 관점이 전체 과정의 핵심 줄기가 된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이들의 관점을 최대한 많이 고려하기 때문에 유니버셜 디자인같은 동일한 제품군에 대한 다양한 디자인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내가 느꼈던 나의 난관은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세상을 귀납적으로 느끼며 살아가기 때문에 내가 직접 경험한 바 외에는 생각이 닿지 않는다. 디자인은 타인에 대한 배려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사고 과정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실제로 타인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행동 패턴을 관찰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오랜 기간 조사를 통하여 타인의 세상을 이해한 후 디자인에 들어가는 점이 내 세상에 대해서만 성찰하고 작업에 들어가는 회화와 다른 포인트라고 볼 수 있다. 나는 디자인을 하면서 나의 부족한 공감 능력을 보충하기 위해 이러한 조사 과정을 조금 더 길고 깊이 있게 거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두 번째는 타인의 해석 정도이다. 물론 회화 또한 감상자가 어느 정도 그림의 의미를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때로는 작가가 일부러 우회적으로 표현하기도 하는 등 그 의도를 숨기기도 한다. 이렇듯 정보 전달에 있어서 그 중요성이 낮은 편이다. 디자인의 경우 정반대이다. 정보 전달이 핵심이고 오히려 감상자가 그 디자인의 내용을 잘 해석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핵심이다. 디자인에서는 ‘UX 심리학’이라는 학문으로 우리에게 다양한 효율적인 정보 전달 방식에 대해 알려주고 있기도 한다. 이렇듯 회화는 작품의 의도를 숨기기도 하는 등 메시지를 숨기기도 하지만 디자인의 경우 사용자가 디자인의 의도를 꿰뚫어볼 수 있도록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은 내가 디자인 입시를 하던 시절에 정확히 동일한 내용을 회화적인 그림과 디자인적인 그림으로 풀어던 예시이다. 처음에 그린 그림을 보고 돌아온 디자인과 선생님의 피드백은 그림이 무엇을 얘기하는지 모르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두 번째 그림으로 다시 내용을 풀어보았고 훨씬 더 명확하게 전달된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이렇듯 회화에서는 독자가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어도 무방하지만 디자인의 경우 동일한 내용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동일한 내용을 회화적으로 표현하였을 때 / 동일한 내용을 디자인적으로 표현하였을 때

내가 겪고 있는 회화와 디자인의 차이점에서의 또다른 난관은 툴의 복잡도이다. 회화든 디자인이든 툴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하는 이유는 아무리 나의 생각이 창의적이더라도 그 내용을 명확히 전달하지 못한다면 그 생각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툴 사용의 능숙도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되며 이를 위하여 다양한 툴을 많이 다뤄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때 회화는 툴이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툴의 사용법이 직관적이고 툴을 익히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디자인의 경우 툴의 복잡도가 높다. 이는 회화는 신체가 감각하는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에 작품과 내가 바로바로 소통할 수 있는 반면 디자인은 그것보단 과정이 간접적이고 ‘컴퓨터’라는 매체를 거치기 때문에 그에 따라 프로그램을 익히는 데에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디자이너를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회화에 비해 더 많은 사용법을 익혀야 하는 툴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한다.


요즘 회화를 하다가 디자인으로 진로를 바꾸거나 디자인을 복수 전공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로 보인다. 이때 두 장르의 미묘한 차이점으로 인해 겪게 되는 여러 어려움들이 있다. 그러나 이를 잘 이겨낸다면 오히려 색다른 시각을 가진 디자이너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SWNA 이석우 대표는 노드 매거진에서 디자인 전시가 아닌 회화 전시를 자주 보고 가공되어 있지 않은 작업물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핀터레스트, 비핸스에서 정제되어 있는 작업물이 아닌 개성이 가득 담긴 회화 작업물을 보라고 한다. 회화 작업물이 개성이 강한 이유는 내가 위에서 언급한 첫 번째, 두 번째 차이점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생각한다. 회화는 타인에게 맞추는 것이 아닌 나에게 집중되기 때문에 더욱 개성이 드러나게 되고 이러한 개성은 정제된 디자인에서는 볼 수 없는 자유로움이 존재한다. 회화를 전공한 사람이 이러한 자신만의 개성을 디자인의 기본적인 소양을 연마하여 이에 접목한다면 그 누구보다 개성있는 디자인이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위에 언급한 여러 장애물을 극복하고 훌륭한 디자이너로 성장하고 싶음을 소망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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