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불주사 02화

이사

유난히 추웠던 그해 겨울.

by 기억삭제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지만, 실소유주는 따로 있는 3층건물 주위에는 시청과 법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식당을 하는 우리 집으로 점심에는 식사 손님이, 저녁에 회식하는 단체 손님들로 엄마 아빠는 늘 바빴다.


옆에는 결혼식을 올릴 수 있는 회관 같은 건물도 있었다. 그 건물에는 식당이 없어 결혼식 손님까지 받았다. 예식이 많은 주말에는 온종일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렇게 동네에서 꽤 장사가 잘되어 부모님은 도시로 나올 때 졌던 빚도 갚아가면서 조금 여유로운 생활에 접어들 때쯤, 건물주인의 갑작스러운 통보가 날아왔다.


샘이 났는지, 장사가 잘되니 자릿세도 올려야 된다는 주인들의 권리인지 모르지만, 주위 시세보다 높은 가격으로 재계약을 요구했다.


그러나 부모님은 당장 그 돈을 올려줄 만한 여유가 없었다. 아마도 우리 집이지만 우리 집이 아닌 집을 샀기에 여윳돈이 없는 듯했다. 집을 팔아 돈을 마련하려 했지만 생각처럼 금방 팔리지도 않았던 것 같다.


시간을 더 달라고 했지만, 그건 간절한 사람의 핑계일 뿐이었다.


날짜에 맞춰 돈을 주든지, 건물을 비우든지 두 가지 선택지뿐이었다. 그러나 답은 정해져 있었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급하게 돈 구할 곳은 없었다.


처음부터 건물주는 계약금을 더 받을 생각이 없었다. 장사가 잘되는 세입자를 밀어내고, 자신들이 들어와 똑같은 업종으로 간판만 바꾼 채 장사를 할 계획이었던 것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힘없는 세입자가 나가는 것이 정해진 순리인 것을.

부모님은 결국 이사를 결정하고 급하게 집을 구해야만 했다. 살던 동네를 떠나지 않으려 했지만, 그곳엔 당장 들어갈 수 있는 빈 가게가 없었다. 살림집과 한꺼번에 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손에 쥔 돈만으로 가능한 동네를 찾아야 했다.




4인용 테이블 3개가 꽉 찬 식당 홀, 그보다 작은 공간의 식당 주방. 한쪽에 있는 미닫이문을 열면, 겨우 농 한 짝 들이면 꽉 차버리는 작은방, 그 옆엔 책장 하나 들어가면 더 답답한 방, 다시 그 위에 앉은뱅이책상 하나와 사람 하나 누우면 끝인 좁디좁은 다락방.


그곳에서 우리 여섯 식구가 살아야 했다. 전에 집도 여섯 식구가 살기엔 내 방 하나가 모자란 집이었지만, 이곳에 비하면 호광에 겨운 푸념이었다.


새로 이사한 집을 보고 있자니 '턱'하고 숨 막혔다.


몫이 좋은 곳에서 빚을 갚고 돈 좀 모아보자 싶을 때, 쫓겨나다시피 터전을 옮겨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부모님의 근심은 안중에 없었다.


왜 더 좋은 집을 구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원망과 입학해서 5년 동안 다녔던 학교를 떠나야 한다는 것이 더 짜증스러웠다. 길고 긴 겨울 방학이 끝나면 겨우 한 학년만 남겨놓고 전학을 가야 하는 상황이 나는 썩 달갑지 않았다.


정든 친구들을 떠날 생각을 하니, 다 큰 자식들을 좁아터진 방으로 밀어 넣어야 했던 부모님만큼 속상했다.


그렇게 급하게 이사를 해야 했던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바람이 그리도 시렸던 것은, 앞으로 닥칠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 준비하라는 신호였을까.


아님, 감당하기 힘든 시간이니 뚫고 가지 말라는 경고였을까.


누워서 올려다본 천장도 괜히 낮아 보여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새로 이사한 그곳의 모든 것들이 유난히도 싫었다.


그것은 아마도 불안을 예감한 몸의 신호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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