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불주사 01화

환경조사

환경변화의 시작.

by 기억삭제



아무리 뒤꿈치를 들어도 높은 담장 안 넓어 보이는 마당은 작은 내 키로는 볼 수가 없었다. 억지로라도 보고 싶어 몇 걸음 더 물러나서 폴짝폴짝 뛰어보지만, 담벼락 끝에 걸쳐진 어슴푸레한 마당의 초록만이 겨우 보일 뿐이었다.


아빠와 엄마는 왜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 온 것일까.


"여가 우리 집인기라."


흐뭇한 미소를 입가에 걸고 만족스럽게 꼭 닫힌 철대문을 바라보며, 마치 넓은 마당 한가운데라도 서 있는 듯 행복한 표정을 한 아빠가 대문 양쪽으로 단단하게 버티고 있는 담을 천천히 훑어보며 말했다.


"머리고예? 여가 울집이라꼬?"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서 도둑처럼 염탐하고 있는 마당이 넓어 보이는 2층 한옥집이 우리 집이라고 했다. 그 말이 영 믿음이 가지 않았다.


우리 집이라면서 왜 이렇게 대문조차 열지 못하고 쳐다만 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라모, 짐 사는덴? 거는 울집이 아이라고?"


"거느마, 세들어 사는기고."


그랬다. 우리 집은 전세였다.



우리가 사는 집은 4차선 도로가에 있는 3층짜리 건물이었다. 1, 2층은 식당을 하고, 3층은 우리 여섯 가족이 사는 살림집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그곳이 우리 집이라고 생각했다. 국민학교 3학년에 이사를 가서 5학년인 지금까지 살고 있었기에 정말 우리 집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전세의 개념도 월세의 개념도 알지 못하는, 아니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던 작은 도시에 사는 순박함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졸지에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거짓말을 한 아이가 되어버렸다.




내가 살던 남쪽 끝 작은 도시에서는 새 학년이 바뀌면 환경조사라는 걸 했다.


"집에 테레비 있는 사람 손들어 보그라."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두대 있는 사람 손들어 보그라."


들었던 손이 미쳐 다 내려오기도 전에 나는 다시 손을 번쩍 들었다. 우리 집에는 가게에도, 3층 살림집에도 텔레비전이 있었다.


"피아노 있는 사람 손 들어 보그라."


내 손은 허리옆에 붙어 있을 시간이 없었다.


당시 컴퓨터와 피아노 중 고민하던 엄마는 컴퓨터로는 게임만 할 것 같았서, 피아노 대회에 나가 여러 번 수상한 이력이 있는 큰언니를 위해 피아노를 샀다. 그 덕에 칠 줄도 모르는 피아노를 뚱땅거리며 즐거워하곤 했다.


"살고 있는 집이 자기 집인 사람 손 들어 보그라."


당연하다는 듯 손을 들었다.


그 순간만큼은 손을 들지 않는 아이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지집이 아인데 거서 우째 살고있노?' 하는, 단순하고 멍청하기 짝이 없는 의문이었다.


마지막 집까지 자가가 되어버린 나를, 흘깃거리며 쳐다보는 아이들은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아도 부러워하는듯했다. 그렇게 나는 모든 걸 가진 일명 부잣집 아이가 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 집이 그리 부자가 아니라는 것쯤은 아무리 멍청한 촌년이라도 알 수 있었다.


그저 그 집에 살고 있기에, 그 집은 우리 집인 것이었을 뿐이었다.


정확하지도, 확실하지도 않은 환경조사를 굳이 그런 식으로 해야만 했을까.


그때 우리는, 손을 들지 못하는 조사항목에서는 괜히 눈치를 보며 쭈뼛거리게 되었다. 자신들의 손이 허리춤에서 방황할 때 손을 아이들은 힐끔거리며 내심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렇게 순간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환경조사가 진정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조사였는지, 그저 형식적으로 작성해 어떤 아이집에서 귀한 무언가가 있는 차별을 두기 위한 조사였는지 알 턱이 없었다.


지금은 사라진 풍경들을 대변하는 말은, 항상 시대가 그랬다는 핑계에 불과하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러나 그 또한 정확한 조사가 아니었다는 것이 자명하게 밝혀졌다. 그랬으니 우리 집이 진짜가 아니었다는 잘못된 조사를 아무도 밝히려 하지도, 밝혀내려 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진짜 우리 집이 아니란 사실을 안 날, 담장안도 제대로 볼 수 없는 진짜 우리 집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나 우린 끝내 그 담장을 넘어가지 못했다.


그리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우리 집에서도 쫓겨나게 되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환경조사의 충격이 가시기 전에 내게 온 환경변화는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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